왜 호의는 단순히 호의일 수 없을까?(나눔의 배신)
성경에 이런 글이 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푼 호의는 때론 나에게 도리어 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텃밭에서 수확을 할 시기가 되면(보통 4월에서 11월까지) 넘쳐나는 수확물을 우리 자매가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수확물의 대부분이 나눔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떤 분은 힘들게 농사지어서 왜 남 다 퍼주냐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시장에다 내다 팔라고 진지하게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그야말로 텃밭이기에 판매하기는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멀쩡한 것을 버리기는 아까워서 열심히 나눠줬었다. 그렇게 6~7년 동안 잉여 생산물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누다 보니 우리는 상상도 못 한 몰상식하고 염치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텃밭에 버릴지언정 나누지는 말자며 나눔에 치를 떠는 사람이 되었다.
한때 채소값이 폭락하여 밭을 갈아엎는다는 뉴스를 보면서 '차라리 나눠주지~' 하며 순진한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에는 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법. 막상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니 웬만해서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 각박한 삶이 평화롭게 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처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마치 그 호의가 자신의 권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텃밭 채소를 주기적으로 주다 보니 어느덧 '너희가 먹지 못하는 것 내가 처리해 주잖아~' 라며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돈을 주고 파는 것도 아닌데,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시골 사람들은 '남는 거면 줘 보던가', 혹은 ' 네가 권하니까 먹어는 봐줄게'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체면을 차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난 서울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서 그런 반응이면 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만다.
한동안 동생이 유기농 카페에서 활동을 했었다. 텃밭 일기도 올리고 작물 재배 방법도 공유하면서 나름 열심히 활동했었던지 카페글을 보고 우리 텃밭 작물을 나눔 받겠다고(혹은 사겠다고) 요청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사실 우리가 판매하는 사람이 아닌데 신선식품을 택배로 보내는 게 쉽겠는가? 상자도 구해야 하고 시들지 않게 포장도 잘해야 하고 택배 보내려면 우체국까지 나가야 하는데. 몇 번 보내줬더니 어느덧 우리 텃밭에 키우는 작물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이것 수확하면 보내주세요' 그런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너도 나도 택배를 시키니 농산물을 택배로 보내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 나도 유기농 농산물을 택배로 받아먹는 사람이라 모르는 걸 탓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보내려고 해 보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채소 같은 경우 갓밝이나 해거름에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햇빛을 받으면 금세 시든다) 시간 관계상 보내기가 불편하고, 호박이나 배추같이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도 보내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무가내로 먹어보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그야말로 떼를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먹어보고 싶으면 사 드시지).
나눔을 할 때 우리 텃밭 작물이라도 좋은 것만 먹는 우리의 기준대로 상태가 좋은 것들을 엄선해서 깔끔하게 손질해서 보낸다(도시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도 다 돈이니까). 그런데 나눔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게 좀 과한 호의인가 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보내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으로서의 혜택을 요구한다. 우리 입장에서야 안 나누고 그냥 텃밭에 버려도 무방한데.
우연찮게 작년에 우리 텃밭의 규모가 갑자기 커져서 수확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이고 정중한 반응을 한 사람은 2~3명 정도밖에 없었다(신기하게 다 서울사람들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 홈베이킹한 과자를 회사 동료들과 나눠 먹은 적이 있었다. 맛있다고 하며 화기애애하게 잘 먹었는데 몇 주 지난 어느 날 동료가 와서 "○○씨 이제 과자 안 구워?" 하고 묻는다. "???"
과자를 구우면 반드시 본인에게 갖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망상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당연히 남도 나에게 무언가를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요구가 없는 경우에는 전혀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탁하는 사람을 굉장히 언짢아한다. 근데 한두 번 나눔을 받고 나면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서슴없이 부탁들을 하곤 한다.
인연이 닿아서 나눔을 받았으면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면 되지, 왜 다음을 기약하며 빌붙으려고 하는 걸까?
왜 호의를 단순히 호의로만 생각하지 않고 호감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설령 호감이라 할지라도 왜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하려고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사귈게 못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