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시골생활 이야기

게으른 농부란 없다

nar(kai) 2024. 8.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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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수확했던 망고수박

많은 사람들이 농사가 쉬엄쉬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놀랍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작물을 키우는 것이 유유자적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으면 일을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농사는 상당히 어려운 일에 속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지만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작물 키우는 것이 심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서 거저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라게 된다. 예전에 가사노동을 일 취급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게 텃밭 일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분명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실 작물을 가꾸려면 굉장히 부지런해야 한다. 작물을 키우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게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남을 돌보는데 전혀 소질이 없는 나는 애당초 텃밭 일을 내가 할 수 없는 일의 범주에 두었으니 농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이 납득이 잘 안 가긴 한다.
취미로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텃밭을 가꾸는 것 외에도 화분에서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고 요즘은 가정용 재배기를 이용하여 작물을 키우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작물을 키우는 것이 꽤 시간과 노동을 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내가 텃밭을 가꾸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노느니 장독 깬다'라고 짬나는 시간에 소소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의외로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텃밭을 가꾸는 것보다는 수확물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 늘 그렇듯 얻어먹는 사람들은 수확물의 가치를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텃밭에 버리더라도 남한테 안 주게 되기도 한다. 쓸모없는 인정을 받느니 차라리 텃밭 거름이 되는 게 더 유용하니까.
 
작물을 심거나 수확하거나 물을 주거나 약을 치거나 다 정해진 때가 있는데 의외로 텃밭 일을 하다 보면 해뜨기 직전, 해진 직후에 해야 되는 일이 굉장히 많다. 한마디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해야 된다는 소리다. 깻잎이나 상추, 호박잎 같은 쌈채소를 수확하려고 하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새벽 5시에 텃밭에 가서 수확해 와야 한다. 햇빛을 받으면 금세 시들시들해지기 때문에 햇빛이 없을 때 얼른 수확해 와야 한다. 지인들에게 택배를 보내려면 새벽에 수확해서 포장하고 택배까지 보내야 하니 그날 하루 텃밭 일은 완전히 공치게 된다. 그럼에도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수확물을 얻어먹고자 이것저것 보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일이 잦은 것은 참 아니러니 한 일이다. 텃밭 일이 바쁘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이 참~.
 
동생의 블로그 글에는 예상보다 많은 텃밭 수확물에 진저리 치는 내용이 꽤 있는데 그걸 본 블친들이 수확물을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버릴 거면 차라리 자기들에게 버려달라며. 말이야 그럴 듯 하지만 택배를 보내려면 그날 하루의 텃밭 일은 물 건너가는 건데 본인들도 텃밭을 가꾸고 있으면서 참 뻔뻔하기도 하지. 아무리 동생이 게으른 농부를 자처하고 남들보다 편하게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바쁘지 않은 건 아닌데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도 부탁한다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게으른 농부를 자처하고 사실 다른 농부들보다 게으른 것도 사실이지만 텃밭 일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히 해야 할 수 있다. 말이야 게으르다고 하지만 농사는 부지런하지 못하면 지을 수가 없다. 실질적으로 게으른 농부란 없는 것이다. 관행농업이든 자연농업이든 때에 따라 정해진 일을 부지런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텃밭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다. 게으름의 흔적은 작물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좋은 작물은 게으르게 농사를 지어서는 절대 얻을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게으르게 농사를 지을 바에는 차라리 안 짓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수확물을 보면 제대로 키운 수확물은 확실히 드물다. 사실 작물을 키우는 것은 파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함인데 파는 것보다도 질 떨어지는 수확물을 얻을 바에야 그냥 사 먹어야지 왜 농사를 짓는가? 시간 아깝게.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나 내가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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