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시골생활 이야기

농사는 고귀한 일이다

nar(kai) 2024. 10. 22. 08:00
728x90

농장 텃밭 옆에는 철도역이 있는데 철도역에서 근무하는 언니가 가끔 우리 텃밭에 놀러 온다. 우리와 안면을 트고 종종 우리에게 커피를 타다 주기도 하고 우리 수확물을 얻어가기도 하는데 가끔 '너희 같은 고급 인력이 이렇게 농사나 짓고 말이야. 이게 뭐 하는 거야. 능력이 아깝지 않아?'라며 나름 우리를 걱정한다고 이런 타박을 하곤 한다.

걱정을 해주는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사실 이런 어리석은 언사가 몹시 불편하다. 우리야 판매목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니(사실상 동생의 취미생활이다) 업무의 고하, 능력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도 고쳐줄 마음도 없기 때문에 굳이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거나 정정해 주지 않지만 쓸데없는 대화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 사뭇 불쾌하다. 

나는 자신이 하지 않는 일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좀 한심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시골 사람들이 농사를 우습게 보는 것은 더 한심하다. 

 

나는 일의 품위를 결정하는 것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자면 똑같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고 어떤 선생은 존경받고 어떤 선생은 무시당하는 것처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위가 달라진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위 진입장벽이 낮은 일을 많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지만 사회는 유기체와 같아서 쉽고 하찮아 보이는 일도 제대로 잘하게 되면 좋은 선순환을 가져와서 사회가 큰 향상을 이루게 한다.

현명한 사람은 이러한 일의 원리를 잘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한다. 오히려 직업적 소양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업무의 고하를 구분 짓고 타인의 일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개념을 적용한다면 세상에 하찮은 일이라는 건 없다. 일을 하찮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고급 인력이 농사나 짓느냐'는 말은 얼마나 무식한 말인가?

 

나는 타의에 의해 텃밭을 가꾸게 되긴 했지만 농사가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어느 정도 지식도 필요하고 기술도 익혀야 하고 결실을 기다리는 인내심도 있어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기대하며 일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성실과 절제와 인내와 신념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성품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자타공인 일 잘하는 사람인데도 직접 경험해 보니 농사는 꽤 어려운 축에 속하는 일이였고 농사를 잘 짓는 것은 사실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사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대부분의 농부들이 하찮게 일을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농부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먹는 것은 꽤 중요하다. 그러니 그 먹거리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유통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꽤나 간과하는 것 같다. 좋은 먹거리들은 분명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 맞지만 좋은 먹거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농약과 비료에 찌든 농산물을 비싸다고 불평하면서 사 먹으면서 농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