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시골생활 이야기

결국 종자로 쓸거면서(갑임 아주머니와 선풍콩)

nar(kai) 2024. 1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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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수확한 선풍콩

 

일전에 갑임 아주머니는 선풍콩 맛을 보고 싶다고 하여 작년에 수확한 우리 선풍콩을 미니지퍼백 하나 가득(대략 300g 정도다) 얻어갔다. 우리가 작년에 선풍콩을 2kg 수확했으니 300g이면 우리에게는 적은 양이 아니다. 선풍콩은 아랫집에서 종자 하라고 준 콩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굳이 우리 콩을 달라고 해서 우리 콩으로 선풍콩을 가져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콩 맛을 보겠다고 하면서 콩자반을 한다고 할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야 했다.

 

우리 선풍콩 상태를 보러 갑임 아주머니의 텃밭에 갔더니 갑임 아주머니는 한창 선풍콩을 수확하고 있었다. 콩을 톱으로 베다가 힘들어서 쉬고 있는 중이란다. 가끔 점순 아주머니나 갑임 아주머니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데 체력이 너무 약해서 일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 남들이 한 시간이면 할 일을 하루종일 하고 있으면서 힘들다 힘들다 하소연을 하곤 한다. 저런 체력으로 어떻게 농사를 짓겠다는 건지. 콩을 심은 여덟 두둑 중에 세 두둑이 남아 있었다. 갑임 아주머니가 톱질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동생이 답답했던지 콩을 베 주겠다고 나섰다. 우리 콩 중에 수확할 것들을 빠르게 전정가위로 베어놓고 갑임 아주머니네 콩 세 두둑을 베는데 1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졸지에 금방 콩 수확이 끝난 갑임 아주머니는 입이 귀에 걸렸다. 우리에게 고맙다고 과일 좀 먹고 가라고 우리를 잡는다. 아휴~ 텃밭 일 하다가 뭐 먹는 거 정말 싫은데 고맙다고 주는 거니 사양할 수도 없고 마지못해 먹으면서 갑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갑임 아주머니는 선풍콩을 심고 콩이 안 난 자리에 점순 아주머니가 준 모종(청태)을 갖다 심었단다. 올해 콩 농사가 잘돼서 선풍콩에 대한 신뢰가 한껏 높아진 갑임 아주머니는 내년에도 메주콩은 선풍콩으로만 심을 거라면서 올해 본인의 콩은 청태랑 교잡이 됐을 수도 있으니 우리한테 먹는다고 얻어간 선풍콩을 종자로 써야겠단다.

묵은 콩은 발아율이 떨어져서 종자로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는 해줬지만 내년에 뭘 심을지는 갑임 아주머니의 뜻이겠지. 

 

사실 선풍콩을 주면서도 진짜 먹으려고 받아가는 게 맞을까 의심이 들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종자로 쓰고 싶은 거였다. 갑임 아주머니의 이런 태도는 정말 화가 나는 게 종자로 쓸 거였으면 아랫집에서 준 선풍콩을 받아갔어도 되는 거였는데(어차피 그 콩은 안 먹을 거라서 버릴 예정이다) 왜 굳이 유기농인 우리 콩을 가지고 가서 종자로 쓰려는 것일까?

어차피 텃밭을 반납하고 나면 교류를 안 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전에 정 떼려고 그러는지 요즘 갑임 아주머니는 꼴 보기 싫은 짓만 골라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부추를 베어가도 되냐고 전화를 해서 우리를 불쾌하게 했었었다. 우리가 키운 작물을 마치 자기 작물처럼 수확해 가려고 한다. 자기도 키우면서 어쩌다 한번 얻어가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먹을 때마다 우리 작물을 가져가서 먹으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선풍콩이 더 짜증 나는 건 작년에 갑임 아주머니네 텃밭에 선풍콩을 심어놓고 수확하면 종자로 주겠다고 그랬는데 벌레 꼬인다고 약 치라고(자기네 콩에 벌레가 옮아갈까 봐) 하도 잔소리를 해서 동생이 홧김에 꼬투리가 달려있는 선풍콩을 모조리 베 버렸었다. 아마 그걸 놔둬서 수확했으면 갑임 아주머니가 쓸 종자는 충분히 나왔을 거다. 가만히 보면 갑임 아주머니는 괜히 설레발쳐서 다된 밥에 재 뿌리는 재주가 있는데 결국 그 손해는 오롯이 자기한테 돌아간다는 걸 모르나 보다.

그동안 갑임 아주머니한테 너무 잘해줬었는지 우리한테 은근히 바라는 게 많은데 늙은 호박도 더 달라고 자꾸 어필을 하고 있고 선비콩과 청자 5호 서리태도 종자를 얻으려고 은근슬쩍 떠보는데 검정동부콩, 검정울타리콩, 선풍콩에 이미 진저리 쳤는데 또 콩을 주면 내가 정신이 나간 거지.

 

콩을 수확하고 밭을 정리해서 반납하고 나면 갑임 아주머니와 교류할 일도 사라진다. 갑임 아주머니의 행동이 너무 화가 나지만 어차피 올해도 두 달 남았으니 그때까지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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