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시골생활 이야기

제발 김치는 주지 마세요

nar(kai) 2024. 11.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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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람들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안 먹는다고 해도 예의상 거절한 것으로 아는 모양인지 계속 권하거나 주려고 한다. 그중에 김치는 상당히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이제 김장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니 이전에 담아뒀던 김치가 다 동이 났을 때라서 시기적으로 솎은 무나 어린 배추들로 간단한 김치를 담아 먹을 때긴 하다. 반면에 우리처럼 김장 김치가 많이 남아 있어서 김장하기 전에 김치 냉장고를 비워야 하는 사람은 이 시기가 조금 힘들다. 김장 김치를 빨리 먹어 치워야 하는데 지금 나오고 있는 재료들로 또 김치를 담아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 실로 엎친데 덮친 격이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김치를 담는 사람이 많은 만큼 '김치 줄까?'하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 참 끔찍한 일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골에서는 김치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본인의 김치 담는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김치를 못 담아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쌀처럼 시골에서 가장 흔한 게 김치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모든 사람이 다 무난하게 잘 받는 것이 김치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크게 선심 쓰듯 김치를 갖다 주며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사람이 꽤 있다. 우리는 남이 담은 김치는 일절 먹지 않으니 사람들의 이런 호의가 매우 불쾌하다.

백김치

 

시골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다들 한결같이 고춧가루는 사서 못 먹겠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이 직접 키우다 보니 주변에서 고추를 키우고 말리는 과정을 속속들이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직접 관리한 것 외에는 그 위생 상태를 신뢰할 수가 없어서 사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김치도 고춧가루처럼 남이 만든 것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음식 중에 하나다.

김치는 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재료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양념에 치대고 보관하기까지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고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분명히 많다. 괜한 까탈이 아니라 모르면 몰라도 알고 나서는 도저히 남이 주는 김치를 좋은 마음으로 선뜻 받을 수가 없다. 판매하는 김치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라 논외로 하겠다.

김장김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골에서는 자신의 김치 담는 솜씨에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입맛을 보나, 요리하는 솜씨를 보나 재료를 고르는 안목을 보나 음식을 만드는 정성을 보나 내 기준으론 제대로 된 김치를 담을 역량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도 자신의 김치가 맛있다며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김치를 주려고 하니 실로 우리에게는 재앙 같은 일이다.

나는 아직까지 정말 김치를 맛있게 담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김치 재료부터 맛있게 키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데다 젓갈을 담는 사람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맛있게 담는 사람이 드물고 재료 손질이나 김치를 담는 방법도 엉망인 경우가  많아서 우리 기준으로는 도저히 먹지 못할 김치들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입맛이 주관적이라고 하지만 무슨 근거로 자신의 김치가 맛있다고 그러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깻잎김치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사실 김치와 같은 발효식품은 특히 더 좋은 재료를 써야 제대로 된 맛이 나는 법이다. 시골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 이긴 한데 사실 음식을 만드는 재료를 건강하고 좋은 재료로 꼼꼼하게 따져보고 깐깐하게 고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발효 식품들은 미생물들이 제대로 활동하게 해 줘야 되기 때문에 더욱 재료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는 가능한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 쓰고 있다. 김치도 마찬가지로 유기농으로 기른 건강하고 맛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야 맛있는 김치를 얻을 수 있는데 의외로 김치 재료를 따져 고르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이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고 어떤 사람은 양념도 사서 김치를 담는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그래도 배추나 고추를 직접 키우는 사람이 많은데 농사를 지어보면 알겠지만 배추나 고추는 약을 안치고 키우기가 정말 어려운 작물인 데다가 다비성 작물들이라 비료를 안 주고 키우는 곳이 거의 없다. 비료와 농약으로 점철된 재료들로 김치를 담으면 맛이 깔끔하지 않고 잡다한 이상한 맛이 더해져서 김치 맛이 역하다. 우리가 남이 주는 김치를 못 먹는 이유다.

열무김치

 

우리가 직접 키운 채소들로 김치를 담아보니 제대로 된 김치의 매력을 알 수 있었는데 잘 익은 김치는 조화롭고 다채로운 깊은 맛이 있어서 어떤 음식에 넣거나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린다. 재료들이 가진 본연의 맛이 숙성되면서 독특한 김치의 맛을 내게 되기 때문에 똑같은 김치 양념으로 김치를 담아도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내는데 이것이 또 아주 입에 착 감기는 조화로운 맛이다.

부추김치

 

시골 사람들은 늘 김치를 담으면서도 좋은 김치 재료들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뭐든 신선한 재료로 김치를 담아 놓으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김치의 맛을 알지 못해서인지 김치로 담아 놓으면 다 김치 맛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제대로 맛이 안 든 채소,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타서 만든 액젓, 간수를 제대로 빼지 않은 소금, 제대로 익지 않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등 좋지 않은 재료로 만든 김치는 엄선된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김치와는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처럼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좋은 김치 재료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리 이곳에서 김치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집이라고 해도 우리가 먹어보면 풍미가 좋지 않고 잡다한 맛이 나는 형편없는 김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파김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치를 주겠다는 호의는 우리에게는 아주 불쾌하고 짜증 나는 일이 되었는데 우리에게 뭔가(수확물이나 음식등) 바라는 것이 있어서 김치를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더욱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한다. 이쯤 되면 김치를 주겠다는 것은 전혀 호의가 아니다.

 

우리가 김치를 받는 것이 불쾌하다 보니 남에게 김치도 잘 안 주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항상 김장 김치가 많이 남아서 김장할 때가 다가오면 김치냉장고를 비우는 것이 큰 고민거리가 된다. 뭘 잘 몰랐을 때는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김치를 이용한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눠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김치를 줄 테니 요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해오는 사람이 있어서 요즘은 그것마저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김치가 맛있으니 김치를 이용한 음식도 맛이 있는 건데 이곳 사람들은 김치면 다 같은 김치인 줄 아는 모양이다.

 

매년 우리의 김치나 야채를 얻고 싶어서 김치를 주겠다는 사람들이 넘친다. 아무리 남이 담은 김치는 안 먹는다고 이야기해도 소 귀에 경 읽기다. 김치를 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지쳐서 결국은 안 주고 안 받기를 지향하게 된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은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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