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시골생활 이야기

생강을 수확하며 생긴 일

nar(kai) 2024. 11.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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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텃밭 생강밭
생강을 수확한 모습(7kg 가량의 생강을 수확했다)
개량종 생강(좌)과 토종생강(우) 비교

 

집 앞 텃밭의 생강을 수확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텃밭 일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아직 괜찮지만 수확을 단행했다. 이미 다른 텃밭에서 수확한 생강이 많기 때문에 집 앞 텃밭 생강은 가장 잘 자라긴 했어도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인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열심히 생강을 뽑아서 쌓아두고 있으니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보시곤 '생강이 그것밖에 안 달렸냐'며 말을 걸어온다. 나는 가끔씩 시골 사람들이 저런 쓸데없는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고 우리가 그들의 의견을 구한 것도 아닌데 누가 반긴다고 혹평을 하며 참견을 하는 것일까? 생강 농사가 망한 것 같아 보이면 안 그래도 속상할 텐데 조용히 지나가 주는 게 예의 아닌가? 굳이 인사를 하고 싶다면 '수확하느라 수고하시네요' 같은 좋은 말로 인사를 해야지 '생강이 그것밖에 안 달렸냐'를 인사라고 하고 있는 건가? 교양이 없어도 너무 없다. 물론 우리야 생강 농사가 잘 안 됐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말하는 태도가 기분 나빠서 대꾸하기도 싫다.

개 짖는 소리려니 하고 무시하고 있었더니 생강줄기는 쓸 거냐고 물어본다 김치 위에 덮으면 빨리 쉬지 않는다나? 역시 무시하고 그냥 우리 할 일만 했다. 시골에는 정말 상종 못할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가끔 시골 사람들의 저런 처세가 어이가 없다. 무언가 바라는 것(혹은 얻어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기분 좋은 소리를 해도 줄까 말까인데 저렇게 듣는 사람 기분을 팍 상하게 해 놓고는 어떻게  뻔뻔하게 뭘 달라고 부탁이란 걸 할 수 있는 걸까?

사실 우리는 집 앞 텃밭의 생강 농사가 꽤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설사 본인이 보기에 생강 농사가 망한 것 같아 보이더라도 생강 줄기를 얻어가고 싶었으면 '수고가 많으시네요. 생강 수확하십니까?' 하는 정도의 인사를 하며 생강 줄기를 달라고 해야 우리가 고려라도 해보지 않겠는가?  대뜸 '생강 농사가 영 시원찮네요. 그래도 생강줄기는 좀 주세요'라고 하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생강줄기를 주겠는가?

애당초 우리 농사에 1도 도움을 준 게 없는 사람들이니 농사가 잘됐네 안 됐네 하는 것은 그들이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생강 줄기를 얻어가고 싶었으면 겸손하게 부탁을 해야지 어디에 와서 시건방을 떠는 건가? 생강 농사 잘 지은 곳으로 가서 생강 줄기를 달라고 할 것이지.

 

아랫집 아주머니가 우리한테 얻어먹은 것이 많아 생강 수확을 거들어주겠다고 오셨다. 생강 줄기를 다듬고 흙을 털어서 그릇에 옮기면서 본인들은 생강 농사가 망했는데 우리는 생강 농사가 너무 잘됐다며 감탄을 연발하시더니 우리 농장 텃밭 한편에 본인이 생강을 심어놓으면 안 되겠냐고 하신다. 동생이 종자도 우리가 줬는데 우리 텃밭에 심을 거면 그냥 우리가 키운 거 얻어가서 드시라고 했더니 '에이 그래도 키우는 재미가 있는데'라고 하신다. 뒤늦게 아랫집 아저씨가 오셨는데 아주머니가 아가씨들 밭에 생강 좀 심어 놓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하니 아주머니를 말리지는 않고 집 앞 텃밭에 생강 뽑은 자리도 땅이 좋은데 멀리 가지 말고 그냥 집 앞 텃밭에 심는 게 좋겠다고 하시며 거든다. 이 어르신들이 참. 정말 우리 텃밭에 생강을 심어보고 싶으신 건가? 누가 보면 땅이 없는 줄 알겠지만 사실 아랫집은  우리보다 몇 배나 넓은 땅에 농사를 짓고 계신다. 작물을 심는 양도 우리보다 몇 배나 많다. 그런데 올해 본인들이 심은 옥수수가 너무 맛이 없어서 내년부터 옥수수는 심지 않고 우리한테 얻어먹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올해 호박도 제대로 열린 게 없다고 내년에는 호박도 안 심고 우리한테 얻어 드시겠다고 하셨었다. 그럼 생강도 그냥 얻어 드시지 그랬더니 생강은 키워보고 싶으시단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네 밭에서는 잘 안 자랄 것 같으니까 우리 텃밭 한편을 빌려 쓰시겠다는 거다. 

 

대체로 이런 부탁을 받게 되면 이게 진심인 건지 아니면 그냥 해보는 말인 건지 진위를 고민하게 된다. 나중에 가서 준비 안 해놨다고 서운해하면 그것도 골치 아프고 실컷 땅을 만들어 놨는데 안 심는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골치가 아프다. 더구나 생강밭은 아주 비옥해야 되기 때문에 밭을 만드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여느 시골 사람들처럼 그냥 던지는 말이면 골치 아픈데.

그래도 이왕 말이 나왔으니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어디를 내줘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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