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 만들기와 감자 심기
사실 우리는 감자를 그다지 많이 먹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 먹는 일은 극히 드물거라 자신한다. 동생과 나는 찐 감자를 먹지 않는다. 감자 요리도 거의 먹지 않아서 카레 할 때 쓰거나 감자튀김이나 감자칩을 해먹을 뿐이라 실제 우리가 일 년에 쓰는 감자의 양은 1~2kg이면 충분하다. 그나마 심어서 수확이 많이 되는 관계로 꾸역꾸역 먹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감자를 심어야 할 때가 다가오면 감자를 심어야 할까 심지 말아야 할까 고민이 된다.
감자는 키우는데 별로 손이 가지 않고 알아서 잘 자라는 데다 수확량도 아주 좋다. 가뭄 때문에 감자 농사가 폭망 했던 작년에도 씨감자 1kg당 10kg가 넘는 감자를 수확해서 파치를 제외하고도 80kg이 넘는 감자를 얻었으니 여기저기 나눔을 해도 수확한 감자를 처리하는 것이 꽤 버거운 일이었다.
수확한 감자를 처리하느라 고생하고 나면 매번 다음에는 감자를 적게 심자고 다짐을 하는데 씨감자의 최소 주문량이 3kg인 데다가 이삭 감자들이 자생으로 여기저기 자라서 본의 아니게 너무 많은 감자를 심게 되곤 했다.
감자를 아예 안 심을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직접 키운 감자를 먹어 보니 사 먹는 감자를 먹을 수 없게 된 것도 있고 감자를 나눔 받는 지인들이 너무 좋아하니 키우기도 어렵지 않은데 나눔용으로 쓰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민하던 끝에 결국 올해도 감자를 심기로 했으니 감자밭을 만들어야겠다. 우리는 보통 2월 하순에 감자를 심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음에도 짬을 내어 감자밭을 만들고 왔다. 감자밭 만들기라고 해도 주변에 풀을 매고 흙을 모아 두둑을 만들어 주는 게 다 긴 하지만. 두둑을 만들면서 보니 커피 찌꺼기와 잔사를 쌓아놓았던 곳의 흙이 아주 좋다. 감자가 아주 잘 자랄 것 같다. 추우니까 대충대충 후딱 감자밭을 만들었다.
우리가 밭 만드는 걸 본 많은 사람들이 '너희처럼 농사지으면 농사짓는 게 일도 아니겠다'라며 부러워하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우리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 부러워하는 마음에 진심이 그다지 많이 담겨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겠지.
우리는 지렁이 분변토를 믿고 밭을 얼렁뚱땅 만드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힘들게 퇴비와 비료를 뿌리고 기계 경운을 하고 비닐 멀칭을 해서 작물을 심는 주변 관행농들과 비교해도 항상 우리 작물이 더 잘 자라기 때문에 굳이 밭 만드는데 정성을 쏟진 않는다.
주말에는 짬을 내서 얼른 감자를 심고 왔다. 30cm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서 심어준다. 수량이 늘어나는 것은 싫으니까 감자를 쪼개지 않고 그냥 통으로 심는다. 나는 작물을 심을 때 깊이 심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러면 온도 변화에 대한 영향을 좀 덜 받게 된다.
남들이 보면 밭 만드는 것도 대충, 심는 것도 대충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두백 감자는 싹도 안 틔우고 그냥 심었는데 사실 아무렇게나 심어도 지렁이 분변토에서는 작물들이 잘 발아된다. 감자가 하두 싹이 안 나서 감자 심기를 포기했다는 갑임 아주머니의 경험담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 우리다. 감자를 처음 심었을 때는 액비도 주고 땅을 좋게 만든다고 낙엽도 깔아주고 미생물도 뿌려주고 온갖 정성을 들였지만 감자 심기 3년 차가 되니 다른 작물들과 마찬가지로 심고 수확만 하는 방임모드로 전환했다. 그래도 잘 자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우리는 이 지역에서 감자를 빨리 심은 축에 든다. 주변 사람들은 벌써 감자를 심었냐면서 너무 이르다고 걱정하지만 가을에 묻어놓은 감자도 때가 되면 다 싹이 나는데 조금 일찍 감자를 심었다고 뭔 큰일이 나겠는가? 어차피 때가 되면 싹이 올라올 텐데.
그나마 좀 걱정스러운 것은 텃밭에 버려둔 감자들이 자생으로 자라서 감자가 예상외로 많아지는 건 아닐는지 하는 것이다.
적당히 수확하게 되면 참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