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텃밭 이야기

그깟 냉이가 뭐라고

nar(kai) 2025. 3.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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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매다가 따로 챙겨둔 냉이

 

농장 텃밭 인근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소나무 산이 있는데 주말에는 종종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이 소나무 산에 등산하러 오는 등산객들이 있다. 나는 이렇게 무리 지어 운동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경멸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에 무리 지어 왁자지껄 떠들며,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서 취식하고, 개념 없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작년에 우리 텃밭에서 작물 도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었는데 인근 산으로 무리 지어 등산 오는 등산객이 늘어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 겨울 가뭄이 심해서 이 지역에 냉이가 씨가 말랐다는 소리가 들렸으나 우리 텃밭에는 일전에 냉이 도둑 사건이 있었을 만큼 냉이가 지천에 깔렸다. 우리는 냉이를 안 먹는지라 우리에겐 일반 잡초와 다를 바가 없지만 아랫집 아주머니가 냉이 타령하던 것이 생각나서 풀 매면서 같이 캔 냉이를 따로 모아뒀었다. 나중에 아랫집에 갖다 줘야지

 

텃밭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철도역에서 근무하는 언니가 커피를 타 가지고 인사하러 왔다. 작년에 우리 텃밭 작물을 꽤나 많이 얻어먹어서 그런지 우리 텃밭 일에 관심이 지대하다. 커피가 고플 시기에 커피를 가져다준 게 고마웠는지 동생이 따로 챙겨둔 냉이를 보여주며 냉이를 먹으면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인심을 쓴다. 말로는 '맨날 얻어먹기만 하니 미안해서 어쩌지' 하면서 신이 나서 냉이를 챙겨갔는데 때마침 철도역 화장실을 이용하고 돌아가던 등산객들이 그 언니가 가져가는 냉이를 보더니 자기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한다. '냉이가 왜 저렇게 좋아?', '이 밭에 냉이가 있는가 보다', '저기서 냉이 캐고 있네', '우리도 한번 쫙 훑어볼까?'

이 아주머니들 보게. 자기들끼리 작당모의를 마치더니 우리를 남의 텃밭에서 냉이를 캐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는지 보무도 당당하게 텃밭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개념 없는 것들.

 

동생이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다가 텃밭에 들어오려고 하자 바로 제지한다. '텃밭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세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들이 '그냥 좀 구경만 하려고 하는 거예요'란다. 구경은 멀리서 해야지 왜 텃밭에 들어오냔 말이다.

내가 '작물을 함부로 밟게 될 수 있으니 텃밭에 들어오면 안 돼요'라고 차분히 이야기했는데 텃밭에 못 들어오게 한 게 억울했는지 떠나면서 '이 동네 이름이 뭐야?  인심 한 번 야박하네'하며 남들 들으란 식으로 큰 소리로 말하며 씩씩대며 간다.

가소로운 것들. 오늘 지나면 안 볼 사람들인데 그들이 어떤 평가를 하든 우리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들은 우리를 망신 준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부지런하고 인심 좋은 아가씨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뜨내기들의 말 한마디로 바뀔 평판이던가? 우스운 것이 본인들은 냉이를 도둑질하려던 주제에 자신들이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면 인심이 야박한 것인가? 주제를 모르는 무식한 아주머니들이 아닌가? 떠들어 본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지.

 

우리가 냉이를 안 먹다 보니 평가가 박한 건지 모르겠지만 고작 냉이 그까짓 게 얼마나 한다고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되지, 생판 모르는 남의 밭에 들어가서 캐갈 생각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고작 냉이를 훔쳐갈 생각이나 하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씩씩대며 인심이 야박하네 운운 한단 말인가? 어차피 우리는 거들떠도 안 보는 냉이인데.

사실 텃밭 주변에 서서 '냉이 그거 좀 팔면(혹은 주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면 캐놓은 냉이를 거저 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안 먹는 것이니 관심도 없을뿐더러 이미 밭에 냉이는 많이 있으니 별로 아끼지도 않는 터였다. 근데 다른 좋은 방법을 다 제쳐두고 왜 텃밭 주인 앞에서 버젓이 텃밭에 드나들 마음부터 먹는 건지 잘 모르겠다. '구경'이라니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닌가?

텃밭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이 텃밭에 들어오는 것을 엄청 경계하는 데 우리 같이 여기저기 종자를  묻어놓고 중구난방으로 작물은 키우는 사람은 더더욱 조심스럽다. 십중팔구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작물을 밟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항상 최악의 수단을 선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큰 소리부터 쳐서 기세를 잡으려고 한다. 나같이 논리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이 무식해 보여서 기세를 잡기보다 오히려 무시만 당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심보가 좋지 못한 것을 보니 그들의 인생도 참 가시밭 길일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야박한 서울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기대가 없어서 주변의 평판을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살짝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왜 시골 사람들은 인심이 후해야 하는가?'

사실 내가 겪어본 시골 사람들 중에 인심이 후한 사람은 아주 드문데 '인심이 후한' 것이 무슨 시골 사람들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인심이 야박하다'는 말을 큰 욕이라도 되는 것인 마냥 지껄이는 것일까?

나는 갑자기 시골 사람이 '인심이 야박하다'는 평가를 듣는 경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아주 궁금해졌다. 시골에는 염치없고 뻔뻔한 사람들 투성이라 그런 말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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