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가 너무 좋은데......(쪽파 나눔)
지렁이 분변토는 토양의 구조가 아주 훌륭해서 배수가 잘되고 작물들이 물과 영양을 흡수하기 좋도록 되어 있어서 웬만한 작물들이 다 잘 자라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 작물은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우면 작물의 맛과 상태가 아주 탁월해서 나의 기준으로 꼭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워야만 한다.
쪽파도 필히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워야만 하는 작물 중에 하나다.
한창 쪽파를 수확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제 조금 더 날이 따뜻해지면 금방 추대가 형성되기 때문에 쪽파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추대가 형성되면 쪽파가 질겨져서 못 먹는다).
쪽파밭을 바라보는 우리는 심정은 복잡하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의 쪽파는 양도 많고 상태도 너무 좋다. 우리가 텃밭을 가꿔온 이래 이렇게 쪽파를 많이 먹어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올해는 쪽파를 열심히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쪽파들이 너무 많다. 저것들이 다 종구가 되면 쪽파 종구가 너무 많아질 텐데.
추대가 형성되기 전에 어떻게든 쪽파를 처리하고 싶지만 파김치도 몇 차례나 담았고 파전도 해 먹을 만큼 해 먹었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한단 말인가? 쪽파만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나름 나눠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눔도 다 했는데. 쪽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하면 아낌없이 뽑아 버렸을 텐데 그냥 버리기에는 쪽파가 너무 좋다.
쪽파 같은 다비성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2월에 요소 비료를 주는데 이 요소 비료를 주고 키운 쪽파는 잎이 파랗고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나 먹어보면 쪽파가 질기고 쓴맛이 난다. 우리 주변의 농가들을 둘러보아도 요소 비료를 안 쓰는 곳은 우리 집이 유일할 정도로 많은 농부가 요소 비료를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월동한 쪽파는 파향이 진하고 단맛이 강한데 요소 비료를 주고 키운 쪽파들은 파향이 그다지 진하지 않고 단맛보다는 인공적인 잡맛이 느껴져서 월동한 쪽파 맛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유기농으로 작물을 키워서 먹기 때문에 비료 쳐서 키운 작물의 이상한 맛을 민감하게 느끼다 보니 요소 비료를 주고 키운 쪽파는 우리에게 공짜로 줘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맛이 없는 쓰레기인데 다른 곳에서는 그런 쪽파라도 못 구해서 안달이라 맛있고 상태가 좋은 우리 쪽파가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고마움도 모르고 우리 작물을 탐내는 염치없는 사람들에게는 주기 싫지만.
텃밭에 가서 쪽파를 볼 때마다 아까운 마음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데(그나마 텃밭에 자주 안 가니 다행이다) 마침 커피찌꺼기를 가지러 간 카페에서 사장님이 파김치 담을 쪽파를 얻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이 카페 사장님은 시골에서 만난 보기 드문 상식적인 사람인 데다가 인정도 많아서 우리에게 수고한다고 바나나나 과일을 종종 챙겨주곤 하신 분이다.
우리도 커피찌꺼기를 얻어오면서 가끔씩 우리 수확물을 나눠주곤 했지만 사장님이 직접 우리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침 잘 됐다. 얼른 농장에서 쪽파를 수확해 와서 다듬는다.
역시 먹을 복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나 보다. 우리가 여러 가지 작물을 키우고 나눔 해 봐도 이번 쪽파처럼 작물이 아주 좋을 때 딱 맞춰서 요청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평소에도 인정이 많더니 역시 먹을 복도 있나 보다.
며칠 동안 쪽파가 자라서 파란 잎이 길어졌다. 비도 안 오는데 쪽파는 왜 이리도 잘 크지? 다듬으면서 보니 쪽파 상태가 여전히 좋긴 하다. 다행이다.
카페 마감 시간이 다가온 관계로 수확해 온 쪽파를 다 손질하지 못하고 손질한 것만 갖다 주기로 했는데 손질한 쪽파가 1.5kg 정도 된다. 이 정도면 두 식구가 파김치 한 번은 담아 먹기에 충분하겠지?
덕분에 우리도 난데없이 쪽파가 잔뜩 생겼다. 또 파전이라도 해 먹어야 할 판이다.
쪽파를 일부 나눔 했어도 텃밭에는 여전히 쪽파가 많이 남아 있다. 쪽파 상태가 너무 좋은데....... 곧 상태도 안 좋아지고 추대도 형성될 것이다. 아쉽고 아까운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