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마늘 근황
농사를 시작한 초반에 마늘은 우리가 무척이나 신경 써서 키우던 작물 중에 하나였다. 원래 지렁이 분변토에서 마늘이 잘 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추비를 위해서 지렁이 분변토로 북을 돋우거나 지렁이 분변토 액비를 만들어 주면서 정말 신경 써서 키웠었더랬다. 구가 비대해지기 시작하는 이맘때에는 영양분과 수분이 필요하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지렁이 분변토 액비를 만들어 주며 엄청 정성 들여 키웠었었다. 그랬던 마늘이었는데 최근에는 마늘이 살짝 뒷전인 작물이 되어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굳이 변명하자면 다른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라지만 한창 수분이 많이 필요할 때인 요즘 여기는 가뭄이 아주 심한데도 마늘을 돌아볼 생각을 안 한다.
최근에 농장 텃밭에 잘 안 가다 보니 농장 텃밭에 심겨 있는 작물에 대한 관심이 한층 식었다. 돌아보면 해야 할 일이 지천이지만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니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도 까먹을 지경이다.
계속 비가 오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물이라도 줄 수 있는 집 앞 텃밭은 괜찮은데 수도 시설이 전무한 농장 텃밭은 가뭄에 직격탄을 맞아서 심겨있는 작물이 말라죽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지만 손쓸 방도가 없으니 그저 작물들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이다.
풀을 매러 농장 텃밭에 갔다가 홍산마늘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홍산마늘이 너무 좋다. 제대로 추비도 해주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좋은 거지? 주아를 키운 통마늘로 심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마늘을 심은 땅이 좋아서 그런 걸까?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샌드위치로 쌓아 삭혀서 만든 마늘밭은 현재 농장 텃밭에서 제일 좋은 땅이기는 하다. 보수력이 아주 좋아서 겨울부터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는데도 가뭄의 피해 없이 멀쩡하다. 다른 곳에 심어놓은 녹비작물인 호밀도 말라죽었고 가뭄으로 잡초도 잘 나지 않는데 참 놀라운 일이다.
사실 마늘은 이 시기부터 구가 비대해지기 때문에 수분이 많이 필요한데 비도 안 오고 비 예보도 없어서 걱정스럽긴 하다. 물을 받아가서라도 줘야 할까?
원래도 홍산마늘은 마늘이 굵긴 하지만 지나다 보니 몇몇 홍산마늘의 대가 아주 굵어 보여서 낫자루를 옆에 놓고 비교해 봤더니 낫자루의 굵기와 얼마 차이가 안 난다. 와우, 마늘 줄기가 얼마나 굵은 거야? 우리가 홍산마늘을 키워본 이래 역대급으로 굵은 것 같다.
올해 홍산마늘이 자라는 모양은 처음부터 남다르긴 했다. 처음부터 아주 기세 좋게 자라더니 길고 추웠던 겨울을 보낸 것 치고는 상태가 너무 좋다. 보통 이때의 마늘은 겨울을 견디느라 영양이 부족해서 잎 끝이 노랑노랑 말라있곤 하는데 우리 텃밭의 홍산마늘은 잎이며 줄기며 아주 파릇파릇하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신경 써서 지렁이 분변토도 북을 돋우고 액비도 수시로 주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던 때보다 소흘 해져서 신경도 안 쓰고 아무것도 안 해주고 있는(그나마 물도 안 준다) 올해가 오히려 마늘의 상태가 가장 좋으니 그간의 수고들이 참 허탈해진다.
그나마 관리가 되는 집 앞 텃밭에 심겨있는 마늘은 지렁이 분변토 액비를 만들어서 뿌려줬다. 관리를 안 해줬어도 홍산마늘은 농장 텃밭의 마늘이 더 좋긴 하지만. 역시 땅이 좋아야 하나?
우리는 올해 다른 사람들의 마늘 작황을 잘 모르는데 우리 텃밭을 구경하던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이 그냥 보기에도 다른 곳의 마늘보다 우리 텃밭의 마늘이 특히 좋아 보인다면서 마늘을 잘 키웠다고 칭찬하더란다.
마늘의 굵기도 굵기지만 초록초록 싱그런 자태가 유난히 좋아 보이기는 한다. 해갈이 될 만큼 비만 한번 와 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