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는 삶을 살면서 김치를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김장 김치를 먹고 필요에 따라 조금씩 사 먹었으면 됐으니까.
사실 나는 김치를 반찬으로 먹지를 않는다.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찌개, 김치 만두의 재료로 간혹 쓸 뿐이다.
'그 나이 되도록 김치 담을 줄도 모르고 뭐 했냐?' 는 주변의 핀잔에도 아랑곳없이 이번생에 김치 담을 일은 아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골에 내려오니 김장이야 말로 일년지 대계였다.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는 음식에 특별히 까탈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입맛에 안 맞으면 안 먹으면 되니까~
시골에 내려와서 김치를 담아본 이후부터는 김치에 유독 같잖은 까탈을 부리게 됐다. 맛도 맛이거니와 김치같이 만드는 공정이 길고 다양한 음식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위생문제에 노출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살이를 시작하고 동생과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한 김치만은 직접 담가먹자고 합의를 했더랬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까탈을 이해하지 못하고 김치를 사 먹으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곤 한다(진심이라 더 무섭다). 우리가 고춧가루를 빻으러 가는 방앗간 주인은 시골 사람들은 경악할만한 값비싼 유기농 고추의 가격에 '차라리 김치를 사 먹고 말지'하며 안타까워하고, 맘씨 좋은 우리 아랫집 아주머니도 아가씨 둘이서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열심히 농사를 짓나 싶은지 본인이 김치를 담아 주겠다고 하여 우리를 기함하게 하셨다.
주변의 반응이 어떠하든 우리는 우리가 담은 김치이외에는 김치를 아예 먹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배추 열 포기 내외의 김장을 준비해야만 한다.
김치를 담아보니 김치가 맛있으려면 배추, 소금, 젓갈, 고춧가루가 맛있어야 한다.
초반에는 우리도 텃밭이 없었고 배추 키울 여력도 되지 않아서 배추를 얻어서도 김치를 담아보고 사서도 담아봤는데 산 배추로 담은 김치는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그 일 이후로는 웬만하면 배추는 직접 기른다. 사실 배추 키우는 것은 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병충해가 심하기 때문에 유기농 배추를 키우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맛있는 김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키울 수밖에.
젓갈은 멸치액젓이랑 새우젓을 쓰는데 젓갈이라는 것이 소금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사 먹는 것과 집에서 직접 담아 먹는 것의 맛이 천양지차다. 아마 담아 먹어봤다면 사 먹지는 못하리라~
멸치젓의 경우 멸치가 너무 어리면 젓갈의 감칠맛이 부족하고 멸치가 너무 크면 지방이 많아 비린맛이 난다고 한다. 해서 5월에 삼천포항에 멸치 사러 가는 것도 연례행사다.
새우는 인터넷으로 구입하는데 6월에는 비가 많이 와서 새우 조업이 들쭉날쭉이라 제대로 된 육젓은 작년에 처음 담아봤다. 6월에 구입했는데 조업을 못 나가서 추젓이 온 적도 있다(ㅠㅠ).
김치 재료 중에 가장 난감한 것이 고춧가루다. 키우는 것도 엄두가 안 나고 그렇다고 구매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도 가루류는 웬만해서는 사는 게 아니기도 하다. 어떤 것을 넣고 갈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고추를 말리는 걸 보면 병든 거 곰팡이 핀 거 벌레 든 거 이런 걸 아랑곳하지 않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늘 유기농 건고추를 구매해서 빻아서 썼었는데 작년엔 동생의 호기심에 기인해 토종 고추(수비초)를 심었었다. 토종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는 또 그 맛이 예술이다.
예전에는 생김치를 좋아했었는데(아마 그때는 양념맛으로 김치를 먹었었나 보다) 김치를 담아보니 제대로 담은 김치는 익으면 그 맛이 훨씬 풍부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효 과학이라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배추의 은은한 단맛과 양념맛이 어우러져 숙성을 거치면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난다.
우리 김치를 얻어 먹어본 사람들은 우리가 요리 솜씨가 훌륭해서 김치가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맛있는 김치의 관건은 맛있는 재료에 있다. 그래서 맛있는 김치 재료를 위해 일 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아~~ 시골 생활 몇년만에 입맛만 자꾸 까다로워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