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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시골생활 이야기

가래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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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떡집에서 갓 해온 가래떡

 
시골에서는 떡을 맛있게 잘 만드는 떡집이 극히 드물다. 시골 사람들이 늘 그렇듯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직업에 진지하게 임하여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 내려온 초반부터 떡을 잘하는 떡집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는데 나름 인터넷에서 맛있는 떡집이라고 유명세를 탄 떡집들조차도 경험이 적고 입맛이 저렴한 시골 사람들이 운영하는 떡집답게 떡 맛도 형편없을뿐더러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도 너무 엉망이어서 믿고 떡을 주문할만한 떡집을 단 한 곳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떡을 먹고 싶을 때면 압구정공주떡집이나 경기떡집 같은 서울 유명 떡집에서 택배 주문을 해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택배로 받는 떡은 갓 해온 떡보다 맛이 없기 때문에(그럴지언정 시골 떡집의 떡보다는 맛있지만) 점점 떡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 떡을 자주 먹지 않게 된 것 같다.
 
제대로 된 떡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형편없는 동네 떡집에서 일 년에 두세 번은 가래떡을 뽑곤 하는데 그 이유는 가래떡만큼은 아무리 맛있기로 소문난 떡집에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떡집에서 만들어 파는 떡보다는 비록 실력 없는 떡집에서 만들었어도 쌀을 가져가서 직접 뽑은 떡이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떡집에서 만들어서 팔고 있는 가래떡과 쌀을 가지고 가서 직접 뽑은 가래떡은 맛도 맛이지만 밀도부터 차이가 난다. 그러니 실력이 없는 떡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동네 떡집에 가래떡을 주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떡을 잘하는 떡집에서 가래떡을 뽑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이곳에는 떡을 잘하는 떡집이 없으니 그건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에서 생활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떡집에 가래떡을 맡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니 요즘에 도시에 살면서 떡집에 가래떡을 주문해서 먹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추측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 같다. 많은 떡집에서 가래떡이나 떡국떡을 만들어 팔고 있기도 하고 공장에서 만든 떡국떡을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니 만들어진 가래떡이나 떡국떡을 사 먹지 굳이 떡집에 쌀을 가지고 가서 가래떡을 뽑아달라 주문할 것 같지가 않기도 하다. 여기는 시골이라 명절에 떡집에 가래떡을 주문하는 일이 당연하긴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는 데다 선물 받은 처리곤란한 안 먹는 쌀이 있고 냉동실에 보관했던 떡국떡을 다 소진했기도 해서 이번에 가래떡을 뽑기로 했는데 의외로 시골에서 떡집에 가래떡을 주문하는 것은 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물론 편하게 떡집에 가래떡을 주문해 놓고 받아와도 되긴 하지만 떡집에서 떡집의 쌀로 만들어 주는 가래떡은 쌀을 가져가서 만들어오는 가래떡보다 훨씬 맛이 없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꼭 쌀을 가져가서 가래떡을 뽑아와야 한다.
어떤 떡집에서는 떡의 품질을 위해서 손님이 가져오는 쌀로는 떡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떡집에서 만들어 파는 가래떡 중에 맛이 뛰어난 가래떡을 먹어본 적은 없으니 부득불 쌀을 가져가서 가래떡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떡을 하는 쌀도 밥을 해 먹을 수 없는 맛없는 쌀인데 떡집에서는 도대체 어떤 쌀을 쓰길래 그렇게 가래떡이 맛이 없는 건지 의아하긴 하다.
 
떡을 만들 쌀은 깨끗이 씻어서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 후 물기를 빼고 가져가야 하는데 떡집에서 쌀이 바뀌거나 양을 속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떡을 다 할 때까지 지키고 있어야 한다. 보통 반나절은 떡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되니 아무 때나 떡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가래떡을 썰어서 떡국떡으로 소분해 놓았다

 
우리는 떡을 하는 양이 적어서 떡집에 떡국떡으로 썰어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래떡을 해오면 집에서 떡을 펼쳐서 하루정도 굳힌 후에 떡국떡으로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떡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정리하여 보관하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다.
가래떡을 썰다 보면 어린 시절 배웠던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가 떠오르곤 하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떡국떡을 고르게 썬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척 신기한 일이다. 기계로 썰어도 고르게 썰기는 힘든데 얼마나 오랜 시간 떡을 썰어야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우리야 우리가 먹을 거니까 모양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좀 엉망으로 떡을 써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떡을 써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다. 
기술이 발달해서 슬라이서들이 워낙 좋은 것들이 많다 보니 요즘 시대에는 칼로 떡을 써는 사람들이 드물 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발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보다 진부한 옛날 방식을 이용하여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수고를 해보는 것도 깨달음을 얻는데 꽤 도움이 된다.
가끔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경험하며 체득했던 성찰들이 은연중에 사장되곤 한다. 어떤 가치는 편리함만을 추구해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인데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단순해지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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