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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우리도 고구마를 수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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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고구마

 
우리는 고구마를 심어서 제대로 수확해 본 적이 아주 드물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고구마 알이 잘 안 들기 때문이었다. 항상 고구마 줄기만 풍성했기 때문에 고구마 키우는 것은 포기할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지만 올해도 동생이 회사 동료에게 얻어온 고구마 모종 9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또 고구마를 심었다.
 
올해 봄에는 가뭄이 심해서 고구마를 심었던 주변 농가들이 고구마 순이 비쩍 말라서 고구마 순을 수확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우리 텃밭의 고구마 순은 독야청청 통통하고 무성함을 자랑했기에 일찌감치 고구마 순도 따서 나눠줬더랬다. 고구마 순이 너무 많이 뻗지 못하게 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고구마 순도 열심히 따주고 고구마 줄기가 뿌리를 박지 못하게 줄기 밑으로 제초매트도 깔아주었지만 고구마 순이 뻗어나가는 것을 결국은 막지 못해서 단지 고구마 9개를 심었을 뿐인데 수십 개의 고구마를 심은 것처럼 고구마 순이 주변을 뒤덮었다.
고구마 모종을 준 동생의 회사 동료가 고구마 순을 얻으러 우리 텃밭에 방문했는데 고구마 순이 뻗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너희는 고구마를 몇 개나 심었냐?'라고 물어보았단다. 자신의 텃밭과 비교했을 때 도저히 9개의 고구마 순이 뻗은 모양으로는 보이지 않았었는지 본인이 준 고구마 모종 9개 심은 게 전부라고 했더니  매우 놀라워했었다.

고구마를 수확한 텃밭 모습

 
이 지역은 가뭄이 워낙 심해서 고구마 농사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래도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사람들이 한창 고구마를 수확할 쯤에 동생이 우리 고구마 뿌리 하나를 파 봤는데 역시나 고구마가 달린 게 없다고 해서 올해도 고구마 수확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구마는 없으니 넘쳐나는 고구마 순이나마 열심히 먹자는 생각에 사람들이 보이면 고구마 순을 따가라고 인심을 썼더랬다. 고구마 순을 얻어가는 사람마다 고구마 순이 너무 좋다고 감탄을 하며 얻어갔는데, 고구마 순이 얼마나 무성했는지 여러 사람이 양껏 따갔음에도 정작 소진된 고구마 순은 고구마 하나분 밖에 되지 않았다. 고구마 순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서 곧 서리가 내릴지도 모를 날씨가 되었기 때문에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 하는 작물들을 수확하려고 텃밭에 나갔다. 일단 단호박과 호박을 정리하고, 토란과 종자용 생강 조금을 수확하고 고구마 순도 일부 수확해서 말리기로 계획했었는데, 텃밭에 도착했을 때 텃밭 인근 철도역에 근무하는 언니와 딱 마주쳤다. 마침 잘됐다고 만난 김에 고구마 순 필요하면 따가라고 했더니 염치없다고 머뭇거리던 평소와는 다르게 곧장 얻어가겠다고 나섰다. 가끔은 아무리 우리가 무작위로 나눠주는 작물이라고 하더라도 임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작물을 나눠주다 보면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시기적절하게 나타나서 작물을 얻어가는 일이 종종 생긴다. 

흙을 떨어내고 정리한 고구마

 
단호박을 정리하려다가 철도역 언니에게 고구마 순을 먼저 수확해줘야겠다 싶어서 고구마 순을 따주고 있었는데 열심히 고구마 순을 낫으로 끊어주던 동생이 '어머? 여기 고구마가 달려 있어'라고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이전에 고구마 순을 끊어서 나눠줬던 자리 밑을 정리하다 보니 땅 속에 제법 통통하게 알이 든 고구마가 보인 것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다른 고구마의 뿌리 쪽도 파봤는데 많은 양은 아니지만 큼직하게 고구마가 몇 개 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고구마 순을 따려고 왔다가 졸지에 고구마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지렁이 분변토답게 갓 캐낸 고구마가 꽤 깨끗하다. 철도역 언니가 고구마 캔 것을 보더니 갓 캔 고구마가 이렇게 색깔이 이쁜 것은 처음이라며 고구마가 너무 이쁘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전에 갑임 아주머니에게 듣기로는 고구마는 굼벵이가 먹어서 굼벵이 피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구마를 심는 사람들은 땅에 필히 토양살충제를 섞어서 밭을 만든다. 우리 텃밭은 텃밭 두둑에 식물잔사나 커피찌꺼기 같은 유기물을 잔뜩 쌓아두기 때문에 땅 속에 유기물을 분해하는 벌레들이 많은데 굼벵이도 그중 하나라 텃밭을 파헤치면 굼벵이가 여기저기 보일 정도로 굼벵이가 많다. 그동안 고구마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했지만 텃밭에 굼벵이가 많으니 우리 텃밭에서 자라는 고구마는 굼벵이 피해가 심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있는 걱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고구마를 수확해 보니 미리 고구마 줄기를 제거한 한 개의 고구마 외에 줄기가 살아있는 고구마들은 희한하게도 굼벵이 피해가 전혀 없었다. 예상보다 깨끗한 고구마의 상태에 우리도 꽤나 놀랐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우리는 웬만한 작물은 손으로 쑥쑥 뽑아서 수확을 하는데 고구마는 꽤 깊이 땅속에 뿌리 박혀 있어서 호미로 캐서 수확을 해야 했다. 그래도 땅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중간에 끊어지거나 하는 것 없이 깨끗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고구마 순을 얻어가신 덕곡댁 아주머니가 '고구마 줄기가 이렇게 좋은데 왜 알이 안 들었을꼬?' 하며 한껏 우리를 안쓰러워했는데, 결국은 염려와 달리 우리도 고구마를 수확했다. 동생은 고구마가 하나만 나와도 우리는 고구마 풍년이라며 양이 적든 많든 고구마를 수확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했다. 그간 고구마를 수확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도 고구마를 수확했다고요.'

고구마 비교샷(왼쪽은 동생의 회사 동료가 준 고구마, 오른쪽은 우리 고구마)

 

동생이 집에 와서 고구마를 정리했는데 철도역 언니에게 나눠준 고구마를 제외하고 우리가 가져온 고구마가 총 14kg이라고 했다. 고구마가 크다 보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 같다. 9개 심어서 14kg 이상 수확했으면 수확량은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처음 고구마 수확을 해보니 수확량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고구마 수확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워낙 고구마 알이 안 들어서 내년에는 척박한 땅을 골라서 시범적으로 고구마를 심어보려고 했었는데 이번에 고구마를 수확하고 나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년에는 거름기 적은 땅을 골라서 고구마를 심어야겠다. 고구마를 많이 먹는 것은 아니라서 사실 고구마 수확을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외의 수확이라서 그런지 다른 작물들을 수확할 때보다 확실히 더 기분이 좋다. 근데 그동안은 왜 고구마가 안 달렸을까? 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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