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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식 이야기

파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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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파가 너무 많으니 파김치를 담기로 했다. 쪽파의 길이가 길어서 치대기가 불편하니 그냥 잘라서 담는다. 원래는 잘라서 김치 담는 것을 안 좋아하는데 파김치 조금 담자고 큰 그릇을 꺼내기가 여의치 않다. 제대로 담는 것은 김장 때로 미루고 곧 먹을 생각으로 간단하게 담아본다.

 

매년 파김치를 담기는 하는데 실제로 가을에 파김치를 담아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전까지는 쪽파가 늦게 자라서 늘 김장에 쓰고 남은 쪽파로 파김치를 담아놓거나 월동한 쪽파로 봄에 파김치를 담곤 했다(월동한 쪽파가 달긴 하다). 가을의 쪽파는 밑동이 가늘고 부드러워서 양념이 금세 베어 들기 때문에 생김치로 먹기에 제격이다. 원래 파김치는 생김치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김치 양념은 멸치 액젓과 새우젓, 마늘, 매실청,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드는데 이번에는 사과도 조금 갈아 넣어본다. 보통 매실청이나 설탕을 넣지 않는 김장김치 양념(단 맛은 김치를 빨리 익게 한다)과 다르게 부추김치나 파김치처럼 생김치로 먹는 것들은 단 맛을 추가하여 양념을 만든다. 쪽파는 따로 절이지 않으니 만들어 놓은 양념에 썰어놓은 쪽파를 넣어서 살짝(쪽파가 상하지 않게 가볍게) 섞어 주기만 하면 파김치 완성이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늙은 호박을 얻으려고 집에 오셨는데 동생이 파김치 자랑을 하며 맛을 보여준다. 쪽파가 맛있으니 쪽파를 뽑아가서 김치를 담으라는 의도였는데 기대와는 달리 맛을 보더니 맛있다고 저녁 반찬으로 먹게 조금 달라고 하신다. 파김치가 맵긴 한데 간도 딱 맞고 아주 맛있다고 하면서 양념에 뭘 넣냐고 물어본다. 

 

우리 김치를 먹어본 사람마다 김치가 아주 맛있다고 김치 만드는 법을 궁금해하는데 사실 맛있는 김치를 담는 비결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맛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있다. 먼저 쪽파가 맛있어야 하는데 비료를 주고 키운 쪽파는 줄기가 억세고 비료의 쓴맛이 난다. 김치를 담을 때는 비료를 주고 키운 채소를 넣으면 그것이 양념이든 주 재료든 숙성되면서 잡다한 맛이 더해져서 김치맛을 버린다. 그러니 김치를 담을 때는 고춧가루부터 마늘, 쪽파 모두 유기농으로 맛있게 기른 재료를 이용해야 한다. 멸치 액젓도 파는 것을 사서 쓰면 액젓의 맛도 약하고 비린맛도 심하다. 멸치 액젓도 시기에 맞게 담아야 비린 맛이 없고 고소한 멸치 액젓을 얻을 수 있는데 김치는 액젓과 새우젓의 맛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멸치 액젓과 새우젓 모두 우리가 직접 담아 사용한다. 고춧가루 역시 김치 맛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의외로 맛있는 고춧가루를 찾기가 힘든데 토종 고추(수비초, 유월초)로 만든 고춧가루는 (우리가 키워서 맛있는지 아니면 토종 고추가 원래 맛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맵긴 하지만 정말 맛있다. 김치가 익으면서 고춧가루의 단맛이 김치의 감칠맛을 더한다.

 

희한하게 김치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김치는 늘 좋은 재료를 총망라해서 만들다 보니 남이 만든 김치나 사 먹는 김치는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다. 은근 시골 사람들은 본인의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의외로 맛있는 김치는 극히 드물다. 관행으로 키운 김치 재료들로 어떻게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겠는가? 다들 김치맛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많고 만드는 과정이 복잡한 데다 발효까지 시켜야 되니 실제로 잘 담은 김치는 맛이 아주 특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치를 담아주겠다는 사람들은 많으나 그 호의를 절대 받을 수 없어서 때로는 무척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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