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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본의 아닌 쑥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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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쑥

 
어린 시절에 쑥떡을 해주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산으로 들로 열심히 쑥을 캐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쑥떡을 기대하며 열심히 캐 놓은 쑥들은 양이 너무 적다는 핑계하에 매번 쑥국으로 돌변했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는 쑥이란 사기의 아이콘 같아서 쑥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애써 먹을 정도의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관심 밖의 음식인 것이다.
봄나물의 대표 격인 냉이나 쑥은 키워 먹는 사람들은 없고 여기저기서 자생하는 것들을 채취해서 먹는 것이다 보니 냉이나 쑥이 자라는 장소의 위생을 가늠하기 힘들고 냉이나 쑥을 캐는 사람들의 행태를 고려해 보면 남이 키운 작물들보다도 더 끔찍하고 불결한 것이 아무 데서나 채취한 자생작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에 쑥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냉이는 원래 안 먹었으니 논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원래도 봄나물들은 먹는 것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아무리 영양이 높네, 건강에 좋네 하더라도 쑥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우리 텃밭에는 냉이와 쑥이 자생하여 자라고 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텃밭에서 나는 쑥을 수확해서(양이 많다고 점순 아주머니에게 나눔도 했다) 쑥국을 끓여 먹어보니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우리 텃밭에서 자란 쑥은 연하고 쑥향이 강하면서도 맛이 깔끔했다. 우리가 키운 쑥은 다른 쑥과 달리 역한 맛이 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작물이 자라는 토양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생의 이야기로는 쑥은 중금속 흡착 능력이 아주 강해서 안 좋은 환경(중금속으로 오염된 환경)에서 자란 쑥은 그야말로 중금속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단다. 건강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아무 데서나 채취한 쑥을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데 희한하게 건강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시골 사람들조차 도로 옆이나 길가에서 자라는 쑥이나 약을 많이 치는 곳에서 자라는 쑥은 먹으면 안 된다고 캐지도 않는데 뭘 모르는 도시 사람들은 쑥이라고 열광하며 열심히 캐서 가져간다. 오염된 환경에서 자란 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많은 작물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야 건강하고 맛있게 자라는데 쑥도 예외는 아니라서 건강을 위해 제철 쑥을 챙겨 먹는 거라면 직접 키워 먹는 것이 제일 좋다. 좋은 땅에서 자란 쑥을 먹어보면 왜 쑥을 직접 키워서 먹어야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맛과 향이 정말 남다르다.

캐 놓은 쑥

 
동생은 우리가 키운 쑥으로 쑥떡을 해 먹어 보고 싶다고 텃밭에 있는 쑥을 번식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씨앗도 뿌리고 쑥뿌리도 옮겨 심어서 쑥의 재배 면적을 열심히 늘려 놓았다. 덕분에 올해는 텃밭에서 쑥이 자란 곳이 꽤 있었는데 막상 쑥을 수확해 보니 생각보다 쑥의 양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창 자라고 있는 쑥이 아까워서 제철 음식인 쑥국 한 번 끓여 먹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쑥을 캐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얼마 못 캐고 들어오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캐서 가져온 쑥이 손질하고 재보니 400g 정도 된다고 한다. 많이도 캤다. 쑥국을 열 번도 더 끓여 먹겠다며 동생이 투덜댄다. 우리가 먹는 양을 고려해 봤을 때 쑥을 너무 많이 캔 게 맞긴 하지만 한창 좋은 쑥을 그냥 놔두고 안 먹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동생이 열심히 만든 쑥개떡

 
생각보다 쑥을 많이 캤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동생은 쑥개떡을 만들겠다고 부지런을 떨었다.  쌀을 불려서 갈고 쑥을 데쳐서 다지고 익반죽으로 떡반죽을 만든 후 적당한 크기로 모양을 만들어서 쪄내고 참기름을 바른다.
모양도 그럴싸 하지만 집에서 만든 떡답게 쑥 맛이 진하다. 아랫집 아저씨도 드셔보시더니 쑥 맛이 아주 진하게 난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겠지요. 
만드는 과정을 보니 두 번은 못해 먹을 것 같이 손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음식이 떡이다. 동생의 부지런함에 경의를 표한다.

쑥국

 
마침 육수가 있어서 봄에 꼭 한 번은 먹어주는 쑥국도 끓였다. 풀떼기만 들어간 국이라고 동생은 못마땅해했지만 먹어보니 꽤 맛있다고 한다. 향긋한 쑥향이 정말 제대로다.
육수에 된장을 풀고 쑥과 대파, 들깨가루를 넣어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비교적 만들기가 간단한 음식인데 이렇게 만들기 간단한 음식일수록 재료의 맛에 크게 좌우되는 법이라 맛있는 쑥으로 끓이는 게 관건이다.
 
나름 열심히 쑥을 먹었지만 아직도 캐 놓은 쑥이 반이나 남았다. 저걸로는 또 뭘 해 먹어야 하지?
동생이 '쑥 튀김이 그렇게 맛있다는데......'라며 슬쩍 운을 뗀다. 쑥을 먹기 위해서 튀김까지? 튀김을 좋아하는 나지만 기름처리가 귀찮다고 여간해서는 튀김을 안 해 먹는데 쑥을 위해서 튀김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쑥 잔치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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