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을 키운 지는 제법 됐지만 종자를 남겨서 파종해 보기는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처음에는 땅콩 모종을 종묘사에서 사서 심었기 때문에 종자를 남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동생의 설명으로는 개량종자들은 형질이 안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채종 해서 심게 되면 엉뚱한 형질의 작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채종 해서 심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매번 땅콩 모종을 사서 심다가 아랫집에서 땅콩 종자를 줘서 직파해 본 이후로는 땅콩 종자를 사서 심게 되었는데 아마도 흑색땅콩이나 자색땅콩 같은 흔하지 않은 땅콩들을 심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곳에서는 흑색땅콩이나 자색땅콩 종자나 모종을 구할 수가 없다).
작년에 처음으로 동생이 수확한 땅콩 중에서 좋은 땅콩들을 엄선해서 종자용으로 따로 보관해 놨었기 때문에 올해는 우리가 땅콩 종자를 사지 않은 첫해가 되었다(사실 우리는 종자를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지만 워낙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니 종자를 사게 되면 남는 종자가 너무 많아 처치곤란일 때가 많다).
동생의 말로는 땅콩이 4월의 마지막 씨앗 파종이라고 했다. 직파하는 것은 땅콩이 마지막이고 그 이후로는 다 모종으로 심게 될 것이다. 올해는 정말 땅콩을 적게 심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에 흑색땅콩 스무 개와 일반땅콩 서른 개를 까서 종자를 준비했다.
우리는 땅콩을 촉을 내서 파종하기 때문에 종자로 준비한 땅콩을 목초액에 소독한 후 촉촉한 상토 위에 올려놓고 따뜻하게 놔두는데 3일 정도 지나니 땅콩들이 전부 촉이 났다.
땅콩이 촉이 났으니 심으러 가야겠다. 준비한 땅콩밭에 북주기용 잔사를 쌓아놓은 옆으로 구멍을 파고 땅콩을 심어주면 되는데 땅콩은 워낙 새들이 잘 파먹기 때문에 우리는 좀 깊이 심는 편이다.
30cm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한 구멍에 두 개씩 촉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해서 땅콩을 심어 주었다.
새들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깊이 심고 꼼꼼하게 잘 덮어준다.
대부분의 작물이 그렇지만 심고 난 이후에 자라는 것은 오로지 작물의 몫이다. 실제로 땅콩 심는 데는 10분도 안 걸릴 만큼 땅콩 심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땅콩은 먼저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기 때문에 싹이 늦게 올라오는 작물이다 보니 싹을 구경하려면 심고 나서 2~3주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땅콩은 나름 재배기간이 길고 초기에는 성장이 느려서 우리같이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 땅콩을 키우려면 재배기간 내내 풀을 매는 게 일이긴 하지만 땅콩을 심는 사람들이 필히 뿌리는 토양살충제를 생각하면 도저히 사서는 먹을 수 없는 것이 또 땅콩이라서 수고스럽더라도 꼭 키워서 먹어야 하는 작물이다. 나는 제초제나 토양살충제처럼 땅에 뿌려서 작물에 흡수될 가능성이 농후한 농약의 피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서(의외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엽면으로 뿌리는 농약 말고 제초제나 토양살충제처럼 땅에 직접 뿌리는 농약은 농약이라고 생각도 안 한다. 작물에 직접 뿌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다.) 땅속에 열매가 있는 작물(감자, 무, 당근, 생강, 강황, 땅콩, 마늘, 양파 등)들은 가능하면 키워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가 키운 땅콩은 콩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강해서 다른 사람이 키운 땅콩들보다 훨씬 맛이 있다. 동생의 제주도 지인은 우리 땅콩을 먹어보고는 '언니네 땅콩은 우도 땅콩보다도 더 맛있다'며 땅콩이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가 키운 땅콩을 먹다 보니 사거나 남이 주는 땅콩은 맛없다고 못 먹게 된 경향이 있어서 소소하게 짓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 이 땅콩 농사인 것이다.
이제 땅콩 농사의 대장정이 시작됐으니 틈틈이 풀 매 주고 북 줘가며 정성스레 키워보겠다고 의지를 다져본다. 땅콩은 정말 애정하는 작물이지만 키우다 보면 늘 고추에 우선순위가 밀려 방치되기 일쑤였는데 올해는 적게 심었으니 신경 써서 키워서 좋은 수확량을 얻게 되도록 노력해보려고 한다. 튼튼하게 뿌리박고 잘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