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인의 정서에 잔칫날에는 떡이라는 관념이 있다 보니 특별한 날에는 떡을 해서 나눠먹곤 한다. 먹을 것에 별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지만 분명 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가끔씩 맛있는 떡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렸을 적 특별한 날에만 먹었던 추억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 기억 속의 떡은 굉장히 맛있는 것이어서 떡에 대한 기대가 아주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떡을 사 먹었다가 맛에 실망하게 되곤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떡을 기피하게 되는데 떡을 만들어 파는 곳은 많지만 맛있는 떡을 찾기란 쉽지 않고, 더구나 시판 떡은 워낙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서 먹고 나면 몸에 안 좋다는 것(시판 과자보다도 더 건강에 안 좋은 것 같다)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보니 떡에 대한 흥미도 점점 떨어지고, 의지적으로 떡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떡을 여러 곳에서 주문해 먹어보고 실망하는 일이 잦다 보니 이제는 슬슬 맛있는 떡에 대한 집착도 없어지고 떡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서 떡을 광고하는 것도 쳐다보기 싫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먹고 싶지 않은 떡이라도 부득불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떡을 해 먹을 일이 생기긴 한다.
우리가 떡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재료를 소진하기 위함이다. 쌀이나 호박등을 한 번에 대량으로 처리하기 위해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인데, 우리를 제외한 주변 동네 사람들은 다들 떡은 없어서 못 먹는 것이라 무슨 떡이든 떡이면 다 좋아하며 먹기 때문에 취향 상관없이 나눠먹기에 무난한 편이다. 이번에도 안 먹는 늙은 호박을 처리하기 위해 떡을 하기로 했다. 늙은 호박을 채 썰어서 가져가도 되지만 이번에는 호박고지를 만들어서 호박고지떡을 하기로 했다.

기성 떡을 사 먹다가 떡집에 떡을 맡기려면 여러모로 번거롭고 귀찮다. 아마 그러니 점점 떡을 잘 안 해 먹는 것이리라. 기성 떡을 사 먹지 않고 굳이 떡을 맡기는 이유는 좋은 재료로 만드는 떡을 먹기 위한 것이다. 요즘은 빼어난 기술을 가진 떡집은 아주 드물다. 특히 시골의 떡집은 떡을 만드는 기술이 정말 형편없다. 그래도 모든 음식이 그렇듯 떡도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면 떡 만드는 기술은 형편없어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떡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파는 떡을 사 먹지 않고 굳이 떡집에 맡겨 떡을 하게 된다. 어쨌든 파는 떡보다는 맛있으니까.
떡은 아무래도 좋은 쌀로 만들어야 맛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밥 해 먹는 쌀로 떡을 만들기는 좀 아까우니까 떡 할 쌀을 따로 구입했다.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먹어보지 못했던 품종인 골든퀸 2호 쌀이다. 도정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유기농 햅쌀인지라 떡 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이 쌀을 집어 들었더니 직원들이 다들 가격이 비싸다며 한 마디씩 한다. 일반 혼합품종의 쌀보다 고작 오천원정도 비싼 건데 왜들 비싸다고 난리인지? 유기농에 단일품종 쌀인데 그 정도면 그렇게 비싼 건 아니지 않나?
육안으로 보기에는 쌀의 상태가 꽤 좋다.
떡집에 떡을 맡길 때는 떡에 넣을 재료와 불린 쌀을 가져가야 한다. 우선 호박고지부터 만드는 데, 늙은 호박을 잘라서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6mm로 슬라이스 한 후에 소금과 설탕에 한 시간 정도 절여 물기를 뺀 후 건조기로 50도에서 7~8시간 말려서 꾸덕꾸덕한 호박고지를 만들었다.
쌀은 한 되(1.8L, 이곳의 쌀 한 되의 중량은 1.6kg이다)를 계량해서 깨끗이 씻은 다음 반나절 동안 물에 불린 후에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서 준비했다.
보통 떡을 맡길 때는 아침에 일찍 맡겨야 하기 때문에 오전 7시쯤 준비한 불린 쌀과 호박고지를 챙겨가서 떡집에 맡겨 놓았다.

한 시간쯤 지나서 떡이 다 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쌀 한 되 떡 하는 공임이 17,000원. 재료 다 갖다주고 떡을 맡긴 것 치고는 싸지 않은 가격이다.
골든퀸 2호 쌀의 특징인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나서 떡이 더 맛있어 보이는데 떡집 사장님이 쌀이 너무 좋았는지 찹쌀을 섞었냐고 물어본다. 다른 쌀에 비해 쌀이 너무 찰졌나 보다.
음식도 그렇지만 떡도 마찬가지로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특히 쌀은 좋은 쌀을 골라 먹는 사람도 드물지만 좋은 쌀로 떡을 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 우리는 늘 나름 좋은 쌀을 가지고 가서 떡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떡을 해도 색깔이나 찰기가 남다른데 떡집 사장님도 그걸 느껴서 그런지 우리에게 무슨 쌀을 쓰는지 넌지시 물어보곤 한다.
백세미가 기존 맵쌀보다 좀 더 찰기가 있는 모양인지 꽤 쫄깃쫄깃한 느낌의 설기떡이 되었는데 중간중간 들어있는 호박고지가 적당히 달달해서 질리지 않고 먹기에 무난한 떡이 되었다. 기대가 없었던 떡이라 그런지 예상보다는 맛있는 떡이었는데, 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주 맛있어할 것 같다. 작년에 호박 설기떡을 했을 때도 아랫집 아주머니가 '너희 떡은 어쩜 그렇게 맛있냐?'며 의아해하셨더랬다. 내가 느끼기에는 작년보다 올해 한 떡이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 호박을 채 썰어서 넣은 것보다는 호박고지로 만들어서 넣은 게 더 나은 것 같다.
매년 겨울마다 추운 날씨에 노지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말리는 호박고지가 있는데 내년에는 그 호박 고지로 떡을 만들어 봐야겠다. 건조기로 말린 것보다 훨씬 맛있는 호박고지 떡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