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고구마는 줄기만 키웠다. 몇 년째 고구마는 달리지 않고 줄기만 무성하게 뻗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고구마 키우기는 포기해야 할까 보다. 누구는 유기물이 너무 많은 땅에서는 고구마 알이 안 든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는 고구마를 심어서 제대로 수확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고구마 순만 늘 남들에게 나눠줬었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고구마 알은 안 들고 줄기만 무성하다.
예전에 덕곡댁 아주머니가 고구마 순을 얻어가시면서 올해는 가뭄 때문에 고구마 줄기도 말라서 온 동네 텃밭에 수확할만한 고구마 순이 하나도 없었는데 우리 텃밭의 고구마 순은 왜 이렇게 통통하고 무성하냐며 감탄한 적이 있었다. 고구마 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로서는 원하는 고구마는 얻지 못하고 먹지도 않는 고구마 순만 잔뜩 있는 현실이 아주 실망스럽고 못마땅한데, 남의 속도 모르고 마냥 부러워하니 참 난감하다.
처음 먹었을 때 안 좋은 기억이 각인된 음식은 그 이후로 다시 먹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곤 하는데 우리에게는 고구마 순 김치가 그런 음식 중에 하나이다.
시골 생활 초반에 우리 텃밭의 수확물이나 지렁이 분변토를 많이 얻어간 덕곡댁 아주머니가 고마운 마음에 껍질을 벗긴 고구마 순을 한 뭉치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가 도시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식에 대한 까다로움이 덜했을 때이기도 하고 어르신의 성의를 무시하기 어렵기도 해서 그다지 잘 먹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온 고구마 순으로 꾸역꾸역 고구마 순 김치를 담았더랬다. 사람들의 평가는 아삭아삭 맛있는 별미 김치라고 하는데 우리가 처음 먹은 고구마순 김치는 도무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맛이 없어서 맛만 본 후에 모두 내다 버렸었다. 양념과 김치에 들어간 재료들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고구마 순은 질기고 김치의 시원한 맛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 김치 같지 않은 이상한 맛에 놀란 이후로 고구마 순은 우리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음식 재료가 되었다.

몇 년째 고구마는 얻지 못하고 고구마 줄기만 키웠지만 우리가 고구마 순을 따먹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남들에게 인심만 썼었는데, 올해는 고구마 순이 많아서였을까? 풀떼기를 싫어하는 동생이 나서서 고구마 순을 먹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고구마 순을 챙겨 왔다. 기대가 없는 나는 일거리만 늘린다고 만류를 했는데 웬일로 동생이 우리 텃밭에서 자란 고구마 순을 먹어 본 적은 없으니 한번 먹어보고 판단하자고 하니 내키지 않지만 요리해서 맛을 보기로 했다.
대체로 고구마 순은 볶아서 먹는데 볶아 먹는 걸로는 고구마 순을 많이 처리할 수 없으니 대량으로 처리하기 위해 고구마 순 김치를 담기로 했다. 이번에도 맛이 없다면 텃밭에서 고구마는 영영 없애버리리라.
사실 우리 텃밭에서 자란 고구마 순이니 어쩌면 조금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기도 하다. 원래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작물들은 억세지 않고 아주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고구마 순도 그렇지 않을까?(그동안은 안 먹어 봐서 우리는 고구마 순의 맛을 모른다)

한창 고구마 순을 딸 때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고구마 순 김치를 별미 김치로 소개하며 판매하고 있으니 그 별미 김치라는 것을 맛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고구마 순 김치를 담는 것이기도 하다. 워낙 처음에 크게 데인 고구마 순 김치라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고구마 순 김치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고구마 순 껍질을 벗기고 손질하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고구마순 김치는 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린 순을 쓰면 껍질을 벗기지 않고 사용해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뭘 몰라서 크고 통통한 고구마 순으로 골라 따왔기 때문에 껍질을 벗겨서 사용한다.
껍질을 벗긴 고구마 순은 깨끗이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끓는 물에 넣어 40초 정도 살짝 데친 후 소금을 뿌려 30분간 절여 놓는다.

고구마 순을 절이는 동안 김치 양념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김장김치 양념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보니 그 김치 양념을 이용하기로 했다. 김장김치 양념은 고춧가루, 멸치액젓, 새우젓, 찹쌀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갈아 넣은 무, 청각을 넣어 만든 아주 기본적인 양념이다. 우리의 경험상 김치는 재료의 맛이 중요하기 때문에 김치양념을 거창하게 여러 가지를 넣어 만들 필요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양념만 사용하더라도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김치를 만들면 잘 숙성된 이후 아주 맛있는 김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양념으로 파김치, 부추김치, 갓김치, 노각김치등 다양한 김치를 담는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양념을 사용했음에도 김치가 익고 나면 각기 다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이다. 김치의 맛이 양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김치의 재료에 달려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장김치 양념은 김치가 빨리 익는 것을 막기 위해 김치를 빨리 익게 하는 당분은 전혀 넣지 않았는데 고구마 순 김치는 빨리 먹을 김치라서 김장김치 양념에 매실청과 설탕을 조금 더해서 양념을 다시 만든다.
고구마 순에서 수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김치 양념은 좀 되직하게 만들고 양념을 먹어봤을 때 살짝 짭조름한 정도로 간을 맞춘다.

소금에 절인 고구마 순은 씻어서 물기를 뺀 후에 썰어놓은 양파와 대파와 함께 섞어서 양념에 버무린다. 상온에 하루 놔뒀다가 냉장고에 넣으면 2~3일 후부터 바로 먹을 수 있다.
만들 때부터 김치 냄새가 맛있게 나긴 했는데 예상보다 꽤 맛있는 김치가 되었다. 아삭거리는 식감에 시원한 맛이 더해져서 더운 날 입맛을 되돌리는 별미 김치라는 말이 맞긴 한 것 같다.
내친김에 고구마 순 김치를 많이 담아서(고구마 순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인들에게도 나눠줬었는데 다들 반응이 폭발적이다. 너무 맛있단다.
우리 집 김치는 모든 재료와 양념이 우리가 직접 키우고 만든 것이라서 원래도 맛있기로 유명하지만 올해의 고구마 순 김치는 김치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맛있다. 김치를 반찬으로 잘 안 먹는 나와 동생이 고구마 순 김치만 놓고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고 할 정도다. 아무것도 없이 밥에 고구마 순 김치만 넣고 쓱쓱 비벼 먹으니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입맛 되살리는 별미 김치 인정.
처음의 악몽 같던 고구마 순 김치는 고구마 순이 맛이 없었던 걸로 이해해야겠다. 사실 고구마 순을 줄기차게 따서 판매하는 사람들은 고구마 순이 잘 자라라고 비료를 뿌려서 키우기 때문에 고구마 순이 질기고 쓴 맛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고구마는 거름기가 없는 척박한 땅에 심는다. 그러다 보니 고구마 순도 억세고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유기물이 풍부한 우리 텃밭에 심긴 고구마는 비록 고구마는 없지만 고구마 순은 아삭하고 달달해서 꽤 맛있다.
우리에게 고구마 순을 얻어갔던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다시 찾아오는 이유가 그래서였나 보다. 이거 이거 고구마는 포기하고 고구마 순 장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참 웃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