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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식 이야기

배추겉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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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김장 김치와 샤부샤부를 만들 때 외에는 배추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는 쌈배추도 먹고 나물도 해 먹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김장이 끝나고 나면 배추가 쓸데 없어진다.

올해는 김장을 적게 해서 배추가 생각보다 많이 남은 데다 지금은 한창 얼고 녹고 해서 배추가 아주 달고 맛있을 때지만 우리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추라 텃밭에 남아 있는 배추를 보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버리기엔 아깝고 먹을 일은 요원하다. 사실 겨울 배추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 있는 작물이다. 우리 텃밭을 구경하면서 남아있는 배추를 탐을 내는 사람은 많지만 맛을 생각하거나 키우는 노고를 생각해 보면 멋모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퍼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지금까지는 김장이 끝나면 배추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 나눠줬었지만 올해는 호박 도둑들 때문에 잉여작물이라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되도록이면 나눔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텃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추를 보면 뭘 해 먹어야 할지 처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동생이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 배추 겉절이가 먹고 싶어'라고 했다. 원래도 생김치를 안 먹는 데다가 그나마 상추와 같이 먹는 야채로 만든 겉절이도 일절 손을 안 대는 동생이 먹지도 않는 배추로 만든 겉절이가 먹고 싶다고 하다니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김장김치는 아직 꺼내 먹을 정도가 아니긴 하고 묵은지는 너무 시기 때문에 딱히 김치로 먹을만한 게 없긴 하지만 원래도 김치는 반찬으로 꺼내 먹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배추 겉절이가 먹고 싶을까? 나이가 드니 입맛도 자꾸 변하나 보다.

뭐 배추는 많으니까 막김치를 담아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좋아하지 않아서 안 먹었던 음식이라 배추 겉절이도 굳이 따지자면 처음 해보는 음식이 되겠다. 만드는 것은 김치 담는 것과 비슷하니 어려운 건 아니지만.

 

배추는 밑동을 잘라내고 낱장으로 깨끗이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고 소금을 뿌려 절여 놓는다. 배추의 이파리들이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만 절여주면 되는데 뒤적이면서 2시간 정도 절여주니까 적당하게 절여졌다.

배추가 절여지면 잘 헹궈서 물기를 빼주고 액젓과 매실청, 새우젓, 다진 마늘, 다진 대파, 고춧가루, 설탕, 깨소금을 넣어 만든 양념에 잘 버무려주면 된다. 나는 딱히 양념을 계량을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맛을 봐가며 만드는 편인데 김치와는 달리 배추가 싱겁게 절여졌기 때문에 양념은 간을 좀 짜게 만들어야 버무렸을 때 적당하게 간이 맞다. 기호에 따라 무나 당근 쪽파들을 같이 넣어서 버무려도 된다.

만드는 것도 아주 간편한 데다 배추의 줄기가 아삭아삭하고 달아 김치와 구분되는 색다른 맛이 있어서 반찬으로 먹기에 나쁘지 않다.

 

구운 돼지고기에 곁들여서 먹어도 맛있고, 누룽지에 반찬으로 올려 먹어도 맛있다. 생전 안 먹던 것인데 이렇게 맛있다며 먹고 있으니 정말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배추 겉절이가 생각보다 맛이 있으니 남은 배추를 처리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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