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식을 잘 안 해서 거의 모든 요리를 직접 해서 먹곤 하지만 특별히 고기를 이용하는 요리들은 필히 집에서 해 먹는다. 사 먹는 고기 요리는 고기의 양도 적고, 고기의 질도 떨어져서 여러모로 성에 안 차기 때문인데 한번 요리하면 곳곳에 고기 기름이라 치우기가 번거롭긴 해도 음식의 맛이 사 먹는 것에 비할바가 아니니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직접 해 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골에서는 가능한 한 음식을 나눠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고맙다고 음식으로 갚는 것도 난감하고 맛있다고 더 해주길 바라면 그것도 짜증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둘이 먹기에 많은 음식 같은 경우 아랫집과 나눠먹긴 하는데 아랫집은 굳이 차 타고 갈 일 없으니 지리적으로 편한 것도 있고 아랫집 식구들이 우리 집 음식을 너무 좋아하니 취향이 달라도 좀 편한 부분이 있어서 가끔씩 아랫집 찬스를 쓰곤 한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시골사람치고는 음식 솜씨가 있는 편이긴 한데 성격 탓인지 아님 바빠서 그런 건지 음식을 좀 대충대충 하는 편이어서 우리와는 음식 취향이 좀 다르다 보니 아무리 식구들이 먹고 싶다고 한들 손이 많이 가는 고기 요리는 잘 안 해주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해 가는 고기 요리에 식구들이 환장을 하고 먹으면 아주머니가 민망하신지 '남이 보면 고기는 구경도 못해본 사람인 줄 알겠다'라고 핀잔을 주곤 하는데 그러면서도 아주머니도 맛있다고 아주 잘 드시는 편이라 우리가 보기에는 사돈이 남 말하는 것 같아 그냥 우습다.
날씨가 싸늘해지니 따뜻한 국이 필요하다면서 국을 뭘 끓여 먹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동생이 요즘 무를 수확할 때니 소고기뭇국이나 육개장을 끓여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아랫집 아저씨와 내 친구인 아들이 '육개장도 집에서 끓여 먹냐'며 육개장에 급 관심을 보인다. 이제껏 아랫집 아주머니는 육개장을 끓여준 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다 여기에는 육개장을 파는 식당도 거의 없다. 아랫집 아저씨가 육개장을 먹어보고 싶다고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동생이 '냉동실에 야채도 처리할 겸 육개장을 끓여서 나눠 먹을까요?'라며 선심을 쓴다. 물어 무엇하리 아랫집은 무조건 환영이지.
오랜만에 고기 요리를 잘하는 동생이 솜씨를 발휘해 보기로 했다. 동생은 육개장에 들어가는 숙주를 키우겠다며 숙주 키우기에 돌입했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우리가 육개장을 끓인다니 걱정이 되는지 국에 들어갈 야채들이 있냐 다른 거 사야 할 건 없냐 자꾸 물어본다. 아무래도 아주머니 생각에는 간단한 국이 아니라 아가씨들이 제대로 끓이기는 할까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매번 우리의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드셨으면서도 남이 음식을 한다고 하면 영 마음이 안 놓이나 보다.
사실 육개장은 들어가는 재료들이 많아서 그렇지 만들기가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이빨이 시원찮은 어르신들을 위해 압력솥에 푹 삶아 손으로 찢은 고기에 불려서 삶은 고사리와 토란대, 죽순을 넣고 고추기름과 다진 마늘, 멸치 액젓을 넣어 양념을 해 놓은 다음, 갖은 향신채와 고기를 삶아 거른 육수에 채 썬 무를 넣어 끓이다가 무가 어느 정도 익으면 양념해 놓은 고기와 야채를 넣어서 끓이고 마지막으로 숙주와 버섯과 대파를 넣어 한소끔 끓여내면 된다.
냄비째로 아랫집에 들고 가서 한소끔 끓였더니 아랫집 아주머니가 배가 안 고팠는데 고깃국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빨리 밥을 먹자고 재촉하신다. 압력솥에 해간 콩밥과 육개장이 너무 맛있었는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버리고는 배부르다며 만족감을 표하신다.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는지 국밥집을 차려도 되겠단다.
아랫집 식구들이야 모르지만 사실 우리 집 음식은 절대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음식에 들어가는 정성이 가히 상상초월이다. 죽순도 직접 캐와서 압력솥에 삶아서 손질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던 거고 고사리도 봄에 유기농 고사리를 구입해서 손수 말린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들어가는 재료들이 다들 정성이 들어간 좋은 재료들이다 보니 음식의 맛이 좋은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시골 사람들은 좋은 것의 가치를 잘 모르니 대화를 하다 보면 참 답답한 면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시골 사람들과의 교류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자꾸 음식을 나눠먹고 있을까? 매번 장사하라는 소리나 들으면서.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문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