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을 보면 2~3년이 지나면 하나 둘 울타리를 친다. 동물을 막으려는 건지 사람을 막으려는 건지 모르지만. 해가 갈수록 울타리가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처음에는 줄만 쳤다가 나중에는 그물망을 치는 식으로.
예전에는 텃밭 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울타리를 치는 모습을 무심히 봤었더랬다. 저런다고 얼마나 보호가 되나? 이런 의구심을 마음에 품으면서.
텃밭 작물을 도둑맞는 일은 의외로 흔하다. 시골 사람들은 의식이 없어서 남의 텃밭에서 작물 한두 개쯤 따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산책로 옆에 텃밭이 있는 어떤 사람은 행인들이 자꾸 따가서 가지며 오이며 자신이 키운 작물을 하나도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의 작물을 '서리'해 먹은 일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기도 한다. 우리 텃밭에서도 빌라에 사는 사람이 텃밭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몰래 따먹곤 한다며 고백(?) 하기도 했다.
시골 사람들은 텃밭에서 있는 작물을 '서리' 해 먹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 텃밭 주인이 그 정도 인심은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 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 투성이니 그들을 교화할 수는 없고 별수 없이 자신의 작물을 잘 단속하여 피해를 막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당시만 해도 작물 도둑들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동네 사람들은 풀이 천지인 밭이라 뱀 나올까 봐 우리 밭에 들어오기를 꺼렸고 어차피 우리가 다 못 먹는 작물이니 소소하게 도둑맞는 것은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작물 도둑질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수준으로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코로나 규제가 풀리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인근 산으로 등산 오는 외부객들이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텃밭 가장자리로 자랐던 호박과 호박잎을 따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텃밭에 들어와 호박과 호박잎을 따 가면서 텃밭을 아무렇게나 밟고 다녔다. 그러더니 점점 안쪽으로 들어와서 텃밭 한가운데 있는 대파 같은 작물에도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작물을 훔쳐가는 것도 문제지만 텃밭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헤집고 아무 데나 밟고 다니는 것은 더 문제였다.
우리를 가장 열받게 한 것은 냉이 도둑이었다. 냉이를 얼마나 캤는지는 모르지만 텃밭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온 텃밭 군데군데를 다 호미질을 해놓은 데다 녹비로 심어놨던 작물들을 밟거나 캐서 텃밭을 완전히 망가뜨려놨다. 겨우내 휴경하며 땅심을 기르려고 했던 일이 냉이 도둑 때문에 완전히 무산된 셈이다.
현행범으로 잡혔지만 냉이에 대한 것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일 년 농사를 망쳤는데 말이다.
우습지만 우리도 텃밭 3년 차에 CCTV와 울타리를 설치했다. 이런 것을 보면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겪는 경험들은 대체로 비슷한가 보다.
CCTV를 설치하고 보니 생각보다 우리 텃밭에 드나들며 밭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설치하길 잘했다. 지금은 작물이라고 심겨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도 이렇게 드나드니 제대로 작물이 심겨있을 때는 얼마나 드나들었겠는가?
주변의 사람들이 열심히 울타리를 설치할 때 교훈을 얻었다면 지금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많은 사람들이 겪는 피해임에도 나는 피해 갈 수 있을 거라는 요행을 바랐었나 보다.
아무리 냉철한 나라도 의식 없는 시골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위가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못했으니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나 보다.
여담이지만 의외로 작물을 도둑질해 가는 사람들은 이곳 주민이 아니고 외지인들인 경우가 많다. 차 타고 떠나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더 대담하게 도둑질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있어도 냉이를 캐려고 들어오려고 했던 막무가내 등산객들처럼. 전에 잡혔던 냉이 도둑도 이 주변 동네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무슨 도둑질을 원정을 와서까지 하는 것일까? 값나가는 물건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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