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텃밭 관련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까닭은 농사 기록을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워낙 많은 품종의 작물을 심어서 키우다 보니 꽤 많은 작물들이 방치 속에서 키워진다. 강황같이 알아서 잘 크는 작물은 심을 때와 싹 날 때 그리고 수확할 때가 아니면 아예 쳐다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텃밭을 몇 년을 가꿨어도 작물이 어떻게 크고 자라는지, 언제 심고 언제 수확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토종 작물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토종 작물에 대한 재배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아무렇게나 마음 가는 대로 키우는 무식한 주먹구구식의 농사로 변해갔기 때문에 농사의 기록을 남겨 다음 해에 참고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텃밭일이 한창 바쁠 때는 글을 쓸 시간이 잘 나지 않으니 작물을 심고 관리하고 수확하느라 바빠서 농사 기록은 개뿔, 아예 글을 쓰지 못해서 처음의 목적이 유명무실해졌다. 지금같이 4월에 대거 심었던 작물을 한창 관리해야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농사 기록이라고 하지만 성장 과정이나 재배 노하우등 중요한 정보들은 별로 없는 참고하기도 어설픈 기록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한심하고 부끄럽다. 그나마 작은 위안을 찾자면 기록을 남기려는 마음 때문에 수시로 작물 사진도 찍어놓고 작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많은 작물들을 방치 속에서 키우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마늘과 양파는 그래도 신경 써서 키우는 작물에 속했었다. 워낙 다비성 작물이기도 한 데다가 월동 작물들은 겨울과 봄의 기후에 따라 상태가 급격히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수확할 때까지는 안심하지 못하고 관리해야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신경 써서 키우던 양파와 마늘마저 방치모드로 키우게 되었다. 심고 난 이후 봄에 풀 한 번 매 준 것 외에는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텃밭일이 많아서 신경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가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지은 이후 키우는 내내 액비 한번 안 주고 키운 것은 단연코 올해가 처음이었다.
며칠 전부터 동생이 양파를 수확하자고 재촉했다. 양파는 수확해서 햇볕에 말린 후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흐린 날이나 비 오기 전후로 수확하기는 좋지 않은데 동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꼭 비 오기 전날에 수확하자고 하곤 한다. 그럼 또 집으로 가져가서 집 안에 널어놔야 하는데...... 감자며 쪽파 종구며 이미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수확물들이 있기 때문에 양파 수확이 못마땅해서 차일피일 수확을 미루고 있었는데 양파밭을 둘러보니 적양파는 아직 괜찮은데, 흰 양파는 줄기가 거의 도복 한 것이 수확해야 되긴 할 것 같다. 당분간 비 소식도 없다고 하니 흰 양파만 먼저 수확하기로 했다. 아침에 텃밭에서 가서 흰 양파를 뽑아놓고 밭에 펴서 말려 놓았다가 저녁에 파렛트에 옮겨서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말려줄 예정이다.
올해 우리의 양파 작황은 우리로서는 나름 만족스럽다. 겨울부터 워낙 가뭄이 심했고 양파의 비대기인 4월, 5월에도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았기 때문에 양파에 대한 기대가 아주 낮아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름 관리를 했어도 완전히 폭망 했던 작년에 비하면 방치한 것 치고는 크기가 적당한 것들도 꽤 있는 데다 크기가 제각각이라고 하더라도 모양도 예쁘고 양파도 단단하여 양파의 상태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농사가 잘 안 될 때를 대비해서 여유 있게 심었는데 수확량도 나쁘지는 않아서 올해 우리 먹을 것으로는 이미 차고 넘칠 것 같다. 수확해야 할 적양파가 남아 있는데 또 양파 지옥이 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스럽다.
양파는 매년 애를 써봐도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 햇 양파는 당해 11월도 되기 전에 이미 썩거나 싹이 나서 못 먹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수확량이 많아도 참 처리가 곤란한 작물이다. 우리가 양파를 좋아한다고 해도 먹는 양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양파 보관이 정말 골치가 아픈 일이라 올해는 특별히 저장성이 강하다는 양파를 골라 심었다. 올해 우리가 심은 흰 양파의 품종은 카타마루이다. 저장성과 맛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양파인데 수확한 양파의 모양을 봐도 양파의 상태가 꽤 좋아 보인다. 저장이 좀 오래된다고 하면 계속 이 품종을 심어야겠다. 이 양파는 만생종 양파라서 그런지 이곳 주변 농가들의 양파보다 훨씬 늦게 자라고 늦게 수확하게 된 편이다. 주위 텃밭을 둘러볼 때마다 동생은 다른 텃밭의 양파가 크게 자라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었는데 5월이 되니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금세 제법 양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양파는 다비성 작물이라서 실제로 맛있는 양파를 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주변의 농가를 둘러봐도 알 수 있지만 양파 같은 다비성 작물을 비료 없이 키우는 곳은 아주 드물다. 그리고 유기농으로 키운다고 하더라도 이런 다비성 작물이 맛있게 클 수 있는 비옥한 땅에서 키우는 곳이 드물다 보니 유기농 양파라도 맛없는 양파가 대부분이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양파는 맛이 강하면서도 달고 아삭함이 탁월하기 때문에 양파가 정말 맛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키운 양파를 얻어먹어본 사람은 본인들이 양파를 키웠어도 계속 우리 양파를 얻어먹으려 들곤 한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매년 품종이 늘어서 텃밭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우리가 일 할 수 있는 능력은 자꾸 떨어지니 아무리 신경 써서 키우는 작물이라고 하더라도 점점 덜 관리하게 된다. 텃밭 일에 지쳐서 대다수의 작물을 그냥 방치하고 키우는 현실 속에서 올해 마늘과 양파를 키운 경험은 꽤 유용하다. 올해의 작황을 생각해 보면 땅을 제대로 만들어 작물을 심으면 키우는 내내 방치하고 키웠다고 하더라도 꽤 잘 자란 작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두 곳의 밭은 6개월 정도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두둑에 쌓아서 삭힌 후에 고르게 펴서 만든 것이다. 굉장히 비옥하고 질 좋은 지렁이 분변토 두둑인 것이다. 양파밭은 그 이전에는 자갈밭이어서 작물을 심지 않고 버려둔 땅이었는데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쌓아 덮어놓은지 6개월 만에 비옥한 지렁이 분변토 두둑으로 환골탈태했다.
질 좋은 지렁이 분변토는 배수가 잘되고 보습력, 보비력이 우수한 데다가 지온의 변화가 크지 않고 작물의 뿌리가 다른 토양보다 훨씬 무성하게 뻗기 때문에 지금 같은 이상 저온, 이상 고온등 기후에 따른 피해가 거의 없는 편인데 특히 올해 같은 극심한 가뭄에 물 한번 주지 않았어도 큰 피해 없이 잘 자란 것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이 지역은 잡초들도 고사할 정도로 가뭄이 심했다).
땅을 잘 만들어 놓으니 마늘과 양파에 따로 추비를 하지 않았어도 잘 자랐고 주변의 텃밭은 이상기후로 병해가 와서 여기저기 농약 친다고 난리가 났었는데도 우리 텃밭의 마늘과 양파는 큰 병충해도 없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었다. 고추, 배추, 마늘, 양파 같은 다비성 작물들을 심을 때는 땅을 잘 만들어서 심어야 이후 관리가 많이 편해진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작물을 심을 때 땅을 먼저 가꾸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잘 가꾼 비옥한 땅은 여러 가지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전혀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정성 들여 땅을 가꿔서 작물을 심었더니 추비를 하지 않아도 문제없고 큰 병충해도 없이 꽤 괜찮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따져보면 땅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도 아니다. 두둑에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쌓아서 차광막을 덮고 6개월 정도 놔둔 것이 전부이니 얼마나 편한가? 근데 보편적인 농부들은 왜 그렇게 농약과 화학비료를 고집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테지만 어찌 됐던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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