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시골생활 이야기

우리는 가능하면 작물 나눔을 하지 않기로 했다

728x90

울타리 밖으로 달린 풋호박

 

저녁에 텃밭에서 일하고 있던 때에 운동하며 우리 텃밭 옆을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 무리가 텃밭 울타리 밖으로 달린 풋호박을 보고 멈춰 섰다. 이 지역은 가뭄과 폭염 때문에 호박이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웬만해서는 호박이 죽지 않는 우리 텃밭에서조차 호박 덩굴이 말랐으니 다른 텃밭은 말할 것도 없다. 가뭄에 고사하거나 폭염에 착과가 안 돼서 호박이 살아있는 곳도 드물지만 호박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됐으니 이렇게 울타리 밖으로 떡 하고 달려 있는 호박에 아주머니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리 중에 있던 덕곡댁 아주머니가 우리와 거리가 먼데도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더니 그 풋호박을 가리키며 본인이 먹게 따달라고 요청을 하셨다. 우리 텃밭 울타리 옆으로는 수로가 있는데 나이가 드신 아주머니들은 이 수로를 건너지 못한다. 그래서 울타리 밖으로 달린 호박이라고 하더라도 '저 애호박 달린 거 봐라'하며 탐만 낼뿐 호박을 딸 수가 없어서 아쉬움에 발만 동동 굴렀는데 마침 우리와 안면이 있는 덕곡댁 아주머니가 있어서 그 말을 듣고 우리를 불러 따달라고 한 것이다.

시골 사람들의 이런 이기적인 행태는 늘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얻어가는 주제가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일하는 우리를 방해하며 오라 가라 한단 말인가? 살짝 짜증이 났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고 풋호박을 따서 줬더니 '너희도 따 가서 전이라도 부쳐 먹어라'라며 선심 쓰듯 권유를 한다. 참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자기네 호박인 줄 알겠네. 무슨 염치로 우리 호박을 얻어가는 거면서 자기 것을 주는 것처럼 '따 먹어라'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난 몇 년간 호박 나눔을 줄기차게 한 탓에 이 동네 사람들은 우리 텃밭의 호박이 마치 자기네들 작물인양 착각하는 것 같은 행동을 자주 한다. 수시로 와서 호박 달린 게 있냐 없냐 물어보고 필요할 때마다 와서 따달라고 한다. 급기야는 따달라고 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우리 텃밭 한편에 자기가 호박을 심어놓고 수시로 따먹겠다는 어이없는 포부를 밝힌 사람도 있었다.

진심으로 나눔에 회의가 드는 순간이었다. 그냥 텃밭에 버려도 되는 것을 왜 개념 없는 시골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호시탐탐 우리 수확물을 노리는 '거지'들을 양산했을까?

빌라 이웃에게 나눔한 수확물

 

선한 일을 행하고 난 후의 보상이 항상 좋기만 하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음에도 오히려 오해받고, 질투받고, 무시당하거나 원망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골에서의 작물 나눔도 그렇다. 분명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도 십중 팔구는 아주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점점 작물 나눔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요인이다.

 

우리 텃밭 작물의 수확량은 항상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많기 때문에 늘 잉여수확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이 잉여수확물의 품질은 상당히 좋아서 버리기는 정말 아깝기 때문에 초반에는 좋은 마음으로 텃밭을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을 했었다. 뜻밖에도 이런 잉여 수확물을 나눠준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시골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면모를 너무 과소 평가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수확물을 얻어먹은 이후에는 마치 얻어먹을 자격을 획득한 사람인 것처럼 더 달라고 하거나 또 달라고 하기 위해 텃밭을 찾아온다. 마침 우리가 수확을 해서 나눠줄 수 있는 상황이면 다행인데 우리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물을 수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텃밭 농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고 우리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인데 우리의 친절함과 예의 바른 것에 기대서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우리 텃밭의 작물을 자기 것인 양 달라고 요구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로 농사를 짓지 않는 시골 사람들은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작물을 얻어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염치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작물을 갈취당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다. 아랫집의 아저씨도 본인은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나 나나 다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시골 사람들은 농사지으면 그게 다 공짜인 줄 안다'며 한탄을 하셨더랬다. 비슷한 심리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텃밭에서 망한 작물이 다른 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으면 잘 자란 작물을 얻어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뭐, 다른 작물을 잘 키워서 보답하면 된다는 마음을 저변에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아니고 농사를 짓는 것, 혹은 작물을 잘 키운 것이 왜 다른 사람에게 작물을 나눠줘야 하는 의무처럼 생각되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 텃밭의 호박을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청호박을 키우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호박이라(안 익은 호박이라고 생각한다) 청호박을 처음 키웠을 당시에 호박을 주겠다고 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재작년부터 호박 농사가 좋지 않았는데 가뭄과 폭염 때문에 호박이 착과가 안 돼서 그야말로 호박 열매를 찾아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 우리 텃밭을 지나다니는 주변 동네 사람들은 다른 텃밭과 달리 무성하게 뻗어있는 호박덩굴을 보며 호박잎을 비롯해서 애호박, 늙은 호박 순으로 차츰차츰 우리 호박을 탐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안 먹는 작물이라고 막 퍼준 게 화근이었는지 작년에는 우리 호박이 맛있다고 호박 달라고 텃밭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텃밭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급기야는 몰래 따가는 사람도 생겨서 호박을 여러 번 도둑질당했기 때문에 올해는 CCTV랑 울타리도 설치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분명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려고 했던 호박이었는데 몇 번의 호의적인 나눔 덕에 청호박 맛을 알게 된 사람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호박 따달라는 사람들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에는 호박 도둑들을 텃밭에 끌어들인 격이 됐으니. 

 

우리의 작물 나눔의 결과는 대부분이 호박의 경우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가져갔다가 맛에 반해 또 달라고 찾아오고 점점 찾아오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어나다가 급기야는 도둑질해 먹는 사람까지 생겨난다. 작정하고 도둑질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텃밭에 늘 있는 것이 아니니 얻으려고 찾아왔다가 우리가 없으면 허락 없이 따가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작물 나눔이 시간이 지나 작물 도둑을 양성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런 결과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부적절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푼 우리의 어리석음을 탓하게 됐다. 왜 이런 배은망덕한 것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도둑질할 빌미를 줬을까?

 

딱히 시골 사람이라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골 사람들의 예의는 늘 아쉽다. 우리가 서울의 지인들에게 작물을 택배로 보내면 택배를 받고 고맙다고 인증샷을 보내고, 먹고 나서 맛이 어땠는지 꼭 후기를 전해온다. 근데 시골 사람들에게 작물을 나눔 하면 받을 때 고맙다고 할 뿐 후기를 전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지역이든, 다른 지역이든 시골 사람들은 다 그렇다. 나눔 받은 것에 대해 '잘 먹었다'거나 '맛있게 먹었다'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다시 얻으러 오면서도 '잘 먹었었다'라고 인사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너희가 많아서 처리가 어렵다고 하니 내가 도와줄게'라는 식으로 오히려 우리 작물을 나눔 받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거만하게 구니 우리가 차라리 '작물에 거름이라도 되라고 텃밭에 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라며 후회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우리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보다 크게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확물은 줄기차게 얻어가지만 그들의 수확물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물론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늘 농사가 안 됐다는 하소연뿐이다. 실제로 농사가 망했는지 아니면 작물을 얻어가려고 과장하는 건지 실상은 모를 일이다. 대체로 작물을 얻어먹어본 사람들은 자신의 작물을 잘 키워 먹으려고 하기보다는 늘 얻어먹으려고만 든다. 처음이 한 번이 어렵지, 한번 얻어먹은 이후부터는 계속 더 많은 것을 달라고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골 사람들을 습성을 파악하게 된 이후로 우리는 작물을 나눠준 것을 후회했다. 애초에 텃밭에 버리고 나눔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이런 뼈저린 후회를 하면서도 아직도 작물의 상태가 너무 좋으면 선뜻 텃밭에 버리지 못하고 가져와서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긴 하다. 그래도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가능한 작물 나눔을 하지 말자'는 마음을 기본으로 부득불한 경우에만 나눔을 하자고 다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