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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시골생활 이야기

종자를 달라는 요청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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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나눔요청에 못이겨 채종한 토종참외 씨앗

 

텃밭을 가꾸고 텃밭 관련 일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온오프라인으로 종자를 나눠달라는 요청을 자주 듣게 되었다. 우리는 그저 취미로 우리 먹을 것만 키우는 사람이라서 여러 가지 종류를 조금씩 심고 있는데, 다양한 작물을 키우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텃밭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블로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서 종자를 나눠달라는 요청을 꽤 자주 받곤 한다.

우리도 서울에서 내려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텃밭을 시작했기 때문에 종자를 구하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종자를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종자를 달라는 요청들을 관대하게 처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때때로 종자 나눔을 해 달라는 요청은 우리를 아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텃밭카페 활동을 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텃밭카페 활동은 잘하지 않으면서 종자 나눔 글에만 열심히 참여해서 종자 나눔을 받는 종자수집가들이 있다고 한다. 카페활성화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이런 체리피커 같은 종자수집가들 때문에 나눔 목적의 글에는 나눔 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예를 들면 게시글을 몇 편 이상 올려야 나눔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의 조치들이다. 아무리 종자를 나눔 하기 위해 신청을 받는 거라고 해도 별 공로 없이 종자만 얻어가려는 행태는 누구나 다 얄밉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종자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글에 나눔 요청을 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니, 종자 나눔의 의도가 전혀 없는 글에 다짜고짜 종자 나눔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우리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우리의 블로그에 올리는 텃밭 관련 글들은 대부분 정보 공유나 재배기록을 남기기 위한 텃밭 근황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글에 버젓이 종자 나눔을 요청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꼭 한 두 명씩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동생과 나는 이런 댓글에 굉장히 심기가 불편하다. 우선은 '누구라도 하나만 걸려라'하는 심정으로 관련 없는 글에 종자 나눔을 요청하는 댓글을 무작위로 여기저기 남기는 무례하고 성의 없는 태도 자체만으로도 기분 나쁘고, 종자를 판매하거나 나눔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우리의 입장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종자를 사주겠다고 나서는 오만함도 아주 불쾌하다. 우리가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우리는 대부분의 종자를 종묘사에서 구입하는 편이고 잘 판매하지 않는 토종 씨앗의 경우는 종자 나눔 글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원하는 종자를 나눔 할 때 신청해서 받았기 때문에, 종자를 나눔 하겠다는 글도 아닌 단순히 관련 작물에 대한 근황을 적은 글에 무턱대고 종자 나눔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댓글을 남기는 행위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 찾아보면 종자를 판매하거나 나눔 하겠다는 글도 분명히 있을 텐데 왜 그런 글에 나눔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판 관련 없는 글에 나눔 요청을 하는 댓글을 남기는 것일까?

 

교통이 불편하고 이동수단이 제한적인 시골에서는 택배나 우편물을 보내는 것이 꽤 번거로운 일이라서 특별한 의지가 없는 한 우편이나 택배로 나눔을 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지역만 해도 동네 근처에 우체통이 없어서 우편물을 보내려면 우체국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그마한 씨앗을 보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차를 끌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큰 일인 것이다. 그러니 부피가 큰 아스파라거스 종근이나 부추종근, 대파, 강황, 쪽파종구 같은 종자를 나눔 요청하는 것(실제로 나눔 요청을 받은 것들이다)은 실은 꽤 민폐를 끼치는 일인 것이다(포장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대부분 종자 나눔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보내는 사람의 이런 불편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큰 수고를 끼치는 일임에도 '그거 보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라고 아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종자를 나눔 했어도 그 수고를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수고를 깎아내리는 듯한 이런 반응을 대하게 되면 '차라리 나눔을 하지 말고 욕을 먹을걸'하는 후회와 허탈함이 몰려온다. 늘 그렇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수고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 도움을 자주 받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우리는 종자 나눔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많이 대해보고 실제로 많이 나눠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종자 나눔을 요청하는 사람들만이 늘 종자 나눔을 요청하고, 남들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뻔뻔하고 무례한 요청을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사소한 종자 나눔 요청조차 너그럽게 보기가 힘들어졌다.

 

옛말에 '돈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다. 돈의 품격은 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비록 험하고 천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더라도 고상하게 쓰면 고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이치다. 나는 작물을 키우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은 작물을 어떻게 키우냐에 있지 종자의 좋고 나쁨에 달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종자는 발아가 잘 되는 적당한 품질의 종자면 충분하지, 굳이 최상급의 품질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씨앗이 따로 있는 작물이야 상관없지만 감자나 마늘, 콩, 들깨, 참깨등과 같이 먹는 작물 자체가 종자로 쓰이는 경우에 질 좋은 작물을 종자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아까운 일이다(질 좋은 작물은 먹는 것이 일 순위여야 한다). 우리같이 정성 들여 자연농법으로 건강하고 맛있게 키운 작물인 경우 더욱더 먹지 않고 종자로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좋은 것은 먹고, 종자는 사서 쓰면 되니까). 그러니 우리 작물을 종자로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우리가 어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종자를 나눔 받았으면 당연히 잘 키워서 증식을 해야 종자를 나눔 받은 보람이 있을 텐데, 의외로 종자를 나눔 받는 데는 열심인 사람들이 작물 키우는 데는 젬병이라 종자 증식에는 매번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가 종자를 나눔 해준 사람들 중에도 매년 같은 종자를 다시 요청하는 사람들이 숱하다. 도대체 왜 종자를 나눔 받는 것인지.

 

우리는 구입할 수 있는 종자는 구입하지 나눔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양이 너무 많아서 곤란한 경우도 많지만 살 수 있는 종자는 사면되는 일이라(종자가 비싼 것도 아니고) 남에게 나눔을 요청하지 않는데, 종자를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종자조차 나눔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강황이나 망고참외 씨앗을 나눔 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던 것처럼 그냥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종자를 왜 굳이 나눔 요청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개량종 종자는 채종 해서 심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차피 매번 사서 심는데, 종자를 나눠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산 종자를 나눠달라는 것인가?

사람들의 종자 나눔 요청이 납득되지 않아 불편한 것은 나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