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텃밭에서는 늘 수확물이 우리가 처리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주변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위로 나눠주곤 한다. 워낙 작물 나눔을 많이 하다 보니 이 동네에서는 인심 좋은 아가씨들로 소문이 난 까닭도 있고 우리 텃밭 작물의 자람세가 남다른 것도 있어서 우리 작물을 나눠 달라는 요청은 해마다 늘어난다.
우리의 수확물을 몇 번 얻어먹었거나 동생의 블로그에서 수확물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우리 작물을 사고 싶으니 팔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꽤 있다. 계속 공짜로 얻어먹거나 그냥 달라고 하는 것은 미안하니까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렇게 작물을 팔아 달라고 하는 요청을 들으면 아주 불쾌하다.
어차피 잉여생산물이고 남들에게 대부분 거저 주는 것들이니 공짜로 가져가지 않고 사소하게나마 돈이라도 챙겨 주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에게는 그냥 달라는 말보다 더 기분 나쁜 '갑질'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돈을 주면 뭐든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태도를 경멸한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인데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 양 행동한다. 속된 말로 '돈지랄'을 하는 것이다. '얼마면 돼?'
의외로 가치 있고 품격 있는 고귀한 것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없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어떤 재화의 가치를 제대로 못 알아보고 무턱대고 돈을 주고 사겠다고 나서는 것은 얼마나 교양 없는 행동인가?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의 작물을 팔아달라는 요청은 우리에게는 소위 이 '돈지랄'로 인식된다. 작물은 팔기 위해 키우는 것과 먹기 위해 키우는 것이 따로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생산 방식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아무래도 팔기 위한 작물들은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키워진다. 작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이용하여 작물을 빠르게 키우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밀식재배하여 병약해진 작물을 농약으로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유지시켜 재배한 후 판매한다. 이렇게 길러진 작물은 맛과 영양이 형편없는 데다 어떤 것은 심지어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반면에 먹기 위해 키우는 것은 시간이 걸려도 건강하고 맛있게 키우는 것에 좀 더 치중한다. 최대한 인위적인 것들을 배재하고 풍부한 유기물을 포함하여 미생물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좋은 토양에서 작물의 자체 면역력으로 건강하게 자라게끔 키운다. 비료와 농약으로 손쉽게 키우는 관행농 작물에 비하면 작물의 성장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느리기 때문에 작물을 키우는데 정성을 더욱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다.
정성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남들은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성을 들인 작물은 남들에게 주기 싫다. 검정동부콩은 우리가 잘 먹지 않아서 항상 우리가 챙겨 오는 것보다 텃밭에서 남들에게 주고 오는 게 더 빈번한 작물이다. 남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대표적인 작물인데 그런 검정동부콩이라도 말려서 정선한 콩은 나중에 버리게 되더라도 웬만해서는 남에게 주고 싶지가 않다. 말리고 까서 정선하는데 들어가는 정성이 꽤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키우는 작물들이 빠르게 열매를 맺고 금세 죽어버리는 관행농 작물과 달리 튼튼한 뿌리를 기반으로 환경에 잘 적응해서 열매를 오래도록 내놓아 그 수확량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하더라도 먹기 위해 애지중지 키운 작물을 돈 몇 푼 받고 팔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작물을 팔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한 행동임은 분명하다.
작물을 대하는 마음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확연하게 다르다.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싸게 샀더라도 작물의 가치보다 더 비싼 돈을 치렀다고 여기고, 파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싸게 주고 팔았다고 하더라도 작물의 가치보다 더 저렴하게 팔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도 사 먹는 농산물들이 있는데 대체로 사 먹는 것들은 수고와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 외에 다른 장점이 없다. 맛도 없지만 영양은 더 기대할 수 없어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가능한 적게 먹는 것이 좋을 정도로 허접한 것들 투성이다. 우리는 가끔 사 먹은 작물들이 너무 형편없어서 마음 깊이 한탄하곤 한다. '사 먹는 것들이 다 그렇지.'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우리 작물을 산 사람들이 우리가 애지중지 키워 나름 긍지를 가진 작물임에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허접한 작물과 동등하게 취급할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나기 때문에 더욱더 작물을 팔아달라는 요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히려 대단한 부자들은 사겠다거나 팔아달라는 요청을 쉽게 하지 않는 반면 뭘 모르는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이 돈으로 값을 치르는 것이 대단한 것인 양 사겠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곤 한다는 것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갚을 것은 돈으로 갚고, 정성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정성으로 갚아야 한다는 도리를 안다. 정성으로 갚아야 할 것을 돈으로 갚겠다고 하는 것은 천박한 행동이다.
예전에 동생이 지렁이 분변토로 농사를 짓는 법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했는데 거기에는 지렁이 분변토를 만드는 법,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여 작물을 키우는 법, 지렁이 분변토로 액비를 만들어 주는 법등 지렁이 분변토로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상세하게 올렸었다. 우습게도 그 글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렁이 분변토를 직접 만들 생각은 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지렁이 분변토를 팔아달라고 연락을 해 와서 아주 한심해한 기억이 있다. 지식, 재능, 건강, 안목, 기술등 많은 가치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노력으로 연마된다. 그런 걸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조야한 행동인가?
우리의 작물도 그렇다. 우리가 작물을 키우고 있고, 또 주변 사람들이 작물을 키우는 것을 봐와서 아는 것이지만 우리가 키우는 작물과 같은 것은 천금을 주고도 사기 힘들다.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땅을 좋게 가꾸고,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정성을 다하지 않고,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여 손쉽게 키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키워 먹는 작물 중에서도 우리 작물과 비슷한 품질의 작물은 거의 없으니 파는 작물은 더 말할 것도 없다(파는 작물 중에 우리 작물과 비슷한 작물은 아예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작물을 얻어먹는 사람들은 우리 작물이 맛있다는 것만 알지 맛있게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 알려하진 않는다. 그러니 쉽게 돈을 주고 사겠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에티켓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서울의 지인들은 우리 작물을 받은 답례를 우리가 이곳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맛보기 힘든 것을 골라 선물로 보내주는데,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주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성의가 없는 답례다. 돈이 아쉬운 것도 아닌데.
대부분의 경우에 팔아달라는 요청은 무시하게 되지만 너무 빈번하거나 집요하면 한 마디씩 하게 된다. '마트에 가서 제일 좋은 걸로 사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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