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를 심어서 제대로 수확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우리는 당연히 고구마 키우는 것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게다가 고구마는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작물은 아니라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아쉽지 않은' 작물이기 때문에 다른 작물처럼 잘 키우려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 편이다. 그나마 고구마를 키우면서 유일하게 신경 써주는 부분은 곁순이 땅에 뿌리박지 않도록 원순 주변에 제초매트를 깔아주는 것뿐이다.
고구마 순이 뻗어나가면서 중간중간 땅에 뿌리를 박는데 갑임 아주머니의 이야기로는 곁순들이 땅에 뿌리를 박으면 고구마가 작거나 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고구마 순을 땅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수시로 들춰서 제쳐줘야 한다고 했더랬다. 그러한 까닭에 고구마를 키우는 몇 년 동안 고구마의 알이 들지 않는 우리는 고구마의 곁순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에 공을 들이게 됐다. 줄기의 기세가 너무 좋아서 제쳐 놓는 것만으로는 뻗어나가는 고구마의 곁순이 땅에 뿌리박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원순 주변으로 두꺼운 종이상자를 깔아 두거나 제초매트를 깔아서 곁순이 뿌리를 박지 못하게 관리했던 것이다.
작년에는 곁순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를 했지만 고구마의 알이 들지 않아 고구마는 구경도 못했다. 사실 그쯤 되면 고구마의 곁순이 땅에 뿌리를 박으면 고구마가 작아지거나 알이 들지 않는다는 말의 신빙성을 따져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고 올해도 열심히 곁순이 뿌리박는 걸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더랬다. 원순 옆으로 50cm 정도를 제초매트를 쭉 깔아 뒀는데 올해는 고구마 순의 기세가 얼마나 좋았는지 고구마 순들이 제초매트를 넘어서 뿌리를 박고 뻗어나갔다. 고구마를 심은 자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각각 1m도 넘게 뻗어갔으니 제초매트를 깔아서 관리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무성한 고구마 순에 망연해져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고구마 순이라도 처리하자' 싶어서 우리도 고구마 순을 열심히 먹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구마 순을 열심히 나눠주었었다.
고구마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올해는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었다. 양이 적든 많든 고구마를 수확한 것만으로도 만족한 우리는 뒤늦게 고구마 수확에만 정신이 팔려 파헤쳐놓은 고구마 심은 자리를 정리하려고 고구마 캤던 자리를 평평하게 고르고 서리 맞아 시들은 어마어마한 고구마 줄기를 모아 쌓아 올려서 잔사 더미를 만들기로 했다.
땅에 뿌리박은 고구마 줄기를 베어 끌어 모으다 보니 곁순이 뿌리박은 곳에 고구마가 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고구마가 심겨있던 자리에서 1m나 떨어져 있는 자리니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곁순이 박은 뿌리에서 생긴 고구마가 틀림없다.
줄기를 따라가면서 달려있는 고구마를 캐보니 생각보다 고구마가 여러 개다. 원 줄기에서 수확했던 고구마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곁순에서 자란 고구마도 아주 작지는 않았다.

곁순이 박은 뿌리에서도 고구마가 달릴 수 있는 것이었나? 그럼 그동안 열심히 곁순이 뿌리박지 못하게 애쓴 일은 다 헛고생이었단 말인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상식과 반하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중에 관련 내용에 대해 찾아보니 곁순에서 내린 뿌리에서 달리는 고구마('자연 러너' 고구마)는 아주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질 좋은 토양과 생태환경이 뒷받침되어야 발생하는 현상인데 영양이 풍부한 땅과 우수한 뿌리 활착 능력, 지표번식형 특성을 일부 가지고 있는 품종이나 계통의 작물이 더해져서 넝쿨이 닿은 곳에서 새로운 생식기능이 발현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연농을 오래 하면 이런 진화적 특징이 강화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동안 고구마를 키우면서 들었던 비옥한 땅에서는 고구마가 잘 안 된다는 말도, 곁순이 뿌리내리면 고구마가 작아지거나 안 달린다는 말도 이렇게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맹신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든다.
수확 시에 여러 가지 사유로 미처 수확하지 못하고 텃밭에 남아 있는 작물을 이삭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는 수확을 대충대충 하는 편이라 의외로 이런 이삭들이 많다. 우리는 딱히 이런 이삭을 열심히 챙기지 않는데, 우리가 먹을 것을 충분히 수확했으면 어차피 더 챙겨 봐야 다시 텃밭에 버려질 테니 그냥 텃밭에 이삭들을 놔두는 것이 수고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텃밭에 남아 있는 이삭들이 싹이 나서 자라면 자생 작물이 되는 거고 발아하지 못하고 썩어도 땅에 거름이 되니 수확하기 싫을 때는 의도적으로 이삭을 많이 남기기도 한다.
그동안 수확을 하지 못했던 게 한이 되어서 그런지 고구마는 이삭을 줍는 유일한 작물이 되었다. 사실 이미 수확한 고구마도 우리가 먹기에 충분한데 희한하게 곁순에서 달린 이삭 고구마를 발견하자마자 열일 제치고 가서 고구마 수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보면 엄청 고구마를 좋아하는 줄 알겠다. 고구마가 좋은 게 아니라 고구마 캐는 것이 재미있어서라고 애써 변명해 보지만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다면서 고구마 이삭 줍기를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이건, 분명히 고구마 수확에 한이 맺혀 있었던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