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수 시설이 없는 농장 텃밭은 작년과 올해처럼 가뭄이 심하면 농사짓기가 힘이 든다. 사실 이 지역은 작년과 올해 연속 가뭄이 너무 심해 관수 시설이 있는 텃밭들도 작황이 좋지 못했다. 텃밭 옆의 나무 농장은 자동급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가뭄과 폭염 때문에 고사하는 작물이 많아 따로 물을 준다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올해는 가뭄이 심한 데다 폭염도 일찍부터 왔기 때문에 텃밭마다 고사하는 작물이 많았는데 그런 와중에 우리 텃밭의 마늘과 양파는 물도 안 주고 추비도 안 했음에도 작년보다 훨씬 잘 자랐더랬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커피찌꺼기와 작물 잔사를 쌓아 올려 만든 유기물이 풍부한 좋은 땅에 심은 까닭이 아닐까 추정한다.
이상 기후가 지속되어 작물의 한계를 넘으면 작물들이 병이 든다. 올해 이 지역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지속된 와중에 폭우가 내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가뭄이 해갈도 안될 정도의 비였지만 마늘과 양파는 병이 와서 다 쓰러졌다. 병이 든 마늘을 일찍 수확하는 것을 보면서 저것들이 다 팔려나가는 건 아닌가? 병이 든 줄 모르고 사 먹는 사람들은 무슨 죄지? 하며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먹는 것에 그다지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는데,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작물을 키우고 유통되는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다 보니 의외로 우리가 모르고 먹는 유해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직접 키워 먹는 음식이 많아질수록 몸은 고되지만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니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 것 같아 앞날이 걱정스럽다. 누가 농사 좀 대신 지어줄 순 없나?
마늘과 양파 같은 월동 작물들은 원래 다비성이기도 하지만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더 좋은 땅을 골라 심어야 한다. 유기물이 많은 땅 속의 균형 잡힌 미생물 환경이 작물로 하여금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월동 작물들이 영양이 부족해서 잎이 노랑노랑 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좋은 땅에 심어 놓은 작물은 생육 재생기에 푸릇푸릇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확연하게 눈에 보인다.
좋은 땅에서 자란 작물들은 파이토케미컬이 풍부해서 맛과 향도 월등하게 좋지만 큰 병충해 없이 건강하게 자라기도 한다. 사람이 면역력이 강하면 병에 잘 안 걸리듯, 작물도 면역력이 강해야 건강하게 자라는 법이다.
서두가 길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파는 좋은 땅에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작년에 흰 양파는 카타마루라는 품종을 심었는데, 이 양파가 보관도 오래되고 꽤 맛이 있었다. 지금 시기에는 양파가 상하는 것도 많고 싹이 올라오는 것도 많은데 이 카타마루 양파는 실온에서 보관하고 있음에도 싹도 나지 않고 여전히 단단하다. 아삭아삭하면서도 단맛이 나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먹었는데 그런 만족감을 반영하듯 동생이 양파모종을 주문하면서 카타마루를 200개나 주문했단다. 우리는 사실 양파가 100개만 있어도 충분하다. 작년에 흰 양파 100개, 적양파 100개를 심어서 수확하고 양파가 너무 많다며 저걸 어떻게 다 먹냐고 걱정을 했던 것은 다 잊었는지, 흰 양파 200개에 적양파 100개, 호기심에 키워보는 항암양파 100개 해서 총 400개의 양파모종을 구입했다고 한다. 얼떨결에 작년의 두 배의 양파를 심게 된 것이다. 양파를 심어본 역사상 제일 많이 심은 것 같다. 아무리 만생종 양파라지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양파장아찌를 담아야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양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할 것 같진 않은데 동생의 통 큰 모종 쇼핑에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양파밭을 만들 곳은 금왕감자를 수확하고 난 후 커피찌꺼기와 식물잔사를 덮어두었던 곳이다. 보통 식물잔사를 쌓아두고 5~6개월이 지나면 식물잔사들이 거의 다 흙으로 환원이 되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와서 그런지 식물잔사가 많이 삭지 않았다. 삭지 않은 식물잔사들을 걷어내고 흙을 평평하게 골라서 양파밭을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쉬운 대로 나쁘지 않은 양파밭이다.
양파밭 옆쪽에는 쪽파를 수확하고 마찬가지로 커피찌꺼기와 식물잔사를 덮어두었던 조그마한 두둑이 있는데 원래는 양파를 적게 심을 작정을 하고 양파밭으로 예정해 놓았던 곳이었지만 양파 모종을 대거 구입한 덕분에 양파밭으로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된 곳이다. 이곳은 잔사도 많이 삭은 데다 땅도 아주 좋은 곳(쪽파를 심을 때부터 좋았다)이라 안 쓰기는 너무 아까운 땅이기 때문에 밭을 만들어서 3종류의 양파를 세줄씩 시험적으로 심어놓았다. 양파밭과 자람세를 비교해 보면 다음에 양파밭을 만들 때 참고가 될 것이다.

밭을 다 만들었으니 양파 모종을 옮겨줘야 한다. 날이 가물기 때문에 물을 주고 정식하는데 월동 작물이니까 가능하면 깊이 심어준다. 손가락으로 꾹 눌러 구멍을 낸 후에 물을 붓고 양파 모종을 넣어 흙을 덮고 모닥모닥.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400개를 옮겨 심자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역시 양파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전문농에 비하면 일하는 것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우리가 밭을 만들고 작물 심는 걸 보면 소꿉장난하고 있는 것처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작물을 심는 양도 우습고, 작물을 심는 모양도 우습다. 연장도 없이 손가락으로 꾹 눌어서 모종을 심고 있으니 호미로 파서 심거나 모종 이식기로 심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이렇게 어설프게 일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서 작물이 자랄 때는 자타공인 주변 텃밭 중에 가장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이 일상이라 어설픈 손길에 자화자찬하며 뿌듯함을 느껴본다. 아싸, 양파 심는 거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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