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텃밭 이야기

텃밭 흙 도둑

728x90

텃밭에 누군가가 삽질해간 흔적

 
농장 텃밭에서 작물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었는데 어느 날 둘러보다 보니 흙을 퍼가기 위해 삽질한 흔적이 보인다. 올해는 농장 텃밭이 사람 손을 제대로 타는 것 같다.
 
농장 텃밭에는 지렁이 분변토를 쌓아놓은 곳이 있어서 간혹 지렁이 분변토를 퍼가려고 텃밭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흙도 훔쳐가냐며 놀라워하는데, 우리가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매년 텃밭 흙을 달라거나 혹은 텃밭 흙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무슨 생각으로 텃밭의 흙을 가져가려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흙이 좋아 보여서는 절대 아닌 것 같다. 흙을 가져가겠다고 삽질한 곳이 대충 봐도 도저히 좋은 흙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척박하고 딱딱한 흙이 있는 곳이니 절대로 흙이 좋아 보여 가져가려 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마저도 삽이 안 들어가서 포기한 것 같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농장 텃밭에는 척박해서 작물을 심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땅도 있고 작물을 심기 위해 커피찌꺼기와 식물 잔사를 삭혀서 비옥하게 가꾼 땅도 있다. 어느 정도 흙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좋은 땅에서 흙을 퍼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의외로 안 좋은 땅에서 흙을 퍼가려는 시도를 한 흔적이 보이니 흙을 볼 줄 아는 사람의 짓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흙도 볼 줄 모르면서 왜 남의 텃밭의 흙을 훔쳐가려 하는 걸까? 우리 텃밭의 작물이 잘 자라는 것 같아서?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텃밭의 흙은 지렁이 분변토가 깔리긴 했지만 작물을 키웠기 때문에 지렁이 분변토만을 모아놓은 흙보다는 거름기가 약하다. 우리도 커피찌꺼기도 깔고 식물잔사도 덮어서 작물이 크는데 지장이 없도록 흙과 영양성분을 보충한 뒤에 작물을 심는다. 연속적으로 작물을 심으면 땅이 금세 황폐해진다. 그래서 우리처럼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키우려면 적당히 땅을 쉬게 해 주고 유기물들을 쌓아서 흙과 영양을 보충해 주며 비옥한 토양이 되도록 땅을 만드는데 공을 들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과정을 볼 줄 모르고 결과만 본다. 어떻게 땅을 만드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당장에 좋은 흙을 가져가서 농사를 지을 생각밖에 안 한다. 이전에 동생이 지렁이 분변토에 대한 글을 게시하니 너나 나나 지렁이 분변토 좀 달라고 하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 번이야 지렁이 분변토를 가지고 가서 작물을 심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계속 작물을 심으려면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어서 계속 보충을 해야 하니 반드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기보다는 사서 쓰고 얻어서 쓰려고만 한다. 
아마 텃밭 흙을 훔쳐가는 마음도 지렁이 분변토를 얻으려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쉬운 길로만 가려는 사람들의 안목은 너무 형편없어서 골라도 하필 제일 안 좋은 것을 고른다는 것에 있다.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일은 정해진 이치를 따라 흘러간다.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그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순리를 거스르거나 지름길을 택하려 하는 것은 넓은 시야로 보게 되면 쓸모없는 어리석은 노력에 불과하다. 결국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정해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사소하고 작은 올바른 노력들이 모여서 거대한 성취를 이루도록 되어있다. 그러니 답답해 보이지만 모든 단계를 차분히 밟아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건너뛸 수도 없고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없으며 더 쉬운 방법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남의 것을 훔쳐서 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의외로 돈이나 물건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재능이나 아이디어, 노력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훔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편법이 오래가지도 못할뿐더러 잘 되지도 않을 텐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어리석은 선택은 당장에는 이득을 본 것 같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힘써서 애써서 망하는 길로 내달리니 얼마다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도둑들의 질을 나누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작물을 훔쳐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하수지만 텃밭 흙을 훔쳐가는 사람들은 나름 고수다.  그런데 나는 흙을  훔쳐가는 그 정성으로 토양을 만드는 게 더 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그 어리석음이 실로 안타깝다. 흙을 훔쳐가도 거기에 작물을 심어서 키워 먹어야 하니 어느 정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데 왜 지렁이와 유기물을 넣어 흙을 만들 생각을 안 하고 훔쳐 쓰려고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모든 일은 정해진 때에 정해진 방법으로 해야 한다. 정도를 벗어나면 시행착오 끝에 정도를 깨달아 돌아오게 되어 있는 법이니 바른길을 알고 바르게 행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다. 

우리에게 지렁이 분변토를 얻어간 사람들이 우리만큼 농사를 잘 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텃밭 흙을 훔쳐간 사람도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직접 해보기보다는 그저 남에게 얻으려고 하는 사람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사고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성취는 얻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꾸 얻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없는 하찮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는 이런 하찮은 사람이 많아서 탈이긴 하지만.

'일상 > 텃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추와 무 수확  (1) 2024.12.07
순천동파 옮겨심기  (0) 2024.12.01
올해의 마지막 상추 수확  (0) 2024.11.29
때 아닌 딸기꽃  (1) 2024.11.27
순천동파(동파이긴 한가보다)  (0)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