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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땅도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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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두둑에 식물 잔사를 덮어놓은 모습

 

오래전에 어떤 글에서 노동과 운동의 차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된다라고 읽은 적이 있다. 똑같은 근육을 사용하는 움직임이지만 그로 인해 쌓인 피로와 손상을 회복하기 위한 의무적인 휴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몸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인지 돈을 벌기 위해 건강과 상관없이 무조건 해야 하는 일(노동)인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평소에 몸을 많이 움직이니까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실 쉬지 않고 똑같은 근육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근육에 무리를 가져오게 되고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아 결국에는 몸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엄연하게 노동이 운동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 헬스를 할 때도 어떤 부위의 근육운동을 하고 나면 그 부위의 근육은 2~3일은 필히 쉬고 난 후 다시 운동을 하도록 운동 계획을 짜주곤 했는데 휴식 기간 동안에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며 더 강해진다고 했다. 그러니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함에 있어서는 휴식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땅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땅을 가꾸기 위해서는 땅도 휴식이 필요하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시골 사람들은 땅을 놀리는 것을 무척이나 죄악시한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시금치 씨앗을 사야겠다고 노래를 불러서 동생이 월동시금치 씨앗을 한봉투 줬는데 아랫집은 이미 시금치를 많이 심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시금치를 더 심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지금 심어놓은 것이 부족하냐고 물어보니 아랫집 아주머니가 대답하기를 겨울에 땅을 놀리기가 아까워서 월동 작물을 심어놓는 것이라고 하신다. 겨울 동안 넓은 땅을 아무것도 안 심고 그냥 비워놓기는 아깝단다.

사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작물들을 빽빽하게 심어놓고 수확하고 나면 바로 다른 작물을 심어 쉴 새 없이 작물을 기른다. 땅이 비어있는 꼴을 못 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안 쓰는 자투리땅을 개간하여 작물을 심어놓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본인의 텃밭은 당연히 작물을 빼곡히 심어놔야 안심이 되나 보다. 우리도 텃밭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빈틈없이 작물을 키우는 절박한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급용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작물을 키우기 원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리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해도 쉬지 않고 연달아 작물을 심어서 땅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건강하고 맛있는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텃밭의 토양을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토양의 영양상태나 토양 미생물들의 균형, 배수나 보수력을 위한 토양의 구조 같은 것이 좋아야지만 작물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하수는 작물을 재배하고 고수는 땅을 가꾼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땅이 좋으면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우리처럼 판매 목적이 아니라 자급 목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수확량보다는  맛있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니 특히나 더 땅을 가꾸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것만 소소하게 키우고 있는 형편이라 전문적인 농부도 아니고 농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타공인 맛있고 좋은 품질의 작물을 키워낼 수 있는 것은 지렁이 분변토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텃밭 토양 때문이다. 그래서 작물을 키우면서 땅의 상태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는 편인데 연속적으로 작물을 심어보니 금세 땅이 황폐해진다. 작물이 성장하는 데는 꽤 많은 영양분이 필요한 것 같다. 녹비 작물을 제외하고 작물을 키웠던 자리에 바로 다른 작물을 심으면 작물이 발아도 잘 안되고 자라기도 잘 자라지 않는다. 관행농들이야 퇴비와 비료를 남용해서 농사를 짓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척박한 땅에서 키운 작물은 대부분  모양도 형편없고 맛도 없다.

황폐해진 땅에는 녹비 작물을 심거나 유기물을 덮어서 땅이 영양을 보유하고 지력을 회복하도록 땅에게 충분한 휴식을 줘야 한다. 운동 후에 근육이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하는 것처럼 땅도 자체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땅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작물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이 되도록 하기 위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 땅을 비워놓곤 한다. 어차피 안 좋은 땅에 작물을 심어봐야 키우기도 힘들고 수확물도 맛이 없어서 못 먹게 되니 좋은 땅이 되기까지는 아예 작물을 심지 않고 녹비작물을 심거나 유기물들을 쌓아놓아 영양가 있는 좋은 땅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작물을 키우고 정리하고 나면 그 두둑에도 마찬가지로 녹비작물을 심거나 식물잔사와  커피찌꺼기를 쌓아두고 땅이 쉬면서 영양이 보충되도록 한다. 

 

가끔씩 척박한 땅에서 형편없이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보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형편없이 자란 작물들은 맛도 형편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팔지도 못하겠지만 자기가 먹을 요량이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땅이 좋아지고 나서 심으면 안 되는 것일까? 왜 힘들여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지 않은 작물들을 키워내는지 가끔은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땅에게 휴식을 주고 땅이 좋아진 후에 작물을 심으면 훨씬 건강하고 빨리 자라게 될 텐데 잠시의 인내를 견디지 못하고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서 황폐한 땅에 작물을 심고 비료와 농약으로 유지하는 어리석은 방법을 고수한다.

우리가 땅을 가꿔보니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 땅은 그냥 버려둔 황무지보다도 더 땅이 안 좋고 회복이 더디다. 우리 입장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못 먹을 바에야 그냥 안 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작물을 키우는 마음은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못 먹을지언정 작물은 심어놔야 하나보다. 

차라리 땅을 쉬게 해 주고 회복된 땅에 작물을 심으면 더 좋은 품질과 더 많은 수확량으로 보답할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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