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 꼬투리를 까서 콩만 선별하는 작업을 콩 탈곡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귀족서리태를 마지막으로 이제야 콩 탈곡이 끝났다. 콩은 수확이후 할 일이 많은 대표적인 작물인데, 콩이 적당히 익으면 줄기째 베어 말려서 탈곡을 하고 탈곡한 콩을 또 말려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콩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기 때문에 수확 이후 정성스레 손질해야 하는 콩에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콩을 키워야 하나?
작년에는 콩을 너무 많이 심었었기 때문에 올해는 콩을 귀족서리태, 아주까리밤콩, 선비콩, 홀아비밤콩 이 네 종류의 콩만 아주 소소하게 심었는데 홀아비밤콩은 그야말로 종자만 겨우 건졌고, 나머지 귀족서리태와 아주까리밤콩, 선비콩은 나쁘지 않은 수확량을 보여주었다. 올해 가뭄과 폭염으로 콩 작황이 별로 안 좋았던 것을 고려하면 꽤 많이 수확한 편이다.
선비콩은 대충 30~40주 정도 심었는데 좋은 콩을 2kg 수확했고, 아주까리밤콩은 15주 심어서 1kg을 수확했다. 귀족서리태는 25주를 심었는데 2.1kg을 수확했으니 적게 심었지만 수확량이 꽤 좋은 편이다. 일 년에 콩 한 되 도 못 먹는 우리가 총 세 되 이상의 콩을 수확했으니 우리 입장에서는 콩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선비콩과 아주까리밤콩은 탈곡한 콩을 씻어서 말린 후 냉동실에 3일 넣어놨다가 자연해동시킨 후 햇볕에 하루동안 말린 후 보관했다. 이렇게 말리면 보관 중에 콩 벌레가 생기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된다고 한다. 귀족 서리태는 깨끗한 편이라 탈곡 후에 그대로 햇볕에 하루동안 말려서 보관한다.

우리는 콩을 탈곡할 때 콩 꼬투리를 하나하나 까서 탈곡하는데 그러면 까면서 바로 콩도 선별할 수 있고, 깨지는 콩이 없을 뿐 아니라 꼬투리의 조각이나 먼지가 묻지 않아 콩의 상태도 깨끗하다. 물론 우리가 콩을 적게 심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탈곡기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콩을 줄기째 잘 말려서 도리깨나 방망이로 두드려서 떨어지는 콩을 모아 채로 걸러서 콩을 탈곡한다.
콩 꼬투리를 일일이 까다 보니 병충해도 없고 콩이 좋았던 귀족 서리태와 선비콩은 탈곡이 쉬운 반면 콩 상태가 좋지 못했던 아주까리밤콩은 탈곡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까기도 힘들고 선별도 해야 해서 그런 것인데, 그나마 적게 심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콩 탈곡을 끝내고 든 생각은 콩은 우리 수준에서는 딱 20개 정도만 심는 것이 적당한 것 같다는 것이다. 어차피 많이 수확한다고 해도 먹지도 못하고 일만 많아지는 데다, 콩이 남아돌아도 남들에게 잘 주지 않고 나중에 텃밭에 버려버리니 콩에 들이는 수고는 늘 허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깨달은 한 가지는 콩을 심을 때는 반드시 해충기피 작물과 같이 심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메리골드와 생강과 같이 심어놓은 선비콩과 귀족서리태는 콩의 상태가 꽤 양호해서 수확하고 탈곡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단독으로 콩만 심어놓은 아주까리 밤콩은 동생의 표현을 빌자면 모양부터가 '개꼬라지'였다. 상태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꼬투리도 잘 안 까지고 버려야 할 콩들이 많다 보니 제일 적게 심은 콩인데 오히려 탈곡하는 시간은 꽤 걸렸다.
콩을 수확한 이후의 일을 줄이려면 아무래도 콩을 잘 키우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 귀족서리태 같은 경우에는 올해 우리가 키운 콩 중에서 상태가 제일 좋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콩도 잘 마르고 꼬투리도 잘 벗겨져서 양이 많았지만 동생 혼자서 탈곡을 다 했을 정도였다. 콩은 별 관심이 없어서 늘 방치하고 키웠었는데 이제는 잘 키우기 위해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콩을 보관하기 위해 작년에 수확해서 보관하고 있던 콩들을 정리했는데, 선비콩이 2kg 넘게 남아 있고, 아주까리밤콩과 귀족서리태도 각기 1kg 이상 남아 있다. 맛이 없다고 두부나 만들어 먹자고 내팽개쳐둔 청서리태, 청태, 청자 5호 서리태, 선풍콩 등 떨거지 모둠 콩은 7kg 이상 될 것 같다. 거기에 콩나물 만들어 먹겠다고 심었던 오리알태도 한 되 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콩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겨우내 콩나물과 두부만 주야장천 만들어 먹는다고 해도 저 콩을 다 먹을 수는 있을까? 우리는 작년에 무슨 생각으로 콩을 이렇게나 많이 심었던 걸까?
항상 콩은 심은 양에 비해 수확량이 대박인 작물이기는 하지만 수확해서 바로 나눠줄 수 없다 보니 남들에게 나눠주기가 좋지 않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남들에게 선뜻 나눠주기를 꺼려하는 탓도 있고,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야 택배로 보내주든 손수 가져다주든 가져다주는 수고를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지만 평소 우리가 수확물을 나눠주는 별 친분이 없는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굳이 가져다주면서까지 나눔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집 안에 그야말로 수북이 쌓여 있는 콩을 보며 저 콩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고 한탄만 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너무 바빠서 그냥 넘어갔지만 올해는 콩이 너무 많으니 메주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담아놓은 된장도 다 먹으려면 하세월이긴 하겠지만 의외로 우리가 직접 담았던 된장은 맛이 아주 좋아서 유일하게 콩 키운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못 먹은 콩으로 메주나 만드는 것이 그나마 남는 장사일 것 같아서다. 청태로 담았던 된장이 그렇게 맛이 있었으니, 선비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시도해 보고픈 유혹에 시달리는 중이다.

수확한 콩들을 정리하고 맛을 보기 위해 각기 10알씩 골라서 밥을 하기로 했다. 햇 콩 맛은 어떻까? 콩은 깨끗이 씻은 후에 반나절 정도 물에 불려 놓는데, 나는 콩이 주름이 없이 팽팽하게 충분히 불려졌을 때 사용한다.

햇 콩이라고 특별히 더 맛있지는 않고 묵은 콩과 맛의 차이는 크게 없는 것 같다. 아주까리밤콩은 아주까리밤콩 같고, 귀족서리태는 귀족서리태답다. 아주까리밤콩과 홀아비밤콩은 파근파근 부드러운 식감의 콩이었고, 귀족서리태와 선비콩은 쫄깃쫄깃 찰진 식감의 콩이였는데, 밤콩은 고소한 맛이 더 강하고, 선비콩과 귀족서리태는 달달한 맛이 강했다. 가장 달달한 콩은 의심의 여지없이 귀족서리태였다.
귀족서리태는 서리태를 좀 드셔보셨다는 주변 아주머니들조차 먹어보고 '무슨 콩이 이렇게 달달하고 맛있냐'며 놀라워했던 콩인 만큼 우리가 키운 콩 중 제일 달달한 콩이기는 한데, 두꺼운 껍질의 텁텁한 맛 때문에 나는 선비콩이 더 좋긴 하다. 귀족서리태가 가장 달달하긴 하지만 네 가지의 콩이 각각 특색 있게 맛있다 보니 역시 내년에도 이 네 가지 콩을 다 키워야 할까 보다.
콩밥을 먹을 때는 맛있는 콩 맛에 콩을 더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콩밥으로 일 년에 먹을 수 있는 콩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아서 콩은 여전히 우리가 처리하기 벅찬 작물이다. 망사 자루에 담겨 보관되고 있는 콩을 보니 저 콩을 뭘 해 먹지? 하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