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도 감성이 좀 부족해서 아름다운 것을 관상하는 것에 별 감흥이 없는 편이라 미술전시나 여행, 영화 감상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꽃구경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억지로 교회 꽃꽂이를 4~5년 하게 되면서 꽃이 지긋지긋해진 측면도 있기 때문에 나는 일상에서 꽃 보기를 돌 보듯 하는 편이다.
그러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꽃을 키우는 것은 내가 할만한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우리 텃밭에서는 메리골드와 제충국, 삼잎국화와 한련화등 해충기피 작물로서의 꽃을 키우고 있기는 하지만 관상용 꽃을 굳이 키우고 싶지는 않은데, 꽃 따위를 기르기에는 너무 좋은 땅이기 때문에 땅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때의 보는 즐거움을 위해 수개월 정성을 들이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평생 관상용 꽃 따위에 내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인생이 어디 맘대로 되는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다 보니 본의 아니게 관상용 꽃을 심을 일이 종종 생긴다. 주변에서 꽃모종을 주면서 이곳에 심어라 저곳에 심어라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마지못해 심고 키우게 되는 꽃이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센터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환경미화의 일환으로 도로 옆 화단이나 화분과 관공서 앞 화단의 꽃을 바꿔 심는데, 심고 남은 꽃모종들은 주민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그렇게 얻어온 모종을 텃밭에 심으라고 갖다 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자신은 키우지도 않으면서 '꽃이 알록달록 소담하게 피어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잖아?' 하며 굳이 꽃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꽃밭을 가꾸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한 때는 꽃모종을 가져다준 성의를 무시하지 못해서 길가 보도 옆으로 꽃을 심고 화단을 가꿨더랬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꽃을 심어 가꿔놓으니 깔끔하고 꽃도 구경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칭찬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사실 꽃밭을 가꾸는 것은 꽤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텃밭에 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것 같다. 물도 자주 줘야 하고 꽃이 잘 보이게 풀도 자주 매 줘야 한다.
꽃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심어놓은 죄(?)로 틈틈이 돌봐서 그럴싸한 길 옆 화단을 만들어 놓아 꽃이 피니 사람들이 예쁘다고 좋아하는 것은 잠시고 흐드러지게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내 땅도 아니니 신고도 못하겠고 꽃을 훔쳐가는 사람을 제지했더니 원래 길가의 꽃은 아무나 가져가도 되는 거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참견한다고 나를 나무란다.
정말 꽃 가꾸는 것은 생에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아무리 길옆에 심긴 꽃이라지만 여럿이 보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감상만 하고 지나가면 안 되는 것일까? 굳이 훔쳐 파내서 자기 밭에 심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희귀한 꽃도 아니고 쉽게 살 수 있는 꽃모종들인데, 사서 심지 않고 굳이 훔쳐서 심어야 하는 것일까? 시골 사람들의 이런 이기적인 행태는 언제나 실망스럽다.
꽃 도둑들이 기승을 부려서 화단이 엉망이 되고 아기자기하게 여러 가지 꽃이 심겨 있던 화단에는 캐가기 힘든 아이리스만 남아있는 형편이 되고 나니 원래도 취미가 없었지만 꽃밭 가꾸는 일에 환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재주 부리는 곰이 된 느낌이다. 시간 들여 애써 꽃을 가꿨다가 꽃 도둑놈들만 좋은 일을 만든 셈이다.

나는 꽃밭 가꾸기에 넌덜머리가 났는데, 동생은 갑자기 관상용 꽃에 흥미가 생겼는지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대거 구매했다. 길 가에 심자니 100% 도둑맞을 것이 분명하고 텃밭에 심자니 심을 곳이 마땅하지가 않다. 이걸 어디에 심어야 하지?
냉장고에 구근을 넣어 뒀는데 수확물이 많아 냉장고를 비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빨리 밭을 만들어 구근들을 옮겨 심어야 할 것 같다.
'밭을 만들어야 하는데......'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동생은 텃밭 중앙 오십일 팥을 심은 자리에 꽃밭을 만들기로 하고 오십일 팥을 정리했다. 접근이 쉬운 텃밭 가장자리에 심었다가 꽃 도둑들이 설칠까 봐 엄선한 자리인 것이다. 먹지도 못하는 꽃인데 너무 좋은 자리에 심는 거 아닌가? 하는 불만은 있지만 심을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혼잣말로 나직이 불만을 토로하며 꽃밭을 만든다. 양심 없는 꽃 도둑놈들 때문에 이게 웬 고생이냔 말이다.

꽃밭 예정지인 오십일 팥밭의 남아있는 팥 뿌리들을 모조리 뽑아내고 땅을 깊이 파서 커피 퇴비를 묻어 준다. 꽃밭을 처음 만들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몰라서 비옥한 땅이라야 꽃도 잘 자라겠지 하는 마음이 든 데다가 텃밭이 워낙 자갈밭이기도 하니 돌도 좀 골라내서 포슬포슬한 흙을 가진 이상적인 화단을 만들고 싶어서 깊게 경운 해서 밭을 만든 것이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구근을 심기 전까지 수분이 유지되라고 잡초를 덮어 멀칭도 해 주었다. 따져보면 작물을 심는 땅도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들지 않았는데 관상용 꽃들을 너무 호강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보기만 하는 꽃이 뭐라고 이런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불만스럽지만 원래 뭐든 처음 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정성을 들이게 되는 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른 봄 일찍 꽃이 피는 수선화와 히아신스를 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게 꼭 우리 텃밭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을 텐데. 시골 사람들이 흔히 가꾸지 않는 꽃이니 보고 싶으면 직접 키우는 수밖에 없기도 하다. 동생의 구근 쇼핑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느닷없긴 하지만 꽤 정성 들여 꽃밭을 만들었다.

텃밭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에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준비한 텃밭에 심어 주었다. 땅을 깊이 파고 구근을 적당한 간격으로 심은 후 물을 주고 잘 덮어주었다. 봄에 싹이 날 테니 겨우내 잡초 예방과 수분 유지를 위해 잡초와 보리를 베어 멀칭 해줬다. 틈틈이 잡초를 베어 계속 덮어줄 예정이다. 심어보니 생각보다 구근이 많았다. 봄에 제대로 꽃이 핀다고 하면 꽤 장관일 것 같다.
꽃밭이 너무 예쁘다고 꽃 도둑들이 또 설치는 건 아니겠지? 텃밭 중앙에 자리 잡은 꽃밭이 기대되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