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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강황을 버려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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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둔 강황더미에서 강황이 자랐다

 

우리 텃밭에서 강황은 꽤나 기특한 작물이다. 심어만 놓으면 아무 관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에 키우면서 신경 쓸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황가루와 생강강황청을 위한 강황이 소량 필요하기 때문에 매년 강황을 심기는 하지만 항상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대박 수확량 때문에 강황처리에 골머리를 앓곤 한다.

종자를 새로 구입했을 때를 제외하면 강황은 10개 이내로 소량만 심으려고 노력하는데, 보통 한주에 1~2kg의 강황이 수확되기 때문에 10개의 강황에서 수확되는 강황의 양이 사실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불행히도 이 지역 사람들은 강황을 아는 사람도 강황을 먹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강황을 나눠 주기도 힘들고, 강황을 가루로 빻아주는 방앗간도 없기 때문에 강황을 처리하는 것도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남은 강황을 말려서 빻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강황가루는 2년에 한 번씩 만들어 교체를 하는데 늘 미처 먹지 못한 강황가루가 남아 있는 상태라 묵은 강황가루도 텃밭행이 되기 일쑤다(동생의 말로는 강황가루는 훌륭한 발근제라서 모종을 옮기거나 씨앗을 심을 때 뿌리고 심으면 해충도 막아주고 뿌리 활착과 발아도 훨씬 잘 된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강황가루를 5kg 정도 만들었는데, 강황가루 5kg은 꽤 많은 양이어서, 강황가루를 먹는 서울의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뿌렸는데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강황가루가 많이 남아 있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년에 수확한 강황은 아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종자를 남기고 생강강황청을 만들고 나니 더 이상 쓸데가 없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5~6kg의 강황을 종자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택배 보내고 나머지는 방치해 놨더니 대부분이 마르거나 곰팡이가 피어 쓸모없게 되어버려서 모조리 모아 텃밭에서 퇴비통으로 쓰는 밑이 뚫린 콩나물시루에 버리게 되었다. 땅에 거름이나 되거라.

 

이 콩나물시루는 밑바닥이 뚫려있는 원통형태의 콩나물시루인데 우리는 다비성 작물 옆에 이 콩나물시루를 놓아두고 잡초나 식물잔사가 생기면 콩나물시루에 담아놓곤 한다. 쌓인 잔사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렁이 분변토가 되어 작물들에게 영양을 주기 때문에 따로 추비를 하지 않고도 추비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물잔사를 그냥 땅에 쌓아놓는 것보다는 이렇게 통에 쌓아두는 것이 습기가 잘 가둬져서 그런지 더 빨리 삭기 때문에 휴경하는 두둑에도 식물잔사를 쌓아두지만 텃밭 구석구석에 콩나물시루나 못쓰는 화분으로 임시 퇴비통을 만들어 식물잔사를 쌓아 놓기도 한다.

수확한 강황은 그대로 버려둔다

 

우리 텃밭에서는 워낙 땅에 작물 잔사들을 많이 버려둬서 작물 잔사에서 씨가 떨어져 자생 작물로 자라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다. 그래서 자생 작물이 나고 자라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편이지만, 생강과 강황의 경우에는 버려둔 잔사에서 작물이 자랄 거라는 기대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데, 둘 다 고온성 열대작물들이라 일단 겨울의 저온의 견디지 못해서 버려둔 잔사가 종자가 되기 힘들고, 워낙 다비성 작물이라 운 좋게 싹이 났다고 해도 영양이 부족해서 얼마 크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황을 버린 콩나물시루에서 강황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겠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랬다. 퇴비통이 놓여있는 자리들이 다 척박한 못쓰는 땅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콩나물시루에서 싹이 났다고 해도 제대로 자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콩나물시루 주변에 기세가 좋은 아스파라거스와 백왕오이가 심겨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작물의 기세에 가려서 콩나물시루로 접근이 어려웠던 탓에 타의적으로 방치가 되기도 했다.

 

오이 덩굴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콩나물시루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강황이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 보인다. 폭염과 가뭄 때문에 땅에 심은 작물도 말라죽는 일이 흔했는데, 저 조그마한 콩나물시루 속에서 어떻게 폭염과 가뭄을 견디고 살아있는지 살짝 호기심이 생긴다. 비록 땅에 심긴 것보다는 줄기도 약하고 비실비실하지만 제법 크게 자라 있는 것을 보니 잘하면 강황이 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일찌감치 제거해 콩나물시루에 쑤셔 넣었겠지만, 수확 가능성이 보이니 클 때까지 커 보라며 일단 나눠본다. 수확이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콩나물시루에서 자란 강황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진 여파다. 어차피 땅에 제대로 심은 강황도 방치하면서 키우는데 콩나물시루에 있는 강황이라고 더 특별할 것도 없어서 그냥 콩나물시루에서 자라는 것을 놔두는 것밖에 하지 않았지만.

 

집 앞 텃밭은 농장 텃밭보다 따뜻해서 콩나물시루에서 자란 강황을 훨씬 늦게 수확을 하게 됐다. 이미 수확해 놓은 강황이 많으니 여분의 강황을 쓸 마음은 없었고, 그저 콩나물시루에서 자란 강황의 상태가 궁금하니까 수확만 해보는 것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강황의 상태를 보니 막상 버려버리기엔 아까워서  얻어갈 사람이 없나 은근 주변을 살피게 된다. 아쉽게도 얻어갈 사람을 못 만나서 강황은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작년에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강황 종자 좀 달라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막상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강황을 찾는 사람이 없다. 참 타이밍이 잘 안 맞는 작물이다.

 

수확을 해보니 울금도 달려 있고, 아주 소박하게 강황이 달리긴 했지만 제법 강황다운 강황이 달렸다. 땅이 없는 사람은 화분에서 강황을 키워도 키울 수 있을 법하다. 궁금증은 해소했으니 멀쩡한 강황이 아깝긴 해도 캔 모습 그대로 텃밭에 버려두었다. 혹시 묻어뒀다가 내년에 싹이 날까 봐 겨울 추위에 얼고 녹으며 삭으라고 지상부에 노출시켜 놔둔 것이다.

아는 사람이 보면 또 '멀쩡한 걸 버려놨다'라고 잔소리하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강황을 잘 모르니 별 말이 없으려나?

작년에 강황 종자를 요청했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버리는 강황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남을 건 어차피 남는 법이니 굳이 집에 들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쿨하게 버리고 좋은 거름이 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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