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 텃밭에 남아 있는 김장배추들은 대체로 상태가 아주 형편없다. 노랑노랑한 전잎이 배추를 뒤덮고 있는데, 올해는 병충해도 심해서 그런지 예년보다 더 형편없는 것 같다. 주변의 텃밭을 둘러봐도 배추의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곳이 별로 없는데, 동생의 말로는 텃밭카페에서도 배추 농사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김장배추의 경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최대한 달아지라고 김장 직전까지 수확을 미루는 편인데, 배추를 키우는데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올해는 배추를 거의 방임 상태로 놔뒀다) 배추의 상태가 아주 나쁘지는 않아서 수확 직전의 배추를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예전부터 우리 텃밭의 배추들은 다른 텃밭의 배추들이 노랗게 전잎이 생기고 있을 때도 독야청청 푸른 잎을 자랑했더랬다. 우리 텃밭의 배추를 구경하는 사람들마다 추운 겨울에 배춧잎이 시들지 않고 생생한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비록 벌레도 좀 먹고, 통도 좀 작긴 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전잎하나 없이 생생한 배추의 자태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가 이 배추가 한겨울 노지에 있는 배추라고 믿겠는가? 주변의 노랑노랑한 배추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확실하다.

김장을 적게 할 예정이라서 김장배추는 아주 소소하게 심었는데, 모종을 사면서 덤으로 얻은 배추에 호기심으로 씨를 뿌린 토종배추까지 더해서 예상보다 심어놓은 배추의 양이 많아졌다.
지금까지는 김장배추로 황금배추를 키웠었는데 올해는 동생이 황금갓배추 모종을 사 왔다. 동생의 설명으로는 갓 맛이 나는 황금배추라고 한다. 작물을 고르는 동생의 안목은 꽤 탁월한 편이기 때문에 새로운 품종을 사 왔다고 해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지만 심을 때부터 배추답지 않은 잎 색깔 때문인지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배추였다. 키우는 내내 '갓이 잎사귀가 왜 이렇게 큽니까?', '이 집은 갓이 알이 차네요?'등 갓으로 오인한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더랬다. 제법 배추다운 모습을 갖춘 이후에도 갓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었는데, 배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호기심에 탐을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른 텃밭의 배추는 상태가 처참했는데, 우리 텃밭의 배추는 너무 생생하니 품종이 달라서 배추가 생생한 것이라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보기에는 토종배추나 덤으로 얻은 배추의 상태도 황금갓배추와 비슷비슷한 것 같다. 다만 토종배추는 좀 늦게 심어서 배추가 좀 작을 뿐이다. 토종배추는 청방배추와 150일 배추를 심었는데 두 배추가 섞여서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데다 둘 다 결구배추이긴 하지만 늦게 심어서 그런지 결구가 안된 배추도 많다.
전해 듣기로는 토종배추는 맛이 있어서 토종배추를 먹는 사람은 토종배추만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배추를 잘 안 먹어서 모르겠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니 그 맛이 어떨지 조금 궁금은 하다.

배추 중에 가장 상태가 나쁜 것은 홍배추다. 덤으로 얻은 배추와 남은 황금갓배추가 같이 심겨있는데 유난히 홍배추만 벌레가 많이 먹었다. 그래도 죽지는 않고 먹을 수는 있을 만큼 자랐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기도 하다.
올해는 배추에 너무 신경을 못써줬다. 지렁이 분변토 액비도 초반에 두 번 준 게 다고, 날이 그렇게 가물었는데 결구되는 시기에 물도 한번 못 줬다. 다행스럽게도 신경을 못써준 것에 비하면 배추는 아주 양호하게 자랐으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배추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다비성 작물인 데다가 병충해도 심한 작물이라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아주 신경 써서 키워야 그럭저럭 배추다운 배추를 키울 수가 있다. 우리 텃밭의 토양은 다른 텃밭에 비해 아주 비옥한 편이지만 배추는 그중에서도 특히 비옥한 땅을 골라서 심어놔야 잘 자란다.
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온 땅은 대체로 황폐하다. 작물을 심을 때마다 퇴비나 비료를 섞어서 땅을 만들지만 작물이 스스로 잘 자랄 만큼의 영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배추 같은 작물은 농약과 비료 없이 키우는 곳이 아주 드물다. 뭐, 농약과 비료를 듬뿍 주고 키우더라도 좋은 땅에 심은 우리 배추 같은 품질의 배추를 얻기는 힘들지만.
시골 사람들은 농약과 비료 사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작물이 맛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맛있는 작물을 얻기 위해 비료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배추도 워낙 농약과 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작물이라서 사실상 시중에서 맛있는 배추를 구입하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됐다. 사람들이 맛없는 배추에 익숙해져서 배추가 맛이 없다는 것을 잘 모를 뿐이다.
나는 때때로 농약과 비료처럼 당장 효과가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 작물에 백해무익한 방법들로 작물이 키워지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렇게 키워진 작물들은 맛도 없지만 먹으면 건강도 해치기 때문이다. 굳이 돈을 들여 혹은 수고를 들여 맛도 없고 건강에 좋지 못한 작물을 먹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점점 배추를 키우기 힘들어지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서 배추가 잘 자라는 서늘한 기후가 없어졌기 때문인데, 그래서 배추가 병도 많고 충해도 심해지고 있다(농약과 비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시기에 우리 텃밭의 배추들을 보면 튼튼한 뿌리를 기반으로 자체 면역력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자연농법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원래 진정한 실력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주변에서 배추 농사가 잘 안 됐다고 곡소리가 나고 있는 요즘에 우리는 예년과 비슷하게 상태가 나쁘지 않은 배추를 얻게 되니 실로 뿌듯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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