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사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숨어있는 고충이나 문제점, 수고나 노력이 막상 경험하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을을 지나다 보면 새로이 농막이나 집을 짓고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자신이 먹을 걸 직접 키우는 건 꽤 건전한 일이다. 소소하게 몸을 움직이고 작물이 자라는 걸 보며 나름의 성취감도 느끼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꽃이든 작물이든 키우고 있었다.
사실 나는 텃밭을 가꾸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무언가를 보살피고 돌보는 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지라 텃밭 가꾸는 것은 절대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상 텃밭 가꾸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으니 텃밭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시골생활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와 달리 각박한 도시보다는 여유 있는 시골 생활이 좋다던 동생이(지금은 시골 살이 몇 년 만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꼭 하고 싶어 하던 시골 생활 중에 하나가 텃밭 가꾸기인데, 유기농을 고집하는 동생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취미 중 하나였다. 믿고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채소를 얻기 위해서 농사는 꼭 지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생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텃밭을 가꾸다 보면 유난을 떨 수밖에 없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텃밭을 가꾸다 보니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에 놀라게 된다. 시골 사람들답게 지식을 쌓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소위 '~카더라' 통신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어떤 비료가 좋다 하면 너도나도 그 비료를 쓰고, 어떤 약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 약을 치고, 어떤 작물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 작물을 심는다. 역시나 시골 사람들답게 게을러서 가능하면 쉬운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풀은 매지 않고 제초제를 치고, 유기물을 넣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보다는 화학 비료를 치고, 액비나 천연 농약을 만들기 귀찮아서 시판 농약을 사서 쓴다. 우리의 먹거리가 이렇게 비루한 사람들의 엉터리 지식에 근거하여 자란다고 생각하면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텃밭 로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요즘같이 날씨가 농사짓기에 좋지 않은 경우 -며칠씩 비가 온다거나, 일교차가 너무 심한 날이 지속되거나, 날이 너무 가물거나, 날이 갑자기 더웠다 추웠다 하거나 하는 이상한 기후-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 과다하게 농약을 치는 농부들이 많다. 작년부터 잔류농약 허용기준을 초과했다는 농산물들에 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일반 관행농들이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을 얼마나 치는지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나도 주변 농부의 농사짓는 걸 보기 전까지 많이 친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치는지 몰랐다. 어떤 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농약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시골 사람들의 대부분은 농약을 안 치면 농사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상당히 확고하다. 내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농약을 안 치면 작물이 죽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농사를 짓든, 농사를 짓지 않든)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기준량보다 더 많이 농약을 쳐서 농사를 잘 짓는다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한다.
텃밭을 시작하고 나서 영양이 많으니 과일이나 야채를 껍질째 먹으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끔찍한 소리인지 알게 되었다.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는 지식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는 무척이나 위험하다. 작물에 뿌려진 농약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도 완전히 제거하기가 힘들다. 껍질에 남아 있는 농약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껍질에 있는 영양분은 농약을 해독하는데 다 사용해도 모자라니 그냥 껍질을 벗겨 먹고 껍질에 있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을 만큼 껍질 벗긴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먹으라'라고.
우스개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영양분을 많이 챙겨 먹는 것보다 유해 물질을 적게 섭취하는 것이 몸에는 더 유익하니까.
이쯤 되면 내가 농약에 대해 무척이나 경계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시골에서 살다 보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농약을 치는 행태를 알게 되었고 작물의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소위 '농부'라는 시골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신뢰하고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뿐이다.
주변에는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키우는 것을 목표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텃밭 작물이 형편없이 자라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왕 농사 지을 거 좀 제대로 짓지.
거름기 하나 없는 땅에 다비성 작물을 심어놓고 열심히 키우고 있는 걸 보면 참 답답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좋지 못하고.
작물은 제대로 된 때에, 제대로 된 땅에, 제대로 된 방법으로 키워야 한다. 씨앗이 발아하는 적정 온도가 있고, 성장하기 좋은 적정 온도나 습도가 있고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영양분이 있다. 빨리 심는다고 빨리 자라는 것이 아니고 많이 심는다고 많이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심는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작물들은 때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자연의 풍광을 적절하게 받아야 건강하게 자란다. 빛이 많이 필요한 것은 빛이 많이 비치는 곳에, 그늘에서 자라는 것은 그늘지는 곳에 심어야 하고 통풍이 잘 되게 널찍하게 심어야 한다.
사람도 고난을 겪으면서 성숙해지듯이 작물도 자력으로 시련을 이겨내는 경험이 있어야 맛있고 건강하게 자란다. 물이며 영양분이며 계속 인위적으로 주기보다는 자연의 상태에서 식물이 스스로 흡수할 수 있게 키워야 한다. 벌레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은 벌레를 쫓기 위해 파이토케미컬을 더 많이 생성한다고 한다. 괜히 앞서서 살충제를 남용할게 아니라 가능한 한 작물이 자력으로 이겨내도록 관리를 해야 건강하고 맛있는 작물을 얻을 수 있다.
텃밭을 가꾸는 것은 단순히 먹는 작물을 키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작물을 키우는 걸 고민하고 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의 건강을 고려하고, 작물이 자라는 환경을 위해 환경 보호를 실천한다. 특히 우리 같이 자연의 환경에서 작물을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할지 모르는 인위적인 행위들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작물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하게 되는 일들이다. 텃밭 하나로 인해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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