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맛있는 걸 먹으려고 농사를 짓는다. 그러니 수확물 중에서 가장 좋고 예쁜 것들은 당연히 먹는다.
대량으로 농사짓는 것이 아니고 워낙 개량종 종자도 많으니 필요한 종자는 거의 대부분 구입한다. 작년부터 토종 작물들을 심기 시작해서 토종 종자들을 남기기 시작했지만 종자가 비교적 저렴한 상추나 양배추, 배추, 무, 당근 이런 채소들은 그냥 구입하는 편이다. 그것도 심고 남아 보관하는 것들이 꽤나 많다. 작년 말에 종자를 정리해 보니 상추 종자만 해도 20종 정도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종자를 남기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다.
의도치 않게 점순 아주머니네에 방문을 했는데 한창 마늘을 수확하고 있었다. 올해 점순 아주머니는 마늘을 네 종류나 심으셨단다. 대충 마늘밭을 둘러보니 한편에 홍산 마늘이 있다. 점순 아주머니네는 늘 남도 마늘을 심으시는데 마늘이 알이 작아져서 올해는 우리와 같이 단영 마늘 종자를 사서 심었다. 근데 홍산 마늘 종자가 어디서 났지? 이곳에서는 한지형 마늘인 홍산 마늘을 심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혹시 작년에 우리가 먹으라고 준걸 종자로 쓴 건가?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아주머니네 마늘이 너무 작아서 까기 불편하다고 우리가 쉽게 까먹으라고 준 홍산 마늘 30개를 안 드시고 종자 했단다. 녹병 왔다고 종자 하지 말고 그냥 드시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작년에 갑임 아주머니에게 맛보라고 미백 옥수수를 가져다줬더니 그중에 좋은 거 하나는 종자 한다고 말리셨었다. 개량종이라 종자 하지 말라고 종자는 따로 주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갑임 아주머니는 울타리 밤콩이나 선풍콩도 먹으라고 줬는데 종자 하겠다고 고이 모셔놨던 전적이 있다.
이러한 시골 사람들의 종자 사랑은 때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먹는 건 먹고 종자 할 것은 종자 하는 것이지 왜 먹으라고 준 것을 자꾸 종자로 남기는지. 물론 종자는 좋은 걸 남겨야 한다(멘델의 유전 법칙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종자가 제대로 여물 때까지 완전히 익혀야 한다. 종자를 채종 하는 토종 작물들은 종자용 열매를 남겨놨다가 완전히 익혀서 딴다. 그러니 대부분 먹으라고 준 것들을 종자 하겠다고 남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설령 종자로 쓸 수 있는 것들(마늘, 선풍콩)이라고 할지라도 먹으라고 준 것은 먹어야지 왜 아껴서 종자를 하는 것일까? 종자는 싸게 구입하면 되는 것인데, 특히나 우리 작물은 유기농으로 키운 것인데. 시골 사람들의 분별없음에 마음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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