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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텃밭 일은 언제나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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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서 분에 넘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사실 호기심도 별로 없고,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서 필요한 일만 할 뿐 새로운 일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정한 일을 할 때에는 무리할 일이라는 게 전혀 없다. 그러나 항상 무리해서 일하게 되는 것은 가족들이 벌려놓은 일들 때문이다.

 

아버지와 동생은 성향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인데 호기심도 많고 의욕도 많아서 일을 벌여놓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벌려놓은 일을 끝까지 수습하는 세심함과 인내력이 없어서 문제일 뿐. 그래서 항상 벌려놓은 일들을 다른 가족들이 수습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텃밭 일이 그렇다. 나는 사실 텃밭을 가꾸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무언가를 돌보는 것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일이다. 실제로 텃밭은 오롯이 동생의 취미다. 작물 선정부터 모종을 키운다든지, 종자를 관리한다든지, 심고 수확하고 나눔 하는 일까지 거의 동생의 주도로 이뤄진다. 동생은 작물을 심고 적당히 관리만 하면 좋은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적당한 관리로는 질 좋은 수확물을 얻기는 힘들다. 그저 적당히 좋은 수확물을 얻을 수는 있어도. 힘든 일을 싫어하는 동생이 요즘 무리하게 텃밭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사실 텃밭 일은 동생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언제나 가치 있고 좋은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좋은 수확물도 그렇다. 스스로 알아서 잘 크는 작물이란 없다. 손이 많이 가고 적게 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일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내가 겪어보니 어떤 일의 추이를 매일 꾸준히 살펴보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지켜보다가 크게 변화가 없으면 건성건성 보기 시작해서 정작 중요한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의 양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데일리 루틴) 자체가 난도가 높은 힘든 일이다.

 

텃밭에는 딸기, 오이, 참외, 수박, 호박등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작물들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야 한다. 물이 부족하면 수정이 잘 안 되거나 과일이 모양이 안 이쁘다. 물 주기를 귀찮아하는 동생은 '물 좀 작작 주라'며 오히려 나를 비난한다. 동생님, 물 많이 먹는 작물을 심은 것은 그대거든요? 

 

텃밭에는 표는 잘 안 나지만 꼭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넘쳐난다. 물 주기, 풀매기, 북주기, 지주대 세우고 묶어주기, 덩굴작물 유인하기, 추비 하기, 순 지르기 등 그 외에도 단발적이긴 하지만 심고 수확하고 하는 일도 적은 양의 일이 아니다.

돈도 안 되는 텃밭 일에 하루종일 매여 있는 것이 어떤 때는 짜증 난다. 동생이 작물 좀 그만 심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더 심었으면 더 심었지, 덜 심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모종이나 종자를 구해놓고 이야기한다. '이건 어디다 심지?'  때로는 그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