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맘때쯤이면 넘치는 수확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나름 지인들에게 택배도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수확할 것은 생기고 동생과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냉장고에 야채가 남아돌아 항상 야채를 쓰기 위해 뭘 해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텃밭에서 매일 수확하고 수확물을 씻고 정리하는 것도 다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지라 텃밭 일에 매여있는 매일이 너무 짜증 나게 된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들마다 올해 비가 자주 와서 오이, 호박, 참외 같은 작물들이 수정이 안 돼서 열매가 안 달린다고 난리인데 수확물이 매일 나온다고 투덜대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한 투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요즘은 진심으로 수확물이 안 반갑다.
넘쳐나는 수확물을 감당하지 못해서 올해는 절대 택배 안 보낸다고 다짐을 했던 게 무색하게 서울 지인들과 동생의 블친들에게 택배를 보낸다고 새벽에 수확해 오기도 몇 번. 부추, 깻잎, 방울토마토 같은 것은 아예 수확을 포기하고 텃밭에 방치하고 있다. 부추며 깻잎은 김치도 담고 장아찌도 담았고 방울토마토로 토마토소스까지 만들었는데 비가 자주 오니 작물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져서 수확량이 점점 많아지니 감당이 안된다. 우리의 속도 모르고 텃밭을 지나가는 동네분들은 방울토마토며 깻잎이며 왜 수확을 안 하냐고 잔소리가 늘어진다.
못생기고 안 좋으면 고민의 여지없이 텃밭에 버려버릴 텐데 수확되는 작물의 상태가 너무 좋으니 버리기는 아깝고 어차피 집에 들고 와봐야 다 먹지 못할 것이 뻔한데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나눠주기에는 시골 사람들의 뻔뻔함을 더하게 할 것 같아 꺼림칙하다.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한 것이다.
수확물의 양이 늘 성에 안 차는 다른 텃밭농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수확물이 너무 많은 것도 꽤나 곤혹스럽다. 집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확물의 양은 한계가 있으니 수확물이 많으면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필수가 되는 법인데, 시골 사람들과 수확물을 나누는 것은 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짓이다. 동생의 블친들이 수확물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과 나눔 하는 것을 '복을 짓는다'며 아주 부러워했는데 사실 소신을 가지고 나름 정성껏 기른 작물을 가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퍼주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복을 짓는 게 아니라 화를 부르는 행동이 된다.
수확물이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한다고 너무 많은 종류의 작물을 심었기 때문에 때를 따라 계속적인 수확물이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도 원인이 될 수 있고, 땅이 너무 비옥해서 작물이 다른 텃밭보다 잘 자라는 영향도 있는 데다 자생작물들이 많아서 파종한 작물보다 작물의 성장세력이 남다른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농사의 경험상 작년보다 작황이 나쁘고 수확량도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데 동생과 둘이 처리할 수 있는 수확량은 절대 아니다. 더구나 올해는 수박이나 참외가 생각보다 잘 열리고 있어서 생전 해보지 않았던 과일 나눔까지 하고 있다(과일은 동생의 애정 작물이라 웬만해서는 나눔 하지 않는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수확물로 음식 한다고 밤늦게까지 요리하고 새벽에(보통 5시) 일어나 수확하러 갔다 오는 생활 며칠 만에 텃밭 일에 회의가 든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풍성한 수확을 부러운 투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수확물 처리한다고 하루 세네 시간 정도 자고 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생스럽다. 따지고 보면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확물 처리에 골몰해야 되는 것도 답답한 상황이다. 내가 느끼는 풍성한 수확의 실상은 아주 참혹하다.
동생과 나는 내년에는 필히 농사 규모도 줄이고 품종도 줄이자며, 텃밭 일을 단순화하자고 합의했다. 가능한 먹는 작물만 키우고 키우는 양도 좀 줄이자고. 그래도 농사를 짓다 보면 수확물 처리가 곤란한 지경은 생기기 마련이다. 비슷한 시기에 익는 작물들이 많기 때문에 수확 시기가 몰리는 경향이 있긴 하다.
아무래도 텃밭을 가꾸다 보면 수확물 처리를 고민하지 않을 때란 없을 것 같다.
풍성한 수확의 현명한 처리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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