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텃밭의 호박은 항상 너무 잘 자란다. 모든 호박이 그렇게 세력이 좋게 자라는지 모르겠지만 덩굴이 너무 무성하게 뻗어나가서 밭을 점령하고 다른 작물들을 휘감는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무시무시하게 뻗어가는 호박 덩굴 때문에 낭패를 본다.
작년에 뭐도 모르고 호박 16주를 심었다가 집 앞 텃밭이고 농장 텃밭이고 호박이 온갖 작물들을 뒤덮어서 개고생을 했었는지라 올해는 농장 텃밭에 딱 5주만 심어놨다. 초반에는 가물어서 시들시들 자라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더니 장마가 지나고 나니 갑자기 덩굴이 무성해져서 호박밭으로 접근을 할 수가 없어졌다.
우리는 보통 호박의 본잎이 대여섯 장이 되면 원순을 적심하고 아들순 2개 만을 키운다. 그나마 올해는 호박이 너무 무성할까 봐 몇 개의 호박은 아들순 하나만 남겨놨음에도 덩굴의 세력이 너무 좋아서 이미 작물을 심는 텃밭의 절반 가량을 호박이 뒤덮었고 게다가 일부 덩굴은 텃밭을 벗어나 텃밭 옆의 도로를 향해 뻗어가고 있다.
동생의 표현대로 호박 덩굴의 세력이 정말 '미쳤다'
호박의 세력이 너무 좋은 탓에 우리 텃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호박이라서 그런지 이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들 호박을 하나둘씩 키우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호박(애호박, 늙은 호박)과 호박잎을 얻어가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호박은 착과 되고 60일 정도가 지나야 잘 익은 늙은 호박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달리기 시작하는 애호박은 늙은 호박으로 만들 수가 없으니 발견하는 대로 수확하는데 작년 이맘때에 너무 많은 애호박이 달려서 텃밭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 열심히 나눔을 했더니 올해는 일찌감치 애호박을 예약해 놓은 분들이 많다. 워낙 텃밭 수확물을 자주 나눠줘서 텃밭에 우리가 보이면 꼭 아는 척을 하는 어르신들이기도 하지만.
일찍 늙은 호박을 얻어간 덕곡댁 아주머니와 갑임 아주머니도 늙은 호박을 더 얻고 싶어 하긴 하는데 지금은 텃밭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호박 수확할 정신이 없어서 무작정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늙은 호박이 50개는 족히 나올 것 같다. 다섯 주를 심어서 한 주당 평균 10개의 늙은 호박을 수확한다면 수확량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긴 한데, 호박을 안 먹는 우리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호박 풍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야말로 호박지옥이었던 작년의 경험을 교훈 삼아 올해는 나름 척박한 땅을 골라서 호박을 심었는데(너무 잘 자라는 걸 방지하려고)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올해도 넘쳐나는 호박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가뭄이 지속돼서 다른 작물들은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데 가뭄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호박은 아직까지는 상태가 좋다. 올해는 유난히 호박이 잘 안 된다는 말이 많았는데 봄 가뭄에 열매가 안 달린다 고도했고 여름에 너무 더워서 호박이 화상을 입거나 줄기가 마른 곳도 많았고 비가 오지 않아서 요즘도 열매가 안 달린다고 아우성인데 우리 호박은 딱히 관리를 해준 것도 아닌데 열매도 많고 성장세도 좋다. 방치하고 키우는 호박이라 잘 자라는 이유는 우리도 알 수가 없지만.
올해는 일찍부터 호박이며 호박잎이며 열심히 나눔을 하기도 했고 호박 순들을 가차 없이 끊어버린 곳도 많은데도 여전히 호박 덩굴은 무성하고 호박은 많다.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일 텐데 무성한 호박 덩굴을 보고 있자면 걱정이 앞선다. 저 호박들 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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