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초에 거름이 되라고 고추 옆에 동반작물로 심어놨던 흑땅콩이다. 고추를 정리했으니 땅콩도 정리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잡다한 텃밭일이 많아서 수확을 미루고 있었더니 보다 못한 동생이 땅콩 수확에 나섰다.
사실 땅콩은 동생은 별로 안 좋아하고 내가 좋아해서 심는 것인데 요즘 먹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먹는 것에 시큰둥해져서 옥수수나 땅콩같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도 돌같이 보게 된다.
집 앞 텃밭은 지렁이 분변토를 많이 갖다 부은 곳이라 역시 지렁이 분변토 땅이다 싶게 뽑는 것도 술술, 뽑아놓은 땅콩도 뽀얗고 깨끗하다. 길이가 3m 밖에 안되기는 하지만 지렁이 분변토가 아니면 동생 혼자서 몇 분 만에 뚝딱 수확하기는 힘들다. 갑임 아주머니도 매번 우리가 호미 같은 연장 없이 감자나 땅콩을 수확하는 것을 보고 놀라시곤 하는데 연장 써서 수확해야 하는 땅에서는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지론이다.
올해는 날이 가물어서 다들 땅콩 농사가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크기도 작고 수확량도 저조하다. 우리가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긴 하지만. 파치를 뺀 흑땅콩의 무게는 1.6kg 이란다. 나쁘지 않은 수확량이다. 호밀을 심은 이후 고추와 흑땅콩을 심은 곳인데 그 두둑은 고추도 땅콩도 아주 잘 자랐다. 호밀의 영향일까?
이곳에서는 갓 캔 땅콩을 삶아 먹는데 우리도 흑땅콩이니까 맛을 보려고 일부 안 좋은 땅콩들을 삶아본다. 크기는 작은데 속은 얼마나 꽉 차게 들어있는지. 고소하게 맛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일반 땅콩이 더 고소한 거 같다. 흑땅콩은 밀도도 더 높고 좀 묵직한 맛이 나는 편이다. 인터넷에서의 평가는 흑땅콩이 더 고소하고 달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동생이 인터넷을 보다가 흑땅콩 판매글을 봤는데 가격이 100g에 거의 만원이나 한단다. 우리끼리 16만 원 벌었네 하며 기분 좋게 땅콩을 먹었는데 땅콩 100g에 만원이라니 너무 비싼 거 같긴 하다. 사실 우리는 농산물을 잘 사 먹지 않아서 농산물 시세를 잘 모른다. 동생의 말로는 일반 땅콩도 싸지 않다고 하니 농사 지으니까 먹는 거지 사 먹지는 못하겠다.
나머지 흑땅콩은 건조기에 말리고 이전에 수확해서 말려놓은 땅콩은 까서 오븐에 굽는다. 예전에 방앗간에 맡겨서 땅콩을 볶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크기별로 선별을 안 했다지만 여기저기 태워먹어서 그 뒤로 땅콩은 무조건 집에서 오븐으로 굽는다. 시골에서는 뭐든 믿고 맡길만한 데가 별로 없다. 어쩜 일을 그렇게도 못하는지.
굽는 양이나 땅콩 크기,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긴 하지만 180도에서 10분 정도 구우니 제대로 구워졌다. 식힌 후에 먹을 만큼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지퍼백에 담아 잘 밀봉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간식으로 먹을 땅콩의 준비가 끝났다. 냉동실에 들어있는 땅콩을 보니 얼마나 흡족한지. 작년만 해도 땅콩 농사가 나쁘지 않아서 동생 친구들과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줬었는데 올해는 땅콩 나눔은 못하겠다. 그래도 우리 먹을 만큼은 나왔으니 다행이지. 암.
'일상 > 텃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 익는 계절 (0) | 2024.09.27 |
---|---|
케일, 브로콜리, 양상추 근황 (4) | 2024.09.26 |
모링가와 레몬그라스 (0) | 2024.09.25 |
주방용 천연수세미 만들기 (0) | 2024.09.25 |
케일, 브로콜리, 양상추 모종 심기 (2) | 202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