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지나가시던 덕곡댁 아주머니가 '너희 쪽파 좋네'하며 쪽파에 눈독을 들이신다(덕곡댁 아주머니는 예전에 농사를 꽤 잘 지으셨던 분이라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잘 아신다. 시골 사람답지 않게 안목이 있다). 우리 쪽파가 좀 좋긴 하지.
커피찌꺼기와 잡초를 쌓아 삭힌 곳에 밭을 만들고 심어놔서 그런지 발아도 빨리되고 자라기도 엄청 잘 자란다. 원래 김장에 쓸 용도로 심은 쪽파인데 너무 빨리 자라서 곧 수확해서 파김치 한번 담아야 할 각이다.
갑임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쪽파를 먼저 심었는데도 쪽파 길이가 우리 쪽파 길이의 반밖에 안되는데 그럼에도 본인의 쪽파가 아주 뿌듯한지 우리한테 '줄까?'라고 물어보곤 한다. 쪽파 자랑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갑임 아주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쪽파와 부추는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운 것이 아니면 아예 먹지를 않는다. 사 먹지도 않고 사 먹을 수도 없는 필히 키워먹어야 하는 작물 중에 하나다.
유기농으로 키운 것도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것과 비교하면 맛과 향이 많이 떨어져서 먹을 수가 없는 지경이니 관행으로 키운 것은 우리에게는 쓰레기다.
의외로 쪽파 키우는 솜씨를 자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쪽파를 맛있게 잘 키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쪽파는 영양이 풍부한 토양에서 키워야 하는데 연속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텃밭은 비옥한 땅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사실 제대로 된 쪽파를 길러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는 동생처럼 유기농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라 작물이 맛만 있다면 어떻게 키우든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데 실제로 맛있는 작물을 얻으려면 유용한 미생물이 풍부한 좋은 토양에서 작물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 맛있는 작물을 시중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맛있게 키우기보다는 보기에 좋아 보이게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는데, 나는 보기에는 멀쩡하게 좋아 보이나 실제로 아무 맛도 없는 농산물을 혐오하다 보니 영양가 없는 땅에서 비료와 농약의 힘으로 키운 맛없는 농산물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차피 다 버리는 것들이라 진짜 쓰레기다).
비료를 주고 키운 쪽파는 줄기가 질기고 쓴맛이 나는데 향도 진하지가 않다. 단독으로 먹든 다른 재료와 곁들이든 음식의 맛을 망친다. 사실 비료를 주고 키운 모든 작물들이 다 그렇게 맛이 없는데 부추나 쪽파, 배추, 고추 같은 다비성 작물들은 비료를 주지 않고 키우는 데가 없어서 그런지 사 먹는 거나 주변 사람들이 주는 거나 다 못 먹을 것들뿐이다.
예전에 점순 아주머니가 준 쪽파로 파김치를 담았다가 맛이 없어서 못 먹고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고(아까운 김치 양념만 버렸다), 우리 청양고추가 없어서 점순 아주머니께 청양고추를 얻어서 고흥식 열무김치를 담았다가 맛이 없어서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아까운 열무만 버렸다) 우리는 웬만한 작물은 남이 키운 것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키워먹는 작물에 익숙해져서 비료를 주고 키운 작물이 내는 쓴맛에 굉장히 민감하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쪽파는 파향이 굉장히 진하면서도 줄기가 아삭거리고 특유의 단맛이 있어서 어떤 요리를 해도 다 맛있다. 전에 동생의 블친에게 쪽파를 나눔 한 적이 있었는데 원래 뭔가를 맛있다고 잘 안 하는 블친의 부인(부인의 입맛이 엄청 까다롭단다)이 우리 쪽파로 담은 파김치를 연신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먹었다는 감상을 전해왔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부추와 쪽파, 대파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자기가 먹을 용도로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맛있게 키우기 위해 토양을 가꿀 생각을 하지 않고 편하게 키우려고 비료와 농약을 남용하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럴 거면 왜 농사를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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