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분변토 만들기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기 위해 커피찌꺼기와 식물 잔사를 쌓아놓는 모습

우리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이 잘 자라고 훨씬 맛도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우리에게 얻어먹으려고만 하지 본인들이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해서 작물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 관행농업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도 아닌데 지금껏 해왔던 농업방식을 바꾸는 게 시골 사람들의 특성상 쉽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자신들이 못한다고 변명하려는 것처럼. 꽤 많은 사람이 지렁이 분변토에 관심을 보이는데도 정작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해서 작물을 키우는 사람이 드문 것은 저변에 이런 인식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지렁이 분변토로 농사를 짓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나같이 농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작물을 키우니 말이다. 지렁이 분변토는 퇴비처럼 과다하게 사용한다고 작물에 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물을 심을 두둑에 지렁이 분변토를 충분히 많이 갖다 붓고  작물을 심으면 된다. 경운을 하지도 않고 멀칭을 하지도 않고 퇴비나 비료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계산할 필요도 없고 토양살충제 같은 농약을 쓰지도 않으니(쓸 수도 없다) 얼마나 간편하고 쉬운 일인가?  영양이 부족한 것 같으면 지렁이 분변토를 더 갖다 붓기만 하면 된다. 지렁이 분변토만 충분하다면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은 다른 농사법에 비해 아주 단순하고 편하다. 문제는 지렁이 분변토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일 뿐.
 
지렁이의 먹이에 따라 지렁이 분변토의 질도 달라진다. 그래서 지렁이 분변토를 사서 사용해도 되지만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지렁이 분변토를 얻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먹을 작물을 직접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보통 지렁이 분변토의 필요량을 충족시키려면  작물 심는 면적보다 더 큰 면적의 지렁이 사육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텃밭 가꾸기도 바빠서 지렁이 키우기에 큰 정성을 쏟을 수는 없는 입장이라 간단한 방법으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어 사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추비용으로 쓸 지렁이 분변토가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작물을 키우기 위한 토양을 만드는 것에는 꽤 쓸만하다.
 
지렁이가 없는 땅이라면 텃밭 한편에 민물낚시용 지렁이(붉은 줄 지렁이)를 사서 넣어주고 지렁이 먹이를 주면서 지렁이를 키우면 된다. 시간이 걸리기야 하지만 지렁이가 잘 먹는 먹이가 많으면 지렁이의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텃밭의 토양이 지렁이 분변토이기 때문에 작물을 심으려고 계획한 구역에 지렁이의 먹이로 쓸 유기물들을 올려놓기만 하면 지렁이들이 모여들어 지렁이 분변토를 만든다.
지렁이 먹이로 주는 것은 음식물 처리기를 통하여 만들어진 음식물 퇴비와 커피찌꺼기, 식물잔사들이다. 음식물 퇴비는 이미 미생물이 일차적인 분해를 한 것이라서 뿌려놓고 촉촉하게만 해주면 지렁이가 빠르게 모여든다. 커피찌꺼기도 지렁이가 잘 먹는 먹이이고 거름 성분이 풍부하지만 입자가 너무 곱기 때문에 식물 잔사들과 섞어서 섬유질을 제공해 공기층을 만들어주면 지렁이가 더 잘 먹는다. 식물 잔사는 어느 정도 삭아야 지렁이가 먹기 시작하기 때문에 식물잔사만으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커피찌꺼기나 음식물 퇴비를 섞어주면 식물잔사가 빨리 삭아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드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작물을 심으려고 계획한 휴경지에 식물 잔사를 덮고, 그 위에 커피찌꺼기를 붓고 또  그 위에 식물잔사를 덮는 식으로 커피찌꺼기와 식물잔사를 두세 겹 쌓아 놔두면 몇 개월 후에는 아주 비옥한 지렁이 분변토 더미가 만들어지게 되기 때문에 작물을 심을 때면 위쪽에 지렁이가 안 먹은 잔사들을 걷어내고 평평하게 펴주기만 하면 지렁이 분변토 두둑이 완성되어 그곳에 바로 작물을 심으면 된다.
부추나 파 같은 다비성 작물 옆에도 그렇게 지렁이 분변토 더미를 만들어놓고 추비용으로 사용하면 아주 좋다.
 
카페에서 얻어오는 커피찌꺼기의 양이나 음식물 퇴비가 만들어지는 양이나 식물 잔사가 발생하는 양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량의 지렁이 분변토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여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지렁이 분변토는 어느 정도 만들 수가 있다.
 
짬짬이 풀을 매서 한 곳에 모아놓고 그 위에 커피찌꺼기를 붓고 식물잔사를 덮어놓으면(수분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시간이 알아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어주니 지렁이 분변토를 만드는 것은 지렁이의 먹이만 제공해 놓고 지렁이가 열일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기다리면 지렁이들이 알아서 아주 비옥한 지렁이 분변토를 만들어주니 지렁이 분변토 만들기는 그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