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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석인성시(호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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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부랴부랴 수확한 늙은 호박들

 

텃밭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밭 끝에서 밭에서 뭐 하냐며 소리를 친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촌댁 아주머니시다. 인사를 했더니 텃밭 앞에 엉뚱한 차가 세워져 있어서 나인 줄을 몰라 봤다며 다른 사람이 텃밭에 들어온 줄 알고 쫓아주러 오셨단다. 덕곡댁 아주머니와 함께 우리 텃밭 수확물을 몇 번 얻어가시더니 텃밭의 파수꾼을 자처하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 텃밭은 철도역 옆에 있어서 까딱 잘못하면 외부 사람의 손을 타기가 아주 쉽다. 간간히 작물 서리 이야기가 들리지만 우리 텃밭은 잡초가 무성해서 뱀 나올까 봐 드나드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작물 서리를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방치하는 작물들이 워낙 많아서 실제 서리를 해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눈치 못 챌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것보다 수확물이 많다 보니 눈에 띄게 가져간 것이 아니면 그다지 상관없다는 입장이기도 했다.

실제로 텃밭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무성한 잡초 때문에 지금껏 텃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텃밭이 남의 손을 탈 일이 없으니 그런 것에 꽤나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사람들이 텃밭에 들어온다고 하고 작물이 없어지고 나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

 

사촌댁 아주머니가 풋호박과 호박잎을 좀 얻어가겠다고 하셔서 수확해 드렸더니 받아가시며 텃밭을 벗어나 길가로 뻗은 호박덩굴에 달려 있는 호박과 호박잎을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막 따간다고 나에게 알려준다. 어차피 버린 작물들이라 크게 신경 안 쓰는 것들이긴 한데 아무렇게나 따가다가 텃밭에 들어올까 봐 살짝 걱정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철도역에 근무하는 언니가 어떤 사람이 텃밭 안으로 들어가서 호박잎을 따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일이 바쁘다고 호박은 제쳐두고 있었는데 시간 날 때 호박을 수확해야 될 것 같다. 이전에야 호박잎이 무성해서 호박이 안보였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호박이 보이기 시작하니 사람 손을 타기 시작할까 염려된다. 

 

우리는 늙은 호박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호박을 애지중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여문 호박씨를 얻으려면 잘 익은 늙은 호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찍 착과 된 늙은 호박 몇 개를 점찍어 놓고 호박 받침대도 받쳐주고 곱게 분이 펴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충분히 익도록 따지 않고 고이 모셔뒀었는데 텃밭에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늙은 호박을 확인하러 가보니 점찍어놨던 호박들이 하나도 없다.

늙은 호박은 무게가 있어서 우리 수확물을 얻어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은 절대 가져갈 수가 없고, 젊은 사람이나 남자가 따갔다는 결론인데 누가 간 크게 남의 텃밭에 들어와 늙은 호박을 따갔을까? 호박 따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작정하고 들어온 걸까?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분이 하얗게 엄청 많이 핀 맛있어 보이는 호박이라 특별히 아끼던 것인데 결국은 남 좋은 일만 했다. 옛말에 아끼다가 똥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너무 아깝다.

 

늙은 호박을 도둑맞고 보니 마냥 텃밭에 호박을 방치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 익은 늙은 호박들은 수확을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호박이 꽤 크다. 호박죽 끓여 먹을 늙은 호박을 애타게 기다리시던 덕곡댁 아주머니에게 하나 나눠드리고 나머지는 집으로 다 들고 왔다. 6~9kg 되는 큰 호박들이라 자리도 많이 차지한다. 아이고, 이 호박들은 다 어쩌지?

괜히 아끼다 버리지 말고 빨리 써야 할 텐데 크기가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

우리에게 알맞았던 크기의 호박을 도둑질해 간 사람이 너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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