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면서 갓김치를 같이 담으려고 했는데 갓이 너무 커져 버렸다. 아마 날이 따뜻해서 그런가 보다. 더 놔뒀다가는 감당이 안될 것 같아서 갓김치용으로 심었던 돌산갓을 수확해서 김치를 담기로 했다.
김치양념을 새로 만들어야 돼서 이하연 명인의 갓김치 레시피를 참고했는데 새우젓과 액젓의 양은 우리의 입맛대로 변경했다. 갓은 수분이 많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양념을 조금 묽게 한다고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갓김치는 오래도록 숙성시켜서 먹기 때문에 김치를 빨리 익게 하는 재료들을 피하는데 요즘에 나오는 레시피들을 보니 양파나 과일을 갈아 넣거나 찹쌀풀, 설탕(혹은 매실청)같이 김치를 빨리 익게 하는 재료들을 첨가하는 것들이 많다. 빨리 먹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갓이 맛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양념 레시피에도 배와 찹쌀풀이 들어가서 그다지 내 맘에 안 들지만 일단 레시피대로 만들어 봤다.
갓 4kg 기준 양념은 무 400g, 배 400g, 찹쌀풀 400g, 마늘 200g, 생강 40g, 다시마 우린 물 1.2l를 믹서로 갈아서 준비하고 거기에 고춧가루 400g, 새우젓 250g, 멸치 액젓 250ml, 진젓 30g을 넣어 잘 섞은 뒤 30분 정도 숙성시켜 만들었다. 배 대신 무로 대체해도 될 것 같은데 나중에 먹어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생강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김치에서 쓴맛이 나기 때문에 정량으로 넣지만 그 외 다른 재료들은 아주 정확하게 계량할 필요는 없다. 진젓은 빨리 먹는 김치에 넣으면 비린 맛이 날 수 있지만 오래 숙성시키는 김치에 넣으면 김치가 익으면서 감칠맛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묵은지나 갓김치를 만들 때는 꼭 넣어주는 재료다.
갓은 상처 안 나게 잘 씻어서 줄기부터 소금에 절여 주는데 어차피 오래 익힐 거라서 많이 절일 필요는 없기 때문에 3시간 정도만 절였다. 절여진 갓은 물기를 뺀 후에 양념을 발라서 통에 차곡차곡 쌓은 뒤에 두어 번 바닥에 쳐서 공기를 빼주고 위에 우거지를 덮고 잘 밀봉하여 보관한다. 김치는 혐기발효 식품이라 가능한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보관해야 맛있게 익은 김치를 얻을 수 있다.
갓김치가 맛이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갓이 맛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 여수에 여행을 갔을 때 곳곳마다 갓김치를 파는 곳이 있었지만 의외로 갓김치의 맛이 너무 기대이하라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키운 갓은 톡 쏘는 갓 특유의 향이 진하고 줄기가 아삭하고 부드러워서 김치로 담았을 때 갓김치의 맛이 일반 갓김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다. 잘 숙성된 갓김치가 주는 청량감은 가히 상상 초월이다. 고기와 같이 느끼한 음식과 곁들여 먹으면 아주 좋다. 반찬으로만 먹어도 향긋하고 시원해서 밥도둑이 따로 없긴 하지만.
지금도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반찬으로 김치를 먹지 않긴 하지만 우리가 키운 야채로 김치를 담기 시작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김치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좋은 재료로 담은 김치들은 깊고 다양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지니고 있어서 김치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다른 음식과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우리 집의 김치들은 대부분의 재료들이 직접 키운 것이고 재료를 다듬고 다루는 것도 정석대로 공을 들여서 하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어리다고 무시해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 집 김치만큼 맛있게 담은 김치가 별로 없다. 우리 김치를 먹어보고 김치 맛의 비결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김치 재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다들 코웃음을 치고 마니 그건 그것대로 참 희한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