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장 텃밭에는 인심용으로 심어놓은 무가 있다. 우리가 필요한 무는 집 앞 텃밭에 심어 놓았지만, 남은 무 씨앗이 많기도 하고, 거절하지 못할 요청이 있을 것을 대비해서 보험용으로 심어놓은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텃밭의 작물들을 소진함에 있어서 우리를 최우선으로 둔다. 좋은 것을 먹으려고 키워 먹는 것이니 텃밭에서 생산된 가장 좋은 작물을 우리 몫으로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생이나 나는 힘들게 텃밭을 가꿔서 좋은 것들은 팔거나 남에게 주고 버리기는 아깝고 남을 주기에는 형편없이 안 좋은 작물들만 먹은 많은 주변의 농부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가 키운 작물 중에 좋은 것을 우리 몫으로 챙긴 후에 나머지로 나눔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배추와 무는 수확이나 김장하는 것이 주변의 다른 집보다 항상 늦어서 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다 보면 우리 것을 좋은 것으로 못 챙기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원래도 배추와 무는 남들에게 잘 나눠주지 않기도 하지만, 나눠주더라도 우리가 먹으려고 심은 작물은 손대지 않으려고 인심용을 따로 구분해서 키우게 되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무의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래도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작물들은 아삭한 식감이 뛰어나지만 무의 경우에 아삭함과 달달한 맛은 다른 농가가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우리에게 무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곤란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를 그다지 많이 먹지 않지만 항상 여유 있게 심게 된다.
아무리 인심용으로 심었다지만 그래도 관리라는 것은 해야 되기 때문에 솎아주기 위해서 몇 개의 무를 뽑았는데, 예상보다 무가 크다. 이건 동치미 담아야 될 크기인데? 혹시 나눠줄 사람이 없을까 하여 주변을 열심히 살폈지만 텃밭을 지나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희한하게도 우리가 나눠줄 마음이 없을 때는 와서 달라는 사람이 많다가도 막상 맘먹고 나눠주려고 작정하면 텃밭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조차 만날 수가 없으니 나눔도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다.
집에 가져온 무를 가지고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동치미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차가운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물김치는 아예 만들지 않는 편인데, 무가 아깝기도 하고 국수나 냉면의 육수로 사용하게 될지도 몰라서 한번 담아볼까 하는 정도의 마음이 들던 차에 마침 적당한 무가 있으니 핑계 삼아 생애 첫 동치미 만들기에 도전해 본다.
동치미 만들기 레시피를 찾아보니 뉴슈가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는 레시피가 많은데, 나는 발효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은 혐오하는 사람이라(차라리 설탕을 넣을 것이지) 인공감미료 없이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서 담았다. 잘 키운 겨울무로 담는 동치미는 기본적으로 무의 단맛이 있기 때문에 감미료를 쓰지 않아도 단맛이 어느 정도 우러난다고 한다. 요즘 판매되는 무의 재배방식을 생각해 보면 인공감미료 없이 동치미를 못 담는 이유도 납득은 가능하나 발효에 좋지 않은 재료를 넣어 김치를 만들 바에야 김치를 안 만들어 먹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김치의 재료로 농약이나 비료를 주고 키운 채소도 꺼리는 형편인데, 인공감미료는 정말 최악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자연농법으로 키운 맛있는 무로 건강하게 담아보는 동치미다. 무 1.5kg 분량의 동치미 레시피인데, 재료가 단순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동치미에 사용하는 재료들은 건강하고 맛있는 재료들로 엄선해야 한다.
먼저 무를 절여야 하는데 동치미 무는 껍질째 사용해야 영양도 맛도 훨씬 좋다고 한다. 껍질째 사용하기 때문에 잔뿌리를 정리해서 무는 꼼꼼하게 깨끗이 씻어주고 무 한 개당 소금 한 큰 술을 뿌려 대략 40~50분 정도 소금에 절여준다. 무의 표면에 물기가 촉촉하게 생길 정도로만 절여주면 된다. 무를 너무 오래 절이게 되면 수분이 빠져나가서 단맛이 줄어들고 무의 조직도 물러지며 국물도 탁해진다고 한다. 전통방식으로 담는 동치미는 무를 반나절에서 하루정도 소금에 절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김치를 담고 나서 냉장고에 보관하기 때문에 무를 과하게 절일 필요가 없다.


무를 절이는 동안 같이 넣어줄 향신채들을 준비한다. 마늘 8쪽, 생강 5~6편, 청양고추 3개, 쪽파 조금, 무청 조금, 청각은 15~20g. 청각은 생청각이 나올 때 사서 깨끗이 씻어서 냉동보관해 놓은 것인데, 전통적으로 동치미에 아주 잘 맞는 재료라고 한다. 국물이 맑아지고 시원한 감칠맛을 내준다고 하는데, 김치가 빨리 익지 않게 하고 군내가 나는 것도 막아준다고 해서 김장김치에도 애용하는 재료로 깊이 있는 시원한 맛을 더해준다. 동치미에 넣을 청각은 깨끗이 씻어서 흐트러지지 않게 타래로 잘 묶어서 준비하고, 마늘과 생강은 편으로 썰어준다, 쪽파와 무청은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준비하면 된다.

우리는 동치미를 김치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킬 거라 김장봉투를 이용하여 담는데, 항아리에 담는 동치미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 김치통에 김장봉투를 씌우고 바닥에 준비한 향신채들을 깔아준다.

향신채 위에 무청을 가지런히 올려주고,

소금에 절인 무를 씻지 않고 소금만 탈탈 털어낸 후에 무청 위로 올려놓는다.

물 3L에 토판염 45~50g을 넣어 잘 녹여서 소금물을 만든 후에 소금물을 면포에 걸러서 부어준다. 소금물은 맛을 봤을 때 삼삼한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한다. 부어보니 재료가 잠길 만큼 딱 적당한 양이다.
동치미는 채소와 소금, 물로 담아 서서히 자연발효시키는 방식의 김치이기 때문에 단백질 발효식품인 젓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치미 특유의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과 서서히 발효되며 생기는 은은한 감칠맛을 느끼고 싶다면 동치미에 젓갈 사용은 금물.

완성된 동치미는 12시간 정도 실온에서 보관하다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면 김치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키면 된다. 2~3주 숙성시킨 후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1~2개월 안에 먹어야 맛있는 동치미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오래 보관이 안 되는 김치라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만들기 간편한 동치미 만들기였다. 소금은 토판염을 이용해서 담았는데 아주 맛있는 동치미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단맛을 추가하고 싶다면 배나 매실청을 넣어도 된다고 하는데 그건 이번 동치미의 맛을 보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다.
먹지도 않는 동치미지만 담고 보니 맛있게 익는 것이 기대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