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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한 텃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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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의 부추

질 좋은 우리 텃밭 작물의 일등공신은 지렁이 분변토이다.

지렁이 분변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지렁이 농장을 하셔서 지렁이 분변토로 작물을 키워봤더니 건강하고 맛 좋은 농작물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을 뿐이다.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렁이 분변토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어난 것 같지만 사실 우리처럼 온전히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 우리가 지렁이 키우는 법을 알기 때문에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텃밭 흙을 지렁이 분변토로만 고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의 맛과 향이 다른 땅에서 자란 농작물보다 뛰어나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자란 채소들은 질겨지지 않고 아삭한 식감이 뛰어나며 채소 본연의 맛과 향이 진하고 잡다한 맛이 나지 않는다. 동생의 블친 중 하나는 보내준 채소가 너무 맛있어서 지렁이 분변토를 얻기 위한 지렁이 키우기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단다. 그 블친도 화분에 지렁이를 넣어서 작물을 키운다고 하는데 지렁이를 넣어주는 것과 분변토에서 키우는 것은 또 다른 모양이다. 나 또한 상추, 부추, 대파, 열무는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운 것이 아니면 아예 먹지를 않는다. 유기농으로 키웠다고 해도 맛 자체가 많이 차이 난다.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이 건강하고 잘 자란다. 지렁이 분변토는 식물의 뿌리 활착이 아주 잘된다. 그리고 뿌리가 다른 토양보다 훨씬 잘 뻗고, 많이 뻗는다.  뿌리가 잘 발달해서 그런가? 작물이 다른 텃밭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아랫집에 사는 친구는 출근할 때 우리 텃밭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작물이 크는 것이 보여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주변 농가와 비교해 봐도 같이 심었어도 우리는 훨씬 빨리, 그리고 자주 수확을 한다. 게다가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면 병충해가 별로 없다. 워낙 배수가 잘되기도 하지만 지렁이나 토양 미생물들이 병균을 먹거나 분해해서 바이러스성 질병이 거의 없다. 그리고 지렁이의 분비물 냄새를 벌레들이 싫어해서 지렁이 분변토로 액비를 만들어서 뿌리면 벌레도 훨씬 덜 타게 된다.

우리 텃밭의 상추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우면 텃밭 일이 많이 간단해진다.  보통 농사를 지으면 토양에 퇴비를 섞고, 로터리 치고,  비닐 멀칭을 하고 작물을 심는다. 그런데 지렁이 분변토에서 작물을 키울 때는 별도로 퇴비를 섞지도 않고, 기계 경운도 하지 않고, 비닐 멀칭도 하지 않는다. 이미 지렁이가 경운을 해놔서 흙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데다 보습력과 보비력이 아주 좋아서 지렁이 분변토만 두둑하게 덮어주면 따로 멀칭을 하지 않아도 작물이 자라는데 지장이 없다. 게으른 농사꾼을 자처하고 있긴 하지만 주변의 농사짓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텃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적다. 심고, 수확하는 것이 바쁠 뿐.

지렁이 분변토는 흙의 입자가 달라서(소위 떼알구조) 작물에 흙이 묻어나지 않는다. 당근이나 무 같은 뿌리채소는 물론이고 땅콩이나 마늘, 감자 같이 흙속에서 자라는 것들도 뽑아서 털어버리면 분변토가 다 털리기 때문에 세척에 골머리 앓을 일이 없다. 지렁이 분변토가 아닌 땅에 심은 땅콩을 수확했다가 땅콩에 묻은 흙을 씻는다고 정말 고생한 적이 있었다.

갓 뽑은 당근 모습

지렁이 분변토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맘때쯤이면 다들 작물을 심기 위해 텃밭에 퇴비를 뿌려서 퇴비 냄새가 곳곳마다 진동하는데 지렁이 분변토는 자체가 탈취 효과도 있지만 냄새도 나지 않아서 집 앞 텃밭에서 사용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우리 텃밭을 지나가던 동네분이 우리 텃밭에 사용하는 흙이 도대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냄새는 안 나는데 흙 색깔은 까맣고 심어놓은 작물이 너무 잘 자라니 도대체 어떤 흙인지 궁금했단다.

 

요즘은 지렁이 분변토가 좋다고 알려져서 농사에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 동네에서도 처음엔 거저 준다고 해도 안 쓰더니 우리가 농사짓는 걸 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들 지렁이 분변토를 퇴비처럼 쓴다. 밭에 섞거나 땅 위에 조금씩 뿌려서 쓴다. 퇴비처럼 뿌리면 지렁이 분변토는 토지개량제 역할 정도만 할 뿐 지렁이 분변토에서 키우는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텃밭 흙 자체를 지렁이 분변토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물을 심기 전에 지렁이 분변토를 두둑하게 깔아놓고 그 위에 작물을 심는다.

작물을 심기 위해 분변토를 부어놓은 모습

부모님이 지렁이 농장을 그만두면서 지렁이 분변토를 구하기 위해 지렁이 농장에서 얻기도 하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지렁이 분변토를 사기도 했는데 -시중에서 판매하는 지렁이 분변토는 전혀 지렁이 분변토 같지 않아서 텃밭에 사용하기 부적절했다- 지렁이에게 무얼 먹이느냐에 따라 지렁이 분변토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지렁이 분변토는 자급자족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텃밭 한편에 퇴비장을 만들어서 커피찌꺼기, 과일껍질등 음식물 쓰레기, 작물의 잔사나 잡초들을 쌓아서 지렁이를 키운다. 아직은 지렁이 분변토 생산량이 적어서 녹비작물을 심어 거름기를 주고 있지만 생산량이 늘어나면 지렁이 분변토를 부어서 추비를 해주면 좋다.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여 텃밭을 가꾸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자타공인 훌륭한 농사꾼이 될 수 있다. 우리 텃밭 작물의 자람 세나 때깔이 다른 텃밭 작물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텃밭을 구경한 동네사람들은 퇴비도 안 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작물이 잘 자라는지 신기해하고 특별한 농사 비법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다들 우리 텃밭을 부러워하면서도 본인들이 지렁이 분변토를 사용할 생각은 잘 안 하는 거랄까?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하여 텃밭을 가꾸는 것의 유일한 문제점은 텃밭의 규모가 커질수록 텃밭 작물 키우기에 열중하는 게 아니라 지렁이 분변토를 더 많이 얻기 위해 지렁이 키우는데 열중해야 되는 것이다.  '지렁이 분변토 장사나 해야 할까 봐' 하던 동생의 푸념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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