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현상 유지만 고려하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근데 동생은 나와 달리 어떤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으면 자꾸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성향상 잘 된 일은 완성된 거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새로운 방법을 시험해 보는 것일 테지.
처음 맨땅에 지렁이 분변토를 붓고 작물을 심어 텃밭을 만들었을 때 버려둔 땅인지라 벌레가 기승이었다. 작물을 키우며 꾸준히 관리하니 2년 정도 지나서 벌레가 없어졌다. 물론 계피 찌꺼기를 텃밭에 많이 버리기도 했고 각종 허브들을 심기도 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고 2년 정도 지나서 작물의 충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우리가 원하던 텃밭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농사 방법은 단순하다. 지렁이 분변토를 붓고 작물을 심고 추비가 필요하면 지렁이 분변토를 가져다가 붓는다. 작물을 심을 때도 항상 지렁이 분변토를 가져다가 붓고 작물을 심기 때문에 연작 피해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심는다. 어차피 새로운 흙이니까. 지렁이 농장이 없어지면서 지렁이 분변토를 얻는데 문제가 생기자 동생은 토양을 좋게 만드는 다른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인터넷에서 떠드는 정보는 듣지 않는다. 근데 성격이 까다로우면서도 은근히 순진한 동생은 따져보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 같으면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다(은근 호구타입이다). 그런 동생이 낙엽 멀칭과 풀 멀칭에 대해 듣고 거기에 완전히 꽂혔다.
낙엽 멀칭은 부엽토 땅을 최고로 치는 동생의 로망도 섞여 있어서 땅이 비옥해지고 부슬부슬해진다고 했다며 근처 산에 가서 낙엽을 끌어모아 밭에 멀칭을 하기 시작했다. 텃밭 일을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잘 가지도 않는 산을 가서 낙엽과 부엽토를 모아 와서 낙엽 멀칭을 하는 부지런을 떨었는데 그 효과가 좋았으면 좋으련만 결과는 참담했다. 봄이 되니 낙엽 속에서 월동한 생전 처음 본 벌레들이 기승인 데다가(난 톡톡이라는 벌레를 그때 처음 알았다) 흙속의 낙엽이 제대로 부숙 되지 않아서 작물의 뿌리 활착이 잘 되지 않아서 모종을 옮겨 심어놓으면 시들했다(지렁이 분변토가 워낙 뿌리 활착이 잘되는 흙이라 그런 것도 처음 겪었다). 2년 동안 잘 길들인 텃밭 흙을 낙엽 멀칭이 한순간에 망가트려 버렸다. 난 그 뒤로 낙엽이라고 하면 아주 치를 떨게 되었다. 어쨌든 동생과 나는 낙엽 부엽토보다는 지렁이 분변토가 텃밭 토양으로 더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낙엽은 우리 텃밭에 출입금지.
자연순환농업의 일환인 유기물 멀칭과 초생재배. 텃밭 흙의 소실을 막고 습도를 유지해 준다며 풀 멀칭과 초생재배를 시도했다. 동생은 짚이며 잡초, 녹비작물, 식물 잔사 등 텃밭에서 구할 수 있는 풀이란 풀은 모조리 모아서 작물에 덮어주기 시작했고 덮어줄 풀이 모자라다며 풀 멀칭용 녹비 작물도 곳곳에 키우기 시작했다. 사실 난 풀 멀칭의 효과를 잘 모르겠는데 동생은 풀 멀칭 밑에 촉촉하고 부드러운 지렁이 분변토의 상태에 상당히 흡족해하며 열심히 풀 멀칭을 해주었다. 올해 봄부터 풀 멀칭의 피해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벌레가 많아졌다. 겨울에 풀 멀칭 해놓은 곳이 따뜻해서 그런지 거세미 나방 애벌레가 곳곳에 보인다(작물을 심으면 줄기를 끊어 먹는다). 녹비를 위해 심어놓은 헤어리베치가 벌레를 많이 타서 주변 작물들이 다 벌레를 타서 잎사귀가 구멍이 숭숭이다. 진딧물도 많이 생기고, 풀 멀칭한 데가 습해서 멀칭을 들추면 달팽이가 무리 지어 있었다. 상추며 양배추며 달팽이 때문에 남아나는 게 없었다. 마늘이 너무 안 좋아서 풀 멀칭한 것을 들췄더니 멀칭해 놓은 흙들이 너무 습하다. 자고로 사람이나 작물이나 습한 데서 사는 건 안 좋다. 작물을 심어놓은 것도 안 좋아서 뒤져보니 군데군데 두더지 굴이 있다. 지렁이 분변토가 보습력이 좋은 데다 유기물 멀칭을 해 놓으니 멀칭 아래쪽은 햇빛도 없겠다, 따뜻하겠다 습도도 적당하겠다 먹이도 풍부하겠다 지렁이가 모이기 아주 좋은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물론 지렁이만 많이 모이면 좋았겠지만 지렁이를 먹는 두더지도 급증하다 보니 두더지가 지렁이 있는 곳을 다 훑고 다녀서 밭 곳곳이 두더지 굴이었다. 보통은 겨울에 지렁이가 따뜻한 곳을 찾아 땅속 깊이 들어가 있는데 풀 멀칭 때문에 지표가 따뜻하니 풀 멀칭 밑으로 지렁이가 몰려있게 되었고 그 덕에 두더지도 지표 부근으로 굴을 파고 다닌 것이다. 초생재배도 지렁이 분변토가 워낙 식물들을 잘 자라게 하기 때문에 작물 주변의 풀들이 너무 무성해서 통풍이 잘 되지 않는다. 베어도 너무 빨리 자란다. 그러다 보니 토양이 습해져서 진딧물과 달팽이가 많아졌다. 재식간격을 넓게 한 이유가 모조리 상쇄되었다. 결국은 처음에 키우던 방식대로 작물 심은 곳은 멀칭을 걷어내고 작물 주변 풀들도 재빨리 제거하기로 했다. 베거나 뽑은 풀들은 따로 퇴비장을 만들어 그곳에 쌓아두기로 했다. 두 번의 시도가 텃밭 토양을 완전히 망쳐놓았으니 짜증이 밀려온다.
누군가는 효과를 봤을 농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렁이 분변토만 사용하는 우리 텃밭에는 사용하지 말았어야 하는 농법이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텃밭은 망가졌다. 역시 어리석은 가르침은 일을 그르친다.
그저 이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동생이 다른 농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도 살짝 자닮에 꽂혀있어서 걱정스럽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자닮은 우리 같은 자급농과는 결이 다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유기농업자들에게나 적합하지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짓는 소규모 농부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다.
어리석은 선생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신을 탓할 밖에. 텃밭이 망가졌으니 올해는 텃밭 복원에 힘써야겠다. 열심히 풀 멀칭을 걷어내서 치우고 잡초를 정리한다.
별 수 없다. 내년을 기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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