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농사일을 쉽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니 일반 공산품처럼 그 안에 들어있는 농부의 노고나 정성을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 농사일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하찮은 일은 더더욱 아니다.
작물을 심는 땅을 만드는 기초적인 일만 해도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간다. 일단 퇴비가 한 포대에 20kg인데 작물 심을 땅에 퇴비 옮기는 것만 해도 웬만한 웨이트 트레이닝 저리 가라다. 예전에 텃밭 일을 하면서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열심히 운동하면서 키운 근육 농사하면서 다 쓰는 것 같다'라고. 관행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도 4평 텃밭에 한 포대에 20kg 정도 되는 지렁이 분변토를 30포대도 넘게 갖다 부어서 땅을 만들었다.
물론 돈벌이가 안 되는 건 맞다. 거의 300평 정도의 농사를 짓는 갑임 아주머니도 농작물을 팔아 일 년에 200만 원도 못 버신단다. 우리 같은 취미농은 돈을 벌기는커녕 쓰기만 한다. 그래도 돈을 쓰면서 텃밭을 가꾸어 얻는 유익이 있다. 노동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건강한 제철 먹거리로 인한 건강 확보, 자급자족으로 인한 생활비 절감등.
어쨌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농사는 진입 장벽이 낮다. 시골에선 땅만 있으면 너도나도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조그마한 텃밭 일지라도. 우리 같이 땅을 빌려서 농사짓는 사람도 있으니 자기 땅에 농사짓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문제는 농사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데 있을 것이다. 물론 농사도 처음부터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는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처음 농사를 지으면 잘 되지 않는다. 의외로 주변 농부들 특히 자기가 먹기 위해 기르는 자급농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심고 수확만 해 먹으면 되는 줄 알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잘 안되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농부들에게 물어보고 종묘사에 가서 물어보고 하면서 하나 둘 치는 농약들이 늘어가고 쓰는 화학 비료가 늘어가며 슬슬 관행농의 세계로 빠져든다. 처음에는 유기농으로 키워보겠다고 야심 차게 계획했을지는 몰라도.
내가 작물을 키워보니 알아서 잘 크는 작물이란 없다. 자기가 키운 것에만 만족하고 먹는다면 모르지만 적어도 먹을 수 있는 상품같이 키우려면 키우는 방법이 쉽든지 어렵든지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가장 키우기 쉬운 상추조차도 너무 촘촘하면 솎아 줘야 하고 수분이 적당한지 확인해야 하고(너무 습해도 안 좋고 너무 건조해도 안 좋다), 거름이 적당한 지도 확인해야 하고(몇 번 따 먹으면 추비를 해줘야 한다), 수확 적기에 바로 수확해줘야 한다. 작물을 제대로 키우려면 텃밭 일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텃밭 일이 하기 싫을 때면 동생은 입버릇처럼 '그냥 놔둬, 알아서 크는 것만 먹어도 우리 먹을 것은 충분해'라고 하곤 한다. 사실이 그렇기는 하다.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고 키운 작물과 방치하고 키운 작물은 상품의 질적인 면이나 수확의 양적이 면이나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에 텃밭이 넓어진 관계로 우리가 여러 작물의 수확 지옥을 경험했지만 방치하고 키우고 있는 나물밭의 작물은 제대로 수확해 먹은 게 없다. 그나마 올해 미나리와 삼잎국화, 부지깽이나물을 수확해 먹었지만 다른 곳에서 키운 것은 훨씬 자주 수확해 먹는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듯 모든 작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정성껏 키워야 건강하게 자란다. 화학 농약과 화학 비료, 제초제, 기계 경운 같이 손쉬운 길을 버리고 천연농약을 만들고 벌레 쫓는 식물을 키우고 식물 잔사나 음식물 쓰레기로 직접 거름을 만들고, 열심히 풀을 베고, 지렁이나 호밀이 땅을 경운 하도록 만드는 등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힘든 길을 택하여 주저 없이 하는 것도 작물에 애정을 가지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함인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듯이 건강한 채소는 섭취하는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작은 하나의 작물조차도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헛되이 애정을 쏟는 일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내가 작물에게 쏟은 애정과 관심은 결국 나에게 돌아와 나를 건강하게 해 준다.
사실 세상 사는 이치가 그렇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 그러니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여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쌓아 올린 선한 노력들은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와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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