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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노지재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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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수확물

서울에서 살 때는 돈만 주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으니 먹는 것에 이렇게 까탈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비싸긴 해도 맛있고 신선한 재료나 조미료를 쓰지 않은 건강한 음식을 살 수 있었다.

시골에 내려오니 신선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려면 직접 키워 먹어야 한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지천인데도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구할 수가 없다. 우습게도 좋은 것들은 다 계약이 되어 있어서 서울로 간다고 한다.

 

별수 없이 텃밭을 가꾸어 직접 채소를 길러먹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외식을 못하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마트나 시장에서 채소를 사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는 남이 키운 농산물은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입맛이라는 것이 한번 높아지면 맛없는 것은 먹을 수가 없다. 

지금 서울에서 산다고 하면 과연 사 먹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나는 모름지기 제대로 된 작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자연의 풍광을 받으며 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화분에서 키운다던지 하우스에서 키운다던지 요즘 각광받는 스마트 팜같이 인공 광선으로 키우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적으로 그렇게 키운 것들은 맛도 없다.

요즘 대형 마트에 납품되는 채소들은 거의 시설 재배가 많다. 노지재배 야채를 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맛 좋은 노지재배 작물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요즘 같이 날씨가 이상하면 노지재배 작물들은 타격이 좀 심하다.

 

예전에 텃밭이 작았을 때는 텃밭 흙을 화분에 담아 작물을 심어봤다. 그런데 텃밭의 작물과는 맛이 상당히 차이가 났다. 똑같이 노지에 내놔도, 대형 화분에 작물 하나만 덩그러니 심어도 그렇다. 땅에 심어놓은 작물의 뿌리는 화분의 크기보다 넓고 깊다. 겨울에 옮기는 알로에만 봐도 화분에서 뽑을 때와 텃밭에서 뽑을 때 뿌리의 크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그러니 화분에서 키운 작물이 맛이 없을 수밖에. 

시설 재배로 키운 작물은 더 맛이 없다. 야채 본연의 맛이 전혀 나질 않는다. 아랫집에서 하우스에서 키운 양파라고 양파를 몇 개 줬는데 손질할 때부터 양파가 매운맛이 하나도 없더니 조리를 해도 아무 맛도 없다. 양파가 나오지 않을 때라 아쉬운 딴에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으면 이런 아무 맛없는 양파를 쓸 바에는 아예 양파를 안 넣고 요리하겠다. 

양파 수확할 시기에 갑임 아주머니가 본인이 키운 양파를 맛보라고 5개를 주셨다(갑임 아주머니는 조생종 양파를 심어서 항상 우리보다 양파 수확이 이르다). 이 양파는 그래도 하우스 양파보다는 맛이 양파 같긴 하지만(이 정도의 양파는 아쉬울 때는 쓸 수 있다) 그래도 우리 기준 맛있는 양파는 아니어서 우리 양파를 수확하자마자 바로 찬밥 신세가 되었다(아직도 아주머니의 양파가 3개나 남아있다).

 

작물들은 자연의 시련 속에서 자체의 파이토케미컬을 더 많이 생성하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키운 노지 재배 작물의 맛과 향이 뛰어난 것이다. 

 

우리가 키운 작물이 맛있는 이유는 노지 재배뿐 아니라 비옥한 텃밭 흙 때문이기도 하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텃밭을 보면 텃밭 흙이 까만 것에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어떻게 퇴비도 안 하는데 이렇게 텃밭 흙이 까맣게 비옥할 수 있냐며 의아해하신 적이 있다. 영양이 풍부한 땅에서 자란 작물은 때깔부터가 남다르다. 누구는 우리 작물을 이렇게 평했다. 참기름을 바른 것 같이 윤이 난다고. 

우리 작물을 자주 나눔 받는 아랫집 어르신들은 우리 작물들이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것에 신기해하신다.

 

사실 우리는 노지 재배와 비옥한 땅을 위해 텃밭에 많은 공을 들인다. 노지 재배로 인한 피해(가뭄, 홍수, 병충해 등)를 줄이기 위해 건강한 땅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땅은 배수도 잘 되지만 보습력도 좋아서 비가 연속적으로 오거나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날이 가물어도 그 피해가 일반 땅에 비해 적다. 영양이 풍부한 땅에서 자란 작물들은 시기에 맞지 않는 고온이나 저온 같은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도 일반 땅에 비해 적다. 

 

건강하게 키워진 작물들을 섭취함으로써 얻는 건강의 유익은 기대 이상이다. 동생이나 나나 시골에서 생활한 몇 년 간 병원 갈 일도 없고 소소하게 아픈 것도 거의 없다.

이런 건강한 작물은 시설 재배나, 베란다 텃밭, 주말 농장, 스마트 팜으로는 도저히 키워낼 수가 없다. 

건강한 작물은 건강한 땅에서 자란다. 땅 속에는 토양 미생물들이 있다. 이 토양 미생물들의 생태계가 균형 있게 잘 만들어져 있어야 건강한 땅이 된다. 그러니 건강한 땅을 만들려면 건강한 토양 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화학품(화학 농약이나 화학 비료)을 쓰지 말고 적절한 탄질비의 유기물을 제공해야 한다.

예전에 사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사람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인공 첨가물을 섭취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프로바이오틱스 열풍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았다) 토양도 마찬가지다.

도처에 널려 있어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효과가 빠른 화학품을 멀리하고 풀을 매고 그 잔사들을 삭혀서 토양으로 되돌리는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유익하고 가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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