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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텃밭 이야기

풀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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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싸인 오이밭

농사 3년 차에 접어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초에 진저리를 치며 골마다 제초매트나 천을 깔아 잡초가 나지 않도록 한다. 잡초를 키우는 동생은 그런 걸 보며 조소하곤 하지만 난 때로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한때는 자연농법 운운 하며 동생이 풀을 키우기를 종용하던 때가 있었다. 풀멀칭을 하려고 일부러 키우기도 했었고, 풀을 매지 말고 베서 뿌리를 남겨놓으라고 잔소리하던 적도 있었다. 잡초의 뿌리가 물과 양분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는 건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렁이 분변토 앞에서 그것은 쓸데없는 소리다. 이미 지렁이 분변토는 지렁이가 기어 다닌 미세한 구멍들이 물과 양분의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에 따로 잡초의 뿌리를 살려놓을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뿌리를 살려놓으면 잡초가 너무 빨리 자라기 때문에 잡초 베다가 볼장 다 본다.

한 때 열심히 잡초를 키우던 동생이 풀멀칭에 데이기도 했고 밭에 벌레가 너무 많아지고 지저분해지니 풀을 매기 시작했는데 풀을 매다 보니 힘이 들어서 제초매트를 깔자고 성화다. 밭에 천을 까는 사람을 비웃은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동생님.

 

사실 텃밭에 일도 많은데 잡초 매는 잡다한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풀을 매다 보니 어느덧 풀이 지겨워진다. 작물은 잘 자라지도 않는데 잡초는 얼마나 잘 자라는지. 잠깐 한눈을 팔면 금세 잡초가 자라서 작물들을 위협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작물은 작물답게 키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통풍이 잘 되라고 재식간격을 넓게 두고 작물을 심었는데 그 사이를 잡초가 빼곡히 채우고 있으면 재식간격을 넓게 심은 이유가 없어진다. 동생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풀을 매는 이유이다.

 

초생재배를 한다고 피복작물로 심어놓은 클로버는 작물의 뿌리 활착을 방해하고 녹비로 심은 헤어리베치는 벌레를 들끓게 한다. 녹비든 뭐든 풀이라면 아주 지겹다. 사실 녹비 작물의 효과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갑임 아주머니 텃밭에는 2년 동안 헤어리베치와 호밀을 심고 삭힌 두둑이 있는데 지렁이 분변토를 갖다 부은 다른 두둑과 달리 거름기가 없어서 작물을 심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도대체 몇 년이나 심고 삭혀야 작물을 심을 수 있을까?

 

정말 우스운 것은 잡초가 나지 말라고 잡초를 베어서 풀멀칭을 해 놓으면 그 부분이 촉촉해서 잡초가 더 빨리 자라고 더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작물이 있는 곳은 풀을 말끔히 걷어내고 맨 흙으로 놔두고 있다. 누구는 흙이 너무 건조해진다며 우려를 표하지만 풀멀칭해 놓은 것보다는 작물이 훨씬 멀쩡하다.

 

돌고 돌아 처음의 농사법으로 다시 돌아왔다. 두둑의 풀을 매고 퇴비장에 쌓아 놓는다. 작물이 없는 곳은 대충 풀을 키우다가 예초기로 한 번에 친다. 풀을 키우던 예전과 달리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동생이 작물이 없는 밭 가장자리에는 잡초가 너무 많이 자라고 매기도 나쁘니 다음에는 제초매트를 다 깔자고 한다. 

풀을 매다 보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쏟을 수는 없으니 제초 매트를 깔고 번 시간을 작물에 쏟는 게 더 현명하긴 하다. 중요한 것은 작물을 잘 키우는 거니까.

 

풀을 열심히 맨 덕분에 요즘은 밭이 밭 같아졌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풀밭인지 작물이 심겨 있는지 잘 몰랐다. 풀이 너무 많아서 뱀 나올까 봐 텃밭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밭이 밭 같아지니 텃밭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텃밭 작물을 탐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사실 농장 텃밭 같은 경우 작물 도둑들 때문에 풀을 방치했던 경향이 없지 않다.

중요한 작물은 되도록 집 앞 텃밭에 심고 농장 텃밭도 자주 돌아봐야겠다. 어차피 오이나 수박, 참외 같은 손 많이 가는 작물들이 심겨 있어서 자주 돌아보긴 한다.

 

이제 작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