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 년에 사용하는 고춧가루는 건고추 3kg이면 충분하다. 매년 건고추 3kg을 사서 고춧가루를 빻아 김장을 하고 남은 고춧가루를 양념으로 사용하곤 한다.
올해는 야심 차게 건고추 5kg을 만들어 고추장 만들기도 도전해 보려고 했으나 날이 가물어서 물 주면서 고추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건고추가 3kg이 되자마자 수비초를 정리하기로 했다.
늦게 자란 땅묘로 심은 수비초와 자생으로 자란 고추를 남겨놓고 4월에 정식한 수비초는 대부분 정리했다. 배추 심을 자리를 확보해야 하기도 하고 고추들도 물과 영양 부족으로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고추 몇 개 더 얻자고 남겨놓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올해 수비초는 작년보다 매운 것만 빼곤 꽤 괜찮다. 모양도 이쁘고 말려지기도 잘 말려졌고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 고춧가루의 맛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준다. 확실하진 않지만 작년보다 더 맛있는 고춧가루가 될 것 같다.
남아 있는 수비초의 수확이 끝나면 건고추 4kg 정도는 무난할 것 같다.
매년 고추 키우기에 회의가 들지만 고춧가루를 먹어보면 안 키울 수가 없기도 한데 올해는 본의 아니게 풋고추의 매력도 알게 되어서 내년에도 또 수비초를 심어야 될 듯하다. 그것도 올해보다는 더 많이.
올해는 날이 가물어서 고추들이 다 너무 매운데 수비초는 매우면서도 달달한 감칠맛이 있어서 음식에 넣어도 생으로 먹어도 무척이나 맛있다. 토종 고추들이 다 이렇게 맛있는 건지 아니면 수비초라 맛있는 건지 경험이 미천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키운 수비초는 건고추도 풋고추도 너무 만족스럽다.
특히 올해는 텃밭 일이 바빠서 고추에 신경을 못쓰다 보니 액비도 안 만들어주고 초반에 난황유 두 번 친 거 외에 다른 천연농약도 전혀 쳐주지 못했는데 병충해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농약 없이 키울 수 없는 고추라는 말이 무색하다. 우리 텃밭에 수비초를 본 동네분이 '약도 안치는데 어쩜 병도 하나 없이 고추가 깨끗하냐'라고 놀라워하셨는데 물이 부족해서 고추가 좀 작은 것만 제외하면 올해 고추 농사는 꽤 성공적이다.
수비초를 뽑고 지주대를 정리하고 동생과 나는 나름 흡족한 마음으로 텃밭을 둘러보았는데 군데군데 심어놔서 그런지 온전하게 빈 두둑이 하나도 없다. 배추를 심으려면 텃밭 정리를 다시 해야겠다. 고추 사이에 심어놨던 대파들도 한쪽으로 옮기고 들깨와 바질도 정리해야 할 듯하다.
아랫집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텃밭에서 뭐 하냐고 물어보시기에 고추 뽑았다고 했더니 '어디?' 하신다. 하긴 우리 눈에도 중구난방으로 심겨 있는 작물 때문에 확 드러나지 않는데 남들 눈에야 더 그렇겠지. 그래도 수비초 30주 중에서 25주 정도 뽑았는데 텃밭이 휑해진 느낌이 안 드나?
수비초를 정리하고 나니 큰일이 하나 끝난 것 같아 홀가분하다. 사실 우리 텃밭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게 고추와 배추이긴 하다. 조만간 배추를 정식하면 또 고생이 시작되겠지. 배추를 정식하기 전까지의 이 여유로움을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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